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환의 불편한 계산법이 있다. AI 모델과 솔루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0% 내외이고, 나머지 90%는 데이터 정비, 설비 연결,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 인력 교육, 책임체계 구축과 같은 실행의 영역”이라는 것이다.(박태웅 의장-AI전문가)
엄밀한 통계라기보다 AX의 본질을 압축한 표현이지만, 국내 중소제조업의 현실을 정확하게 찌른다.
정부와 기업은 스마트공장, 제조 AI, 자율제조를 이야기한다. 수많은 기업의 대표들은 “우리도 AI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공급기업은 불량 예측과 설비 예지보전이 가능한 솔루션을 제안한다.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착수보고회와 시연회도 성대하게 열린다. 그러나 사업이 끝난 뒤 현장에 가보면 작업자는 다시 수기로 생산량을 기록하고, 엑셀로 실적을 정리하며, AI 화면은 사무실 한쪽 모니터에서 멈춰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AI가 실패한 것이 아니다. AI가 일해야 할 공장과 조직이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마트공장은 늘었지만 ‘생각하는 공장’은 드물다
2024년 스마트제조혁신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장을 보유한 국내 중소·중견 제조기업 가운데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은 19.5%였다. 그러나 도입기업의 75.5%가 기초 단계에 머물렀고, 제조 AI를 실제 도입한 기업은 전체의 0.1%, 향후 도입 계획이 있는 기업도 1.6%에 불과했다. ERP 도입 비율은 높았지만 AI와 디지털트윈 같은 고도화 기술은 0.5% 이하에 그쳤다. 스마트공장은 보급됐지만, 데이터로 판단하고 스스로 공정을 최적화하는 공장으로의 전환은 이제 시작 단계인 셈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실태조사)
그동안의 스마트공장 사업이 의미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스마트공장 구축기업에서 생산성 향상, 품질 개선, 원가 절감과 같은 성과가 확인됐다. 문제는 설비와 시스템을 설치하는 ‘디지털화’와 AI가 경영 및 생산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AX’를 같은 것으로 착각해 왔다는 데 있다.
MES를 설치했다고 생산계획이 자동으로 최적화되는 것은 아니다. 센서를 부착했다고 고장을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데이터를 수집하더라도 측정 기준이 공정마다 다르고, 불량 코드가 작업자별로 다르게 입력되며, 금형·원재료·작업조건이 바뀐 기록이 누락돼 있다면 AI는 배울 수 없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는 원리는 생성형 AI 시대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중소제조업 AX가 좌초되는 다섯 가지 이유
첫째, 해결해야 할 경영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
많은 기업이 “AI를 어디에 도입할 것인가”부터 묻는다. 그러나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 공장에서 가장 비싼 손실이 어디에서 발생하는가”이다. 납기 지연인지, 반복 불량인지, 돌발 정지인지, 과잉 재고인지부터 계산해야 한다. 문제가 정의되지 않으면 AI는 값비싼 전시품이 된다.
둘째, 데이터가 업무 과정과 분리돼 있다.
현장 데이터는 설비에 갇혀 있고, 생산정보는 MES에, 주문정보는 ERP에, 품질정보는 엑셀과 종이에 흩어져 있다. 오래된 설비는 외부 통신을 지원하지 않으며 설비마다 데이터 형식도 다르다. AI 모델을 만드는 비용보다 데이터를 연결하고 의미를 통일하는 비용이 더 커지는 이유다.
셋째, 사업비는 있어도 운영비는 없다.
기업은 카메라, 센서, 서버와 솔루션 구축비는 예산에 반영하지만 데이터 정제, 모델 재학습, 보안, 유지보수, 작업자 교육비는 빠뜨린다. 그런데 제조 AI는 한 번 설치하고 끝나는 기계가 아니다. 원재료, 금형, 계절, 제품 사양이 바뀌면 모델의 정확도도 달라진다.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몇 달 뒤에는 현장이 AI의 판단을 믿지 않게 된다.
넷째, 현장 숙련자를 변화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제조업의 핵심 데이터는 데이터베이스에만 있지 않다. 기계 소리만 듣고 이상을 감지하는 반장, 제품 표면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는 검사원, 주문 변동에 맞춰 공정 순서를 바꾸는 생산관리자의 머릿속에 있다. 이들을 배제한 채 외부 공급기업과 경영진만으로 만든 AI는 현장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숙련자는 AI에 대체될 사람이 아니라 암묵지를 데이터와 규칙으로 바꾸는 공동 설계자여야 한다.
다섯째, 책임자가 없다.
대표는 총괄 지시만 하고, 생산부서는 IT 업무라고 생각하며, 전산담당자는 공정을 모르고, 공급기업은 계약 범위까지만 책임진다. 결국 정부 과제가 종료되는 순간 AX도 함께 종료된다. 성공적인 AX에는 예산과 데이터, 부서 간 갈등을 조정할 권한을 가진 단 한 명의 책임자, 즉 ‘AX 오너’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성공 사례의 공통점은 기술보다 실행이다
국내 어느 엔지니어링 회사는 자동차 부품 품질검사에 AI 비전검사와 설비 예지보전을 적용해 불량률을 42.3% 낮추고 생산성을 20.8% 높였다. 이는 단순히 카메라를 설치한 결과가 아니다. 검사 기준을 데이터화하고, 설비 상태와 불량의 관계를 추적하며, AI 결과가 실제 품질관리 업무로 이어지도록 공정을 바꾼 결과다.
자동차 용접 공정에서는 AI 기반 오프라인 프로그래밍을 통해 기존 6주가 걸리던 로봇 작업 준비기간을 3일로 줄인 사례도 나왔다. 중요한 것은 ‘최신 AI를 도입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병목이었던 프로그래밍 작업 자체를 새롭게 설계했다는 점이다. AI는 기존 업무에 하나 더 붙인 장식이 아니라 업무 흐름을 바꾸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해외 사례도 같은 교훈을 준다. 독일 보쉬의 튀르키예 부르사 공장은 AI 기반 폐쇄루프 공정제어를 적용하는 동시에 전 직원을 재교육했다. 그 결과 단위 제조원가와 설비종합효율이 각각 9% 개선됐다. 기술 도입과 100% 인력 전환을 함께 추진한 것이 핵심이었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지멘스 난징 공장도 50개가 넘는 AI 활용사례를 개별적으로 흩어놓지 않고 디지털트윈, 모듈형 자동화, 생산운영시스템과 연결했다. 그 결과 리드타임 78%, 현장 고장 46%를 줄였다. 싱가포르의 로크웰 오토메이션 공장 역시 AI 품질관리와 지능형 유지보수를 숙련지식 관리와 결합해 인당 생산량을 43% 높이고 작업 숙련기간을 67% 단축했다. 이들의 경쟁력은 특별한 모델 하나가 아니라 여러 기술과 사람, 업무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묶은 데서 나왔다. (세계경제포럼 2026 등대공장 사례)
《AX 성공을 위한 일곱 가지 조건》
국내 중소제조기업이 성공하려면 다음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AI가 아니라 손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불량비용, 비가동시간, 납기 지연, 에너지 낭비 가운데 가장 큰 문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둘째, 구축 전에 공정을 표준화해야 한다.
사람마다 작업방법과 판정기준이 다르면 AI도 일관된 판단을 할 수 없다.
셋째, 최소한의 데이터 기반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
모든 설비를 연결하려 하지 말고 핵심 공정의 필수 데이터부터 정확하게 수집해야 한다.
넷째, 대표이사 직속의 AX 오너와 현장 중심의 소규모 전담팀을 둬야 한다.
생산·품질·설비·IT 담당자와 숙련자가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다섯째, 기술지표가 아니라 경영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모델 정확도 95%보다 불량비용이 얼마나 줄었는지, 납기가 얼마나 짧아졌는지가 중요하다.
여섯째, 작업자가 AI를 거부하지 않도록 참여와 보상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AI가 감시와 구조조정의 도구로 인식되는 순간 현장 데이터의 품질과 활용도는 함께 떨어진다.
일곱째, 파일럿을 시작할 때부터 확산 조건을 정해야 한다.
8~12주 안에 성과를 검증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어떤 공정과 공장으로 확산할지 미리 결정해야 ‘영원한 시범사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부 지원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장비와 솔루션 설치비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공정진단, 데이터 표준화, 현장인력 교육, 보안, 유지관리까지 묶어 지원해야 한다. 개별 중소기업이 모든 전문가와 인프라를 보유하기 어려우므로 산업단지와 업종별로 공동 데이터센터, AI 전문가, 테스트베드와 표준모델을 공유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산업 AX의 목표는 사람이 없는 공장이 아니다. 사람이 반복 작업과 경험적 추측에서 벗어나 더 정확한 판단과 개선에 집중하는 공장을 만드는 것이다. AI 모델을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그 모델이 매일 사용되고, 작업자의 행동을 바꾸며, 경영성과로 연결되도록 조직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결국 국내 중소제조업의 AX 경쟁력은 누가 더 거대한 AI를 보유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정확하게 현장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와 공정을 연결하며 끝까지 책임지고 실행하는가에 달려 있다.
AI 전환은 기술 구매가 아니다. 공장의 운영방식과 사람의 일하는 방식을 함께 바꾸는 변화관리를 포함한 전사적 경영혁신이다. 바로 그 불편한 90%를 감당하는 기업만이 AX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AI 생성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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