생성형 AI가 게임 개발의 보조 도구를 넘어 원화, 배경, 코드, 번역, 음성, NPC 대화, 이용자 맞춤형 콘텐츠 제작까지 게임 전반에 활용되면서 게임업계가 새로운 법적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게임 시장에서 AI 활용은 이미 현장 깊숙이 들어와 있다.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인 GDC 2026 조사에서 게임업계 종사자 36%가 업무에 생성형 AI를 사용한다고 답했고, 구글 클라우드가 2025년 발표한 조사에서도 개발자 615명 중 90%가 AI를 개발 워크플로에 통합했다고 응답했다.
AI는 개발비 상승과 제작 기간 장기화에 시달리는 게임사에 매력적인 도구다. 반복 작업을 줄이고, 콘셉트 제작과 번역, 코드 보조, 테스트, NPC 대화 생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학습 데이터의 출처, 결과물의 권리 귀속, 기존 IP와의 유사성, 성우와 배우의 디지털 복제 문제가 동시에 얽히면서 분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쟁점은 학습 데이터다. 미국 저작권청은 생성형 AI 학습 과정에서 대규모 데이터가 활용되고, 그중 저작권 보호를 받는 저작물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권리자 동의나 보상 필요 여부가 핵심 논쟁이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관련 소송 수십 건이 진행 중이며, 주요 쟁점은 AI 학습이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집중돼 있다.
게임 개발의 경우 이 문제는 더 복잡하게 번질 수 있다. 게임사가 자체 AI 모델을 만들거나 외부 AI 모델을 활용하더라도, 해당 모델이 어떤 이미지, 대사, 코드, 음성, 팬아트, 공략 데이터, 위키 자료를 학습했는지 확인하지 못하면 리스크는 그대로 남는다. 만약 경쟁사 게임 DB, 대사집, 설정집, 공략 데이터, 아트북 등을 학습해 유사한 생성 도구나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경우 공정이용이 쉽게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앤트로픽 사례는 데이터 확보 방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앤트로픽은 불법으로 유포된 해적판 도서를 AI 학습에 사용했다는 작가들의 집단소송에서 한화 약 2조원대에 해당하는 15억 달러 규모 합의에 동의했다. 이 합의는 저작권 집단소송 합의 중 최대 규모로 평가됐다.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확보했는지가 거액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동시에 AI를 활용한 결과물의 권리 귀속도 별도 문제로 자리한다. AI가 생성한 캐릭터 원화, 배경, 아이템 아이콘, 퀘스트 대사, OST를 그대로 채택했을 때 회사가 해당 결과물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안정적으로 주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게임사가 AI 생성 결과물을 상업 콘텐츠로 활용하더라도, 인간 개발자의 창작적 기여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저작권 보호 범위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 IP와 유사한 결과물도 직접적인 분쟁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디즈니와 유니버설은 이미지 생성 AI 도구인 미드저니가 자사 유명 캐릭터 이미지를 무단 학습하고 생성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도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스쿠비두, 벅스 버니 등 자사 캐릭터 침해를 주장하며 미드저니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이는 남의 일이 아니다. AI 제작 과정에서 ‘특정 화풍’, ‘유명 캐릭터 느낌’, ‘인기 게임 UI처럼’과 같은 프롬프트를 사용할 경우 결과물 단계에서 침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성우와 배우의 권리도 생성형 AI 시대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미국 영화배우조합·미국텔레비전라디오예술인연맹(SAG-AFTRA)의 2025년 비디오게임 협약은 조합원 투표에서 95.04% 찬성으로 승인됐고, AI 디지털 복제 사용에 대한 동의와 고지 요건을 포함했다. 해당 협약은 보수 15.17% 인상, 2025년·2026년·2027년 11월 각각 3% 추가 인상, AI 관련 안전장치 등을 담았다.
2025년 ‘포트나이트’의 AI 다스베이더 음성 논란은 실제 서비스 게임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확산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영화 원작에서 다스베이더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제임스 얼 존스는 2024년 9월 세상을 떠났다. 게임사는 유족과 협의해 그의 목소리를 AI로 생성한 뒤 게임에 삽입했다.
그러나 SAG-AFTRA는 연기자의 작업을 AI 기술로 대체하면서 사전 고지와 교섭 없이 진행했다며 에픽게임즈의 자회사 라마 프로덕션에 부당노동행위 진정을 제기했다. 노조는 회원과 유족이 디지털 복제 사용을 통제할 권리는 존중하지만, 인간 연기자의 일을 대체하는 AI 음성 사용 조건은 교섭 대상이라고 밝혔다. 게임사가 단순 라이선스 확보를 넘어 노동권과 계약상 권리까지 고려해야 하는 국면이 열린 셈이다.
이러한 분쟁과 소송 리스크는 대형 게임사보다 생성형 AI 활용이 활발한 인디 개발사와 소규모 스튜디오에 더 치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대형 퍼블리셔는 법무팀, IP 검수 조직, 외부 로펌, 라이선스 계약 검토 체계를 통해 AI 도구 사용 전후의 위험을 사전에 걸러낼 수 있다. 반면 소규모 개발사는 같은 수준의 법률 대응 인프라를 갖추기 어렵다.
또 생성형 AI 도구로 만든 캐릭터가 기존 IP와 유사하다는 문제 제기나, AI 음성·대사·코드가 특정 저작물 학습 논란에 휘말릴 경우 작은 스튜디오는 소송의 승패 이전에 대응 비용만으로도 개발 일정과 운영 자금을 압박받을 수 있다. 권리 침해 여부가 최종적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법률 검토, 자료 제출, 플랫폼 대응, 이용자 공지 과정에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될 수 있다.
게다가 소규모 스튜디오가 기업용 엔터프라이즈 상품이 아닌 개인용 AI 서비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변수다. 보안 설정과 데이터 보호 체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 코드나 미공개 기획 자료를 AI 도구에 입력하면, 해당 정보가 학습이나 서비스 개선에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게임 표절 분쟁에서 코드의 유사성은 중요한 판단 요소 중 하나인 만큼, 코드 유출은 작은 개발사에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AI 시대에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를 위한 ‘엔터테인먼트 AI 법률가이드’를 발간한 법무법인 신원의 김진욱 대표 변호사는 AI 활용 확대에 따라 게임산업에서 예상되는 법적 분쟁을 네 가지로 짚었다.
김진욱 변호사는 "게임산업에서 AI 활용이 확대되는 경우 예상되는 법적 분쟁은 ▲AI 모델 학습을 위해 기성 게임의 리소스나 외부 아트워크, 텍스트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의 저작권 침해 분쟁 가능성 ▲AI 생성물에 대한 저작물 보호의 한계로 인한 분쟁 가능성(AI가 생성한 BGM이나 캐릭터 일러스트, 프로그램 코드 등은 저작물로 인정되기 어려움) ▲실존 유명인 등의 외모나 음성을 캐릭터화할 경우의 인격권·퍼블리시티권 침해 가능성 ▲AI NPC의 명예훼손적 발언이나 혐오 발언으로 인한 게임사 대상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 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예방책도 함께 제시했다. 그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권리 침해 가능성에 대해 학습 단계, 생성 단계, 이용 단계에 걸쳐 스크리닝을 하고, 필요한 부분은 권리자의 사전 동의나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작사, 플랫폼, 이용자 간 계약관계나 약관을 통해 타인의 권리 침해를 예방하는 장치와 권리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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