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고유가 기조가 아시아 자동차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분쟁 장기화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이 아시아 전역의 제조 및 물류 비용을 끌어올렸고, 전반적인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화석 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유가 급등에 대응해 재정 지원책을 내놓고 있으며, 일부 중앙은행은 약세화하는 통화 가치를 방어하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세안 시장의 엇갈린 명암, 필리핀 고유가 직격탄
올해 1~4월 기준 아세안(ASEAN) 주요 5개국의 신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0% 증가한 110만 대를 기록하며 표면적인 회복세를 보였다. 베트남은 빈패스트와 현대차의 선전에 힘입어 판매량이 38% 급증했고, 인도네시아(12.5% 증가)와 태국(15.0% 증가)도 지난주의 부진을 털어내고 반등에 성공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1.6% 성장에 그치며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곳은 필리핀이다. 필리핀의 상반기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2% 가까이 감소했으며, 특히 4월 판매량은 19%나 폭락했다. 정부 차원의 원유 비축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매 유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운송 부문이 마비되었고, 경제 성장률마저 1분기 2.8%로 고꾸라지면서 자동차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었다.
고유가 탈출구로 떠오른 배터리 전기차와 바이오 연료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면서 아시아 각국 정부와 소비자들은 포트폴리오 전환에서 돌파구를 찾는 모양새다. 인프라 부족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전역에서 순수 전기차(BEV) 판매는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각국 정부의 친환경차 인센티브와 현지 생산 대책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전기차는 중동발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운행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각되면서 대중교통 및 상용차 부문으로까지 빠르게 영토를 넓히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은 팜유 기반의 바이오 디젤 도입 가속화로 전선을 넓혔다. 말레이시아가 최근 B20 바이오 디젤로 전환한 데 이어, 인도네시아는 팜유 함량을 더 높인 B50 바이오 디젤 도입을 서두르며 에너지 자립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해상 물류 마비에 따른 카캐리어(자동차 운반선) 운임 상승과 원자재 공급망 차질은 여전히 아시아 완성차 수출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이란과 미국 간의 평화 협상 진전 소식과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운항 재개 조짐이 전해지면서 공급망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으나, 업계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로 시장 추이를 살피는 분위기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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