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팀이 없는 제주에서도 내 구단을 힘껏 응원할 수 있는 곳.
레이싱 테마파크, 제주 9.81파크를 다녀왔다.
왜 9.81파크일까?
9.81파크는 지구 중력가속도인 9.81m/s²에서 이름을 따왔다. ‘레이스981’은 엔진도, 모터도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중력만으로 달리는 그래비티 레이싱 스포츠다. 참가자는 자체 개발된 GR(Gravity Racer) 차량을 직접 조종하며 약 1.2km 길이의 코스를 질주한다. 최고 시속은 약 60km다.
빠른 기록을 내는 요령은 의외로 단순하다. 되도록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것. 하지만 커브 구간에서는 나도 모르게 발이 브레이크로 향한다. 고속 상황에서는 ‘삐삐삐삐’ 경고음이 울리는데, 이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게 핵심이다. 소심한 레이서인 나는 커브마다 브레이크를 밟은 탓에 결국 하위권에 머물렀다. 일행 중에서는 의외로 운전면허가 없는 동료들의 기록이 좋았다. 역시 겁이 없어야 빠른 법이다.
9.81파크에는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중력만으로 속도를 즐기는 다운힐 레이싱, 한라산을 마주하고 자동 회차로 여유롭게 즐기는 업힐 레이싱이 있다. 총 4개 코스, 10개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레이싱에 최적화된 편경사와 커브 구간이 곳곳에 반영돼 있다.
9.81파크가 내세우는 가장 큰 장점은 ‘안전’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헬멧을 쓰지 않는다. 비결은 차량에 탑재된 센서다. 앞뒤 차량과의 거리를 실시간으로 인식해 충돌 위험을 원천 차단한다. 실제로 개장 이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안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속도를 즐기는 것. 어쩌면 9.81파크가 선사하는 가장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
레이싱 테마파크에서 야구 팀을 응원한다고?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주말의 약속이고,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즐거움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야구 팬은 스스로 팀의 일부가 되길 원한다. 제주도 애월읍에 자리한 9.81파크는 이러한 문화적 현상에 주목했다.
최근 2026시즌 KBO 리그와 9.81파크가 함께 선보인 ‘내 꿈은 KBO 981리그 응원단장’ 캠페인은 KBO 10개 구단 가운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고른 뒤 9.81파크 곳곳의 미션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팬이 직접 레이싱을 하고, 함성을 외치고, 기록을 만들며 자신의 구단을 응원한다. ‘내 꿈은 KBO 응원단장 풀패키지’를 선택한 나는 오랜 LG 트윈스 팬으로서 주저 없이 LG 트윈스를 골랐다.
9.81파크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깔고, 곧장 리그에 참가했다. 이제 액티비티 미션을 하나씩 도전하며 승률을 높이면 된다. 내가 참여한 레이스 기록과 미션 수행 결과, 응원 함성 등이 모두 데이터로 누적돼 구단 승률과 순위에 반영된다.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것을 넘어 직접 팀 경쟁에 뛰어드는 듯한 경험이다. 오해할까 봐 짚고 넘어가자면, 실제 프로야구의 순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구단 승률과 순위는 오직 9.81파크 안에서만 매겨진다. 그런데 이 경쟁심이 참 묘해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현실의 LG 트윈스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9.81파크 속 트윈스는 8위. 더 많은 승리와 함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목청껏 응원 구호를 외치게 된다. 출발선에서 터져 나온 함성이 부스터를 작동시킨다. 크게 외칠수록 유리하다. 승리에 작은 힘을 보탠다는 기분으로 출발. 실제 경기 결과를 바꾸진 못해도, 직접 몸을 움직여 팀을 응원하는 경험 자체가 짜릿하다.
0.001초까지 좇는 사람들
9.81파크의 진짜 재미는 레이스가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 레이싱 전용 차량과 티켓, 그리고 스마트폰 앱이 연결되면서 모든 주행 기록이 자동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내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기에 없던 경쟁심도 솟아나기 마련이다. 랩타임은 0.001초 단위까지 기록되고, 최고 속도와 평균 속도는 물론 코너를 돌 때 발생한 횡가속도까지 확인할 수 있다. 실내 전광판에는 실시간 랭킹이 계속 올라오고, 애플리케이션에는 다른 이용자들의 기록이 쌓여 있었다. 누가 경쟁하자고 말한 적은 없지만, 어느새 모두가 보이지 않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경쟁이 하루짜리 이벤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기록이 애플리케이션에 남는 덕에 여행이 끝난 뒤에도 자신의 랩타임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조금만 더 과감하게 코너를 돌았더라면’, ‘브레이크를 조금만 늦게 밟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기록은 추억이 아니라 다음 도전을 위한 목표가 된다. 실제로 더 빠른 랩타임을 위해 제주를 다시 찾고, 수십 번씩 레이스를 반복하며 상위 라이선스에 도전하는 이용객도 적지 않다.
F1의 테마파크 버전이랄까. 실력에 따라 단계별 라이선스가 주어지고, 최상위 참가자는 ‘GROC(Gravity Race Of Champions) 챔피언십 파이널’ 출전 기회를 획득하게 된다. 매달 진행되는 예선을 통과해야만 연말 결승 무대에 설 수 있다. 2025년 파이널 참가자들은 평균 10회 이상 9.81파크를 방문해 100회가 넘는 레이싱을 치렀다. 여행지에서 한 번 즐기고 끝나는 액티비티였다면 나오기 어려운 숫자다. 제주 여행의 추억으로 시작한 레이스가 어느새 기록을 좇는 취미가 되고, 9.81파크가 다시 제주를 찾게 만드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댕댕이도 달린다
9.81파크는 설채현 수의사와 함께 ‘반려견과 함께 981패키지’를 개발해 2023년부터 운영 중이다. 매주 토요일 하루, 한 차례만 진행된다.
반려견은 보호자와 함께 애월의 자연 속에서 다양한 냄새를 맡고 주변을 탐색하며 긴장을 푼 뒤 본격적인 액티비티에 나선다. 반려견은 전용 좌석에 탑승해 보호자와 함께 그래비티 레이싱을 경험한다. 제주 바다와 오름이 펼쳐진 코스를 달리는 동안 보호자와 반려견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특별한 추억을 쌓는다.
레이싱을 마치면 보호자와 강아지의 주행 장면을 담은 고화질 영상이 제공돼 더욱 특별하다. 역동적인 여행 기록이라는 점에서 반려가족들의 반응이 좋다고 한다. 액티비티가 끝난 뒤에는 반려견과 보호자가 한 공간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반려견에게는 전용 메뉴인 ‘멍트볼’과 ‘멍푸치노’가, 보호자에게는 제주산 식재료를 활용한 ‘브로콜리지’의 요리가 제공된다. 브로콜리와 컬리지의 합성어인 브로콜리지는 오로지 제주 식재료를 활용한 제철 메뉴를 선보이는 식당이다.
레이싱만 있는 게 아니다
9.81파크의 즐길거리는 레이싱이 전부가 아니다. ‘링고’는 충돌할 때마다 점수가 쌓이는 신개념 범퍼카다. LED 조명이 장착된 원형 차량에 올라 조이스틱으로 움직이며 겨루면 된다. 다른 차량의 후면과 측면을 공략하는 것이 유리한데, 특히 후면 공격 점수가 높다. 센서가 충돌 위치와 방향을 분석하면 AI가 곧바로 점수로 환산해 스마트폰으로 보내 준다.
‘프로아레나’는 FPS(1인칭 슈팅) 게임을 현실로 옮긴 서바이벌 액티비티다. 실제 전쟁 현장에 온 듯한 분위기다. 센서가 달린 조끼를 입고 3kg에 달하는 총을 멘다. 상대의 조끼를 정확히 맞히면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인체에 무해한 적외선 레이저 태그라 안전하다. 사격 실력만으로 이기는 게임은 아니다. 은폐와 엄폐가 가능한 구조물 사이를 오가며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팀원과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게임 내내 몇 명을 맞혔는지(Kill), 나는 몇 번이나 총을 맞았는지(Death), 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Assist)가 실시간으로 기록돼,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자신의 순위를 확인할 수 있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남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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