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 정부가 친환경차 세액공제 혜택을 대대적으로 폐지하며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 한파를 선사한 가운데, 미국 전기차 트렌드의 심장부인 캘리포니아주가 아주 화끈한 독자 노선을 선언했다.
바로 이번 여름 말부터 시행될 신규 보조금 프로그램 '마이퍼스트EV(MyFirstEV)'다. 무려 2억 7,000만 달러(약 3,700억 원) 규모로 조성된 이 프로그램은 죽어가는 전기차 시장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줄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특정 제조사를 겨냥한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
기존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세금 신고 기간까지 기다려 환급을 받거나 복잡한 신청 절차를 거쳐야 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매력도가 다소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마이퍼스트EV'는 철저하게 소비자 친화적인 '즉시 할인(Point-of-sale)' 방식을 채택했다. 첫 전기차를 사는 캘리포니아 주민이라면 매장에서 차를 계약하고 인도받는 즉시 차 가격에서 혜택이 차감된다.
● 신형 전기차(BEV): MSRP 5만 달러 이하 차량 구매 시 3,500달러(약 480만 원) 즉시 할인
● 중고 전기차(BEV): 2만 5,000달러 이하 차량 구매 시 1,750달러(약 240만 원) 즉시 할인
● 조건: 소득 제한 없음, 오직 '생애 첫 전기차 구매자' 기준
기존 연방 세액공제 폐지로 차량 가격 부담이 급격히 늘어났던 예비 오너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이번 정책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바로 '5만 달러 가격 상한선 우대 조항'이다. 기본적으로 3,500달러 할인을 받으려면 차 가격이 5만 달러 이하여야 한다. GM의 쉐보레 볼트나 이쿼녹스 EV,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같은 가성비 모델들이 수혜 대상이다. 하지만 이 법안에는 묘한 예외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2026년 1월 1일 기준, 주 정부 내에 본사를 두고 전동화 차량만 생산하는 브랜드의 경우 5만 달러의 가격 캡(Cap)을 면제(Waive)한다."
이 룰의 최대 수혜자는 누굴까? 바로 얼바인에 본사를 둔 리비안(Rivian)과 뉴어크에 본사를 둔 루시드(Lucid)다. 두 회사 모두 미국 내 생산 공장은 각각 일리노이와 애리조나에 두고 있지만, 기업의 브레인인 본사는 여전히 캘리포니아를 지키고 있다. 이 조항 덕분에 리비안의 프리미엄 SUV인 R1S나 루시드 에어(Air Pure 등)처럼 7만 달러가 가뿐히 넘어가는 럭셔리 EV 모델들도 아무 문제 없이 3,500달러의 즉시 보조금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세계 전기차 1위이자 캘리포니아 시장을 꽉 잡고 있는 테슬라는 어떻게 될까? 테슬라는 지난 2021년 본사를 텍사스 오스틴으로 전격 이전했다. 따라서 이 우대 조항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테슬라는 꼼수 없이 무조건 5만 달러 이하 가격 룰을 지켜야 한다. 다행히 최근 가격을 낮춘 모델 3 후륜구동(RWD)이나 모델 Y 기본형 등은 혜택을 받겠지만, 모델 S나 모델 X, 혹은 모델 Y 고성능 트림 등은 보조금을 단 1달러도 받을 수 없다.
연방 정부의 환경 규제 완화 기조에 찬성하며 오스틴으로 떠난 일론 머스크에게 캘리포니아주가 쓰라린 '고향의 매운맛'을 보여준 셈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마이퍼스트EV' 프로그램은 미국 연방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팽팽한 친환경 헤게모니 싸움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연방 정부가 환경 규제 스탠스를 뒤집고 보조금을 철폐하자, 미국 내 전기차 점유율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경제 블록인 캘리포니아주가 "우리는 우리 길을 가겠다"라며 독자 예산 편성으로 응수했기 때문이다. 제조사 매칭 펀드 방식을 도입해 주 정부의 예산 부담을 절반으로 낮추면서도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영리함이 돋보인다.
더 주목할 점은 극단적인 '지방 보호무역주의' 성격의 로컬 조항이다. 본사의 위치를 기준으로 세제 혜택 유무를 가르는 방식은 글로벌 무역 규범에서는 보기 드문 파격적인 설계다. 캘리포니아 정부로서는 고부가가치 엔지니어링 일자리와 법인세를 주 내에 묶어두기 위해 리비안과 루시드 같은 토종 기업들에 확실한 인센티브를 안겨준 것이다.
테슬라로서는 안방이나 다름없는 캘리포니아에서 자존심을 구기게 되었고, GM이나 현대차 등 타 제조사들은 촘촘하게 짜인 캘리포니아형 룰 속에서 5만 달러 이하 가성비 라인업의 판매 비중을 조율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았다.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깔린 철저한 자국 자치구 우선주의와 기업 길들이기. 캘리포니아가 쏘아 올린 보조금 제도가 연방 공백기 동안 미 서부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뒤흔들지, 그리고 타 주 정부들 역시 이 독자 노선에 동참하게 될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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