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인학회는 우리나라 대·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경영·경제·법학·공학자들의 지적 교류를 이끌며 동반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학계와 기업 주요 관계자 대상으로 매년 각종 산학 연구회를 열고 학술지를 발간하며 교육과 자문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IT동아는 한국경영인학회와 기고를 통해 학계, 주요 기업 인사들의 경험과 혜안을 전달합니다.
[IT동아] 최근 AI의 발전 속도는 인간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10년 전 알파고의 등장에 모두가 놀랐지만, 요즘 AI의 발전된 능력엔 견줄 바가 못 된다. 앞으로 AI는 하나의 기술을 넘어서 인류와 공존하는 필수불가결한 파트너가 될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가 AI 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술주권 차원에서 독자적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는 노력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AI 국가전략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 미국이나 중국과의 규모 경쟁에 전력을 다하기보다는, AI를 '활용'해 국가 경쟁력과 산업 생산성을 동시에 제고하는 전략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전략은 국내 공공 부문과 산업 부문의 ‘투 트랙’(two track)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공공부문의 전략으로 '상호운용 가능한 AI 생태계(Interoperable AI Ecosystem)'의 구축이 필요하다. 만약 공공부문에서 보건의료·복지·교육·행정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AI 에이전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그들이 각기 다른 플랫폼과 상이한 데이터 형식들로 운영된다면, 이는 마치 고속철이 달리다가 선로폭이 달라져 열차를 바꿔야 하는 것과 같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병원 AI가 환자의 건강정보를 분석하고, 복지 AI가 복지혜택을 판단하고, 교육 AI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행정 AI가 정부 서비스를 처리할 때 각 AI에이전트 간에 '상호 운용성'이 있다면 데이터형식과 인증체계, 프로토콜에 일관성을 가져 AI의 장점을 살린 편리한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상호 운용성이란 각 기관의 데이터를 하나의 국가 데이터베이스로 통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데이터는 각 기관이 보유하되,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와 접근 권한을 전제로 공통 표준이나 프로토콜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안전하게 교환하고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미 세계 주요나라의 AI 정책 의제로 부상 중이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올해 2월 AI Agent Standards Initiative를 출범시키며 에이전트 간 상호 운용성과 개방형 프로토콜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OECD 역시 『Digital Government Outlook 2026』에서 상호 운용성을 디지털 정부의 중요한 과제로 강조한 바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정부 역량과 상당한 수준의 공공데이터 공유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그 위에서 AI 에이전트 간 상호운용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시작하고 있다. 향후에도 국가 차원의 상호운용 원칙과 표준체계를 지속적으로 정비·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산업 차원의 AI 활용 전략은 한국의 강점인 제조업 기반 경쟁력을 AI와 효율적으로 접목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즉, 우리의 AI 산업 전략은 '누가 가장 좋은 AI모델을 만드는가'보다 '누가 AI를 생산현장에 잘 활용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자동차·조선·배터리·철강 등 다양한 제조업의 역량을 집적했고, 대기업에서 중소 부품업체까지 촘촘한 공급망과 수십 년간 축적된 제조 데이터에 현장 노하우까지 가졌다. 이는 미국이나 중국의 범용 AI 모델을 단순히 따라잡는 것과는 다른 한국만의 경쟁자산이다. 조선산업의 예를 들면, AI가 단순히 '조선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는 AI'가 아니라 설계기간 단축, 용접불량 감소, 설비고장 예측, 로봇의 용접·도장을 관리하는 AI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정부가 공공 부문의 전략은 상호 운용성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고도의 조정과 조율을 하되, 산업 부문의 AI 활용 전략은 지나치게 통합 모델과 운용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는 제조업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제조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 기반도 필요하겠지만, 정책의 무게중심은 각 산업의 특성에 맞는 ‘산업특화 AI 시스템’의 경쟁력 확보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업 특화 AI 시스템은 다양한 범용 모델을 활용하면서도 산업별로 축적된 데이터와 전문노하우를 결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은 조립과 용접, 도장 등이 중요하고 반도체는 나노 단위의 공정 제어와 수율 확보가 중요하다. 각 산업마다 경쟁력 요인이나 제조 특성이 다르므로 이를 반영하려면 통합, 중앙집중적 모델보다 보다 독립적이고 특화된 모델을 운용해야 우리 산업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가장 거대한 모델 하나를 보유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국민생활에서는 서로 다른 AI에이전트가 막힘없이 연결되고, 산업현장에서는 각 산업의 데이터와 노하우를 가장 잘 이해하는 AI가 경쟁해야 한다. 공공의 AI는 연결하고 산업의 AI는 전문화하는 것, 이것이 한국이 선택해야 할 투트랙 AI 전략이다.
글 / 이상철 한국경영인학회 고문
이상철 한국경영인학회 고문은 KT 사장, LG유플러스 부회장을 역임하며 통신 산업에 기여한 기업인이다. 2002년에는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직을 맡아 첨단 통신 산업 발전의 주춧돌을 놓았고, 광운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며 청년 인재 육성을 이끌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경영인학회 고문으로 경험과 지식을 나눈다.
정리 / IT동아 차주경 기자 (racingcar@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