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3대 거장은 대체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 1452~1519), 미켈란젤로 보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 등 세 사람의 이탈리아 예술가를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이들이 남긴 작품은 다양하며 대단한 걸작입니다. 이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작품은 다빈치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는 ‘다비드’ 상과 시스틴 성당의 천정화 ‘천지창조’ 등이 대표적이고, 라파엘로는 ‘시스티나의 성모’와 ‘아테네학당’ 등을 꼽습니다.
물론 이들 세 거장들의 작품은 지금 이야기한 여섯 점만이 아니라, 모두 다 찾아서 쓰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완성도나 창의성에서도 어느 그림과도 비교되기 어려운 걸작들입니다.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는 가로 53cm에 세로 77cm로 오늘날의 종이 규격의 B2 크기(51.5ⅹ72.8 cm) 보다 약간 크며, 그가 51세에서 54세 사이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 수도원 식당 벽면에 그려진 벽화이며 가로 8.8m에 세로 4.6m로, 요즘의 2층 버스 정도 크기의 거대한 그림입니다. ‘모나리자’보다 5년 앞서서 다빈치가 더 젊은 나이였던 43세에서 46세 사이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한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의 크기는 받침대를 포함해 7.46m에 무게는 약 5.5t으로 대략 3층 건물 높이의 정말로 거대한 석조 조각품입니다. 이 거대한 조각상은 미켈란젤로가 26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기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이 4년동안 혼자서 돌을 깎아 인류 역사에 남을 걸작을 만든 것입니다.
게다가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천지창조’ 천장화는 전체 길이 약 40미터에 폭은 13미터로, 농구 코트 두 개를 길이로 이어 붙인 정도 크기의 초거대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많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돌을 직접 다루어서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의 역할이 더 컸기에 작품의 스케일이 정말로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한편, 또 다른 거장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티나의 성모는 그가 29세에서 36세 사이에 완성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한편, 그보다 앞서서 1511년경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아테네학당(The School of Athens)’ 이라는 벽화는 시점 상으로 그가 28세에 완성한 것이며, 가로 5m에 세로 7.7m로 역시 3층 건물 정도 크기의 실로 거대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철학가와 사상가 등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한 것으로, 거의 모두 실제의 인체 크기로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뛰어난 원근법과 사실적인 세부 묘사와 화면 구성 등 라파엘로의 재능이 발휘된 걸작입니다. 이 그림 역시 20대 나이의 젊은 청년 예술가 라파엘로의 에너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파엘로의 그림은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의 그림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느낌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다룬 그림은 역사상으로 보면 정말로 많았던 데다가, ‘아테네학당’ 그림은 가톨릭 종교화가 아니어서인지 서구에서는 그다지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편, 라파엘로의 성모화에서는 흥미로운 점도 보입니다. 그림 아래쪽에 두 명의 아기천사들이 매우 귀엽게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건 청년 라파엘로의 감성이 표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천사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천사 커피점(?)’ 이라는 곳의 컵과 간판 등에 그려진 아기천사와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귀여운 아기천사의 모습은 서구에서는 냉장고에 붙이는 기념품 자석을 비롯해 다양한 일상 속의 물건에 이미 오래 전부터 응용돼 왔습니다.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이런 천부적 재능은 오늘날에 와서는 이탈리아 자동차에서 변함없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약관 21세에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베르토네(BERTONE)에 수석디자이너로 발탁된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가 자신의 회사 이탈디자인(ITAL DESIGN)을 세워 독립하기 직전에 디자인한 1966년형 드 토마소(De Tomaso)의 망구스타(Mangusta), 그리고 쥬지아로의 후임으로 베르토네의 수석 디자이너를 맡은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 1938~2024)가 디자인한 1968년형 람보르기니 미우라(Miura)를 비롯해, 근대의 거의 모든 페라리 차량을 디자인한 피닌파리나(Pinifarina) 스튜디오의 수석 설계자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Leonardo Fioravanti; 1938~)의 첫 페라리 디자인 디노(Dino) 등은 모두 그들이 28세 전후였던 나이에 디자인했습니다.
이후 간디니는 오늘날 슈퍼 카의 시조와 같은 쿤타치(Countach)의 첫 디자인을 1971년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는 1980년에 나온 피아트132를 비롯해 BMW의 1세대 5시리즈 등을 디자인합니다.
쥬지아로는 1980년에 등장해서 나중에 영화 ‘백 투더 퓨처’의 영원한 타임머신이 된 드로리언(DeLorean)을 디자인합니다.
피닌파리나의 피오라반티는 페라리 중의 페라리라고 불렸던 F40과 그의 직접적인 선행 모델이자 페라리 디자인의 전형(典型)이라고 불렸던 1984년형 페라리 288 등을 디자인합니다.
여기 사진을 싣고 설명한 차들은 이들 세 사람의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차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들 3인의 20세기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들과 앞서 살펴본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의 3인의 거장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사물에 대한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일 것입니다. 3층 건물 높이의 석조 조각이나 그림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완성한다는 건 재능과 의지, 그리고 열정이 결합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에 필적하거나 그것을 능가하는 연산능력을 가진다고 해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해 그것을 가시화하는 능력과 의지, 그리고 열정일 것입니다. 미래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여러 능력을 대신할 지도 모르지만, 오직 인간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과연 사람보다 더 잘해내서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쿤타치, 드로리언, 288 같은 가슴 설레는 자동차를 디자인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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