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운전자 10명 중 9명은 일상적인 도로 주행이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교통 전문가는 절반 이하만 이에 동의해 큰 '신뢰 격차(Trust Gap)'를 보였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전 세계 운전자와 교통 이용자 10명 가운데 9명은 도로에서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교통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전문가들은 절반도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교통사고 발생률과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이 조사 대상 10개국 중 일반 이용자와 전문가의 인식 차이가 가장 작은 국가군으로 분류됐다는 점이다. 실제 안전 지표와는 별개로 도로 안전에 대한 신뢰 수준은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이탈리아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브렘보(Brembo)의 지원을 받아 이코노미스트 엔터프라이즈(Economist Enterprise)가 발간한 '세이프티 인 모션: 드라이빙 트러스트 인 모던 모빌리티(Safety in Motion: Driving Trust in Modern Mobility)' 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보고서는 브라질, 중국, 프랑스, 독일, 인도, 이탈리아, 일본, 한국, 영국, 미국 등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 10개국에서 일반 이용자 5135명과 자동차·교통 분야 전문가 1022명 등 총 61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담았다. 조사 대상 국가는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의 약 75%를 차지한다.
조사 결과 일반 이용자의 90%는 "일상적인 이동이 안전하다"고 답했지만 전문가 가운데 같은 응답을 한 비율은 45%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이를 '신뢰 격차(Trust Gap)'로 정의하고 실제 안전 수준보다 높은 대중의 자신감이 오히려 도로 안전 개선을 늦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표 낮아도 신뢰는 높아… 엇갈린 대중과 전문가의 시선
도로 안전에 대한 일반 이용자와 교통 전문가의 신뢰도 비교. 한국은 일반 이용자의 안전 신뢰도 84%, 전문가 72%로 조사 대상 10개국 가운데 인식 격차가 가장 작은 국가군에 속했다. 반면 브라질·중국·인도는 이용자의 신뢰도는 90%를 넘었지만 전문가 평가는 크게 낮아 가장 큰 '신뢰 격차(Trust Gap)'를 보였다. 출처/Economist Enterprise, 'Safety in Motion: Driving Trust in Modern Mobility'(2026).
한국은 일본과 함께 '신뢰 수호형(Trust Guardians)' 국가로 분류됐다. 일반 이용자의 안전 신뢰도는 84%, 전문가는 72%로 조사돼 두 집단 간 격차가 12%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는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차이가 가장 작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이 독립적인 안전 검증 체계와 제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높은 안전 인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안전 성과가 악화될 경우 신뢰가 빠르게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브라질·중국·인도는 이용자의 94%가 안전하다고 답한 반면 전문가는 18%만 동의해 가장 큰 인식 차이를 보였다. 이들 국가는 교통사고 사망률도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높았다. 보고서는 "눈에 띄는 인프라 개선과 첨단 기술 확산이 실제 안전 수준보다 빠르게 대중의 신뢰를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전문가들이 바라본 '새로운 안전 위험'이다. 전문가의 30%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사용을 가장 큰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운전자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기능이 위험하다는 응답도 24%에 달했다. 반면 기계적 결함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 비율은 3%에 그쳤다.
새로운 안전 위협은 '기계' 아닌 '사람'… ADAS 맹신 주의
전문가들은 완성차 업체들이 ADAS 등 첨단 기술의 성능을 실제보다 과장해 광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62%의 운전자가 주의를 덜 기울여도 되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오토헤럴드 DB)
보고서는 "이제 자동차 안전의 핵심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의 상호작용"이라며 차량이 아무리 높은 안전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운전자가 시스템을 과신하거나 운전에 집중하지 않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 IIHS의 평가에서도 부분 자율주행 시스템 14개 가운데 11개가 운전자 주의 유지 항목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사례를 소개했다.
자동차 제조사의 마케팅 방식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의 65%는 광고가 기술 성능을 실제보다 과장한다고 답했고 62%는 운전자의 주의를 덜 기울여도 되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또 60%는 기술의 장점만 강조하고 한계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일반 이용자의 88%는 제한속도 강화와 과속단속 확대 등 보다 강력한 교통안전 정책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의 68%는 규제기관과 산업계의 협력 부족이 안전 개선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답했다.
보고서는 기술 혁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제조사와 정부, 독립 평가기관이 함께 기술의 성능과 한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신뢰와 실제 안전 수준이 함께 높아질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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