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 의외로 큰 진입장벽이 되는 것이 바로 ‘새로운 규칙을 익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쪼개 게임을 즐기려는데, 플레이에 앞서 긴 설명서를 읽고 복잡한 규칙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적지 않다. PC나 콘솔은 물론 보드게임 시장에서도 익숙한 규칙을 가진 클래식 작품이나 기존 게임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규칙을 익히는 부담 없이 게임을 꺼내자마자 바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코리아보드게임즈가 국내에 선보인 ‘핀볼 배틀돔’이다. 2명부터 최대 4명까지 즐길 수 있는 액션 보드게임으로, 이름 그대로 핀볼처럼 구슬을 튕기며 상대와 대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핀볼 배틀돔’은 제법 역사가 깊은 게임이다. 미국의 장난감 및 게임 제조업체로 너프, ‘모노폴리’, ‘클루’ 등의 제품을 선보였던 파커 브러더스가 지난 1994년 출시한 작품을 뿌리로 한다. 핀볼 게임을 기반으로 여러 사람이 공방전을 벌이는 독특한 구조 덕분에 이후 ‘파이어볼’, ‘핫 록스’, ‘플리퍼 아레나’, ‘마블 돔’, ‘포켓몬 배틀돔’, ‘도라에몽 배틀돔’ 등 여러 제작사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변주돼 왔다.
물론 이런 과거의 배경을 전혀 모르더라도 게임을 즐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규칙과 플레이 방식이 워낙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날아오는 구슬을 플리퍼로 튕겨 상대방 쪽으로 보내면 된다’는 것 하나만 알고 있어도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게임판 중앙에는 탑처럼 생긴 ‘구슬 분배기’가 자리 잡고 있다. 손으로 태엽을 감은 뒤 스위치를 ON으로 두면 분배기가 작동하면서 구슬을 하나씩 게임판으로 떨어뜨린다. 전자 장치나 별도의 전원 없이 순수하게 태엽의 힘으로 작동한다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다만 처음 사용할 때는 태엽을 얼마나 감아야 하는지 조금 헷갈릴 수 있다. 태엽을 감는 과정에서도 ‘티딕, 티딕’ 하는 소리가 나는데, 충분히 감겼을 때 들리는 ‘타다닥’ 소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타다닥’ 소리가 들리면 더 이상 힘을 줘 돌리지 않는 것이 좋고, 그전까지 들리는 가벼운 작동음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분배기에서 나온 구슬은 경사진 게임판을 따라 이리저리 굴러 내려온다. 이때 자신의 구역으로 향하는 구슬을 핀볼 게임처럼 플리퍼로 쳐내면 된다. 플리퍼를 빠르게 움직여 다른 이용자의 구역으로 공을 넘기기도 하고, 벽이나 중앙 구조물에 공을 튕겨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보내기도 한다.
미처 쳐내지 못한 구슬은 플리퍼 아래쪽의 바구니로 들어간다. 모든 구슬이 떨어지고 나면 각자 바구니에 들어온 구슬을 확인해 점수를 계산한다. 노란색 구슬은 -1점, 검은색 구슬은 –5점이고, 종합해서 벌점이 가장 낮은 사람이 해당 라운드의 승점 1점을 가져간다. 이렇게 먼저 승점 5점을 모은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된다.
승점은 각자 담당하는 플리퍼 위쪽에 바로 표시할 수 있다. 덕분에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현재 점수를 기억하거나 종이에 따로 기록할 필요도 없다. 구슬만 세고 승점 표시를 옮긴 뒤 곧바로 다음 게임을 시작하면 된다.
직접 플레이해보니 게임은 상당히 원초적인 재미가 있었다. 구슬이 빠르게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슬아슬하게 공을 쳐냈을 때의 손맛, 상대방에게 연달아 공을 넘겼을 때의 쾌감이 확실하다. 반대로 여러 개의 구슬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플리퍼를 정신없이 움직이다 결국 공을 놓치는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탄식이 터져 나온다. 게임의 규칙을 몰라도 주변에서 플레이하는 모습만 보면 무슨 상황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구슬 분배기가 태엽을 동력으로 사용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배터리를 넣거나 번거롭게 전원을 연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게임판을 펼칠 자리만 있다면 바로 플레이할 수 있다. 전자 장치가 들어간 장난감과 달리 배터리가 떨어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인원 구성에도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한다. 보드게임은 가족 단위로 4명이 딱 맞게 모이는 경우도 있지만, 연인이나 친구끼리 2명 또는 3명처럼 애매한 인원으로 즐기는 경우도 많다. ‘핀볼 배틀돔’은 사용하지 않는 방향을 전용 가림막으로 막아둘 수 있어 4명을 모두 채우지 않아도 된다. 2명끼리 마주 보고 대결하거나 3명이서 한 구역을 막아놓고 즐기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제품 특성상 알아둬야 할 부분도 있다. 먼저 4명이 동시에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인 만큼 크기가 작은 편은 아니다. 공식 제품 크기는 약 440×440mm로, 실제로 펼쳐놓으면 일반적인 가정용 식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소음도 어느 정도 발생한다. 태엽식 구슬 분배기가 작동하는 소리에 여러 개의 구슬이 게임판을 굴러다니고, 플리퍼와 각종 구조물에 부딪히면서 계속 소리가 난다. 내부에는 구슬이 부딪히면 소리를 내는 종 형태의 부품도 있어 게임이 진행될수록 꽤나 떠들썩해진다.
원한다면 해당 부품은 탈착할 수 있어 소리가 부담스럽다면 빼놓고 즐길 수도 있다. 다만 구슬이 종을 때리며 ‘챙’ 하고 울리는 소리가 게임에 박진감을 더해주기도 하니, 개인적으로는 굳이 제거하기보다는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는 낮 시간대에 제대로 소리를 내며 즐기는 쪽을 추천한다.
또 게임판 주변에 그물망이 설치돼 있어 구슬이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대부분 막아주지만, 격하게 플레이하다 보면 간혹 구슬 한두 개가 그물망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구슬을 잃어버리기 쉬운 야외보다는 실내에서 즐기는 편을 추천한다.
종합하면 ‘핀볼 배틀돔’은 복잡한 규칙 없이도 여러 사람이 모여 즉시 웃고 떠들 수 있는 파티 게임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초등학생 정도의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버를 움직여 플리퍼로 구슬을 튕기는 조작 자체에서 손맛이 느껴지고, 눈앞에서 여러 개의 구슬이 빠르게 굴러다니기 때문에 긴 설명 없이도 금세 흥미를 붙일 수 있어 보인다.
이렇듯 복잡한 설명 없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게임, 혹은 친구들이 모였을 때 부담 없이 꺼내 들 수 있는 파티 게임을 찾고 있다면 ‘핀볼 배틀돔’은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