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섬과 섬 사이를 건너는 일은 하나의 순례와 닮았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진도 대마도에서 변하지 않은 풍경과 달라진 섬의 삶을 만났다.
말이 쉬어 가던 섬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대마도다. 일본의 대마도(쓰시마섬)가 아닌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토종 우리 섬. 약 5년 만이다. 그런데 섬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폭염으로 생겨난 느닷없는 이류무(뜨거운 공기가 비교적 차가운 해수면을 지날 때 발생하는 바다 안개)가 원인이다. 예기치 않은 결항으로 하루를 진도항 부근에서 보내고 그다음 날에야 여객선에 올랐다. 오전 9시 50분에 출항하는 한림페리 11호 2항차의 여정은 특별하다. 1, 3항차가 조도 창유항을 왕복하는 것과는 달리, 여러 낙도를 지나 멀리 서거차도까지 운항한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대마도다.
조선시대 전남 진도 일대는 전국 최대 규모의 국영 말 목장이 자리했던 곳이다. 그중 대마도는 바다라는 천혜의 울타리를 두른 자연 방목지였다. 제주에서 육지로 향하던 말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중간 기지이자 사육장 역할도 했다. 대마도를 비롯해 조도 군도의 소마도와 관사도 역시 우마장과 방목지, 감목소(監牧所)로 활용됐다. 섬 이름 곳곳에 남은 ‘말의 흔적’이 당시의 풍경을 짐작하게 한다.
변하지 않은 풍경, 달라진 삶
이따금 여행은 여전함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낙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대마도의 겉모습은 시간을 생략해도 좋을 만큼 그대로였다. 마을 길과 가옥들 그리고 생선을 널어놓은 장대까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대마마을 뒤편의 마미동해변을 찾았다. 야영하던 중 밤새 텐트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는 해변이다. 마을에 살던 노인은 모처럼의 이방인을 어여삐 여겨 샘에서 길어온 물 한 통을 선뜻 내어 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달라진, 아니 크게 좋아진 점이 생겼다. 급수선이 들어와 선착장 탱크를 채워야 했던 고질적 물 부족 섬에 최대 2만톤을 저장할 수 있는 식수 전용 저수지와 정수·배수 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마침내 이루어진 절실한 바람, 섬 주민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마미동해변의 극자연적 풍광은 개인적 취향과 일치한다. U자형으로 깊게 만입된 해안선과 길이 400m의 오붓한 백사장은 마치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고립감을 준다. 게다가 수평선 위로 동거차, 서거차도 섬까지 마주하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많은 섬이 그렇듯 주민들의 생활 영역은 섬 면적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대마도를 탐방하는 일 역시 의외로 간단하다. 선착장을 기점으로 대마마을을 살핀 다음 대막리까지 다녀오면 끝이다. 물론 그 속에 마미동해변도 있고 시아시해변도 있다. 관매도와 마주보고 있는 시아시해변은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 선정 당시 야영장 조성 등의 도서개발이 계획됐던 곳이다. 그러나 예산이 실질적인 주민 소득 및 방문객 수용 중심의 자립형 시설로 다듬어지면서 무산됐다. 따지고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주민의 삶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하고, 모든 섬에 엇비슷한 관광 인프라를 조성할 필요는 더욱 없다. 때때로 성의 있는 여행자들이 만들어 내는 여정만으로 섬의 가치는 더더욱 채워질 테니까.
하룻밤이 더하는 감동
대마도는 풍요로운 섬이다. 선착장 앞 갯벌만 나가도 전복과 뿔소라, 문어 등을 채취할 수 있다. 게다가 인근 해역은 암반이 많고 해조류가 풍부해서 종묘방류를 통한 대규모 해삼 양식이 이뤄졌을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평화롭고 넉넉한 섬 역시, 고령화와 인구 유출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몇 년 전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조도초등학교 대마분교장은 현재 휴교 상태에 접어들었다.
한편, 대마도를 찾아온 탐방객은 대부분 당일 출도를 계획한다. 서거차도를 향해 갔던 한림페리 11호가 다시 돌아와 기항할 때까지 걸리는 3시간 15분을 활용하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섬을 제대로 느껴 보려면 하룻밤은 기본이다. 머무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섬의 정서를 훨씬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대마도에서의 슬기로운 여행법 중 하나는 야영이다. 온갖 색이 요동치는 찬란한 저녁, 밤하늘에 가득한 별빛, 그리고 어슴푸레 눈을 떴을 때 찾아든 파란 새벽녘의 경험만으로도 여행의 감동은 배가된다.
낙도민의 발, 맞춤형 여객선 섬사랑호
다음날 아침, 타고 나갈 여객선은 섬사랑 10호다. 하조도 창유항으로 나가 배를 갈아탈 작정이다. 섬사랑 10호는 아침 8시 30분 목포를 출항해 31개 도서를 경유하는 ‘낙도보조선’으로 마지막 섬까지의 소요 시간도 무려 9시간 30분이나 된다. 이 배는 서거차도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반대로 목포까지 같은 항로를 거슬러 간다(섬사랑 13호와 교차 운항한다).
‘국가 보조항로’는 국가가 선박과 그 운영 비용을 지원하는 해상교통망이다. 수익성이 낮아 민간 선사들이 꺼리는 적자 항로지만, 낙도민에겐 육지를 오갈 수 있는 귀한 통로다. 우리나라에는 29개의 보조항로가 있다. 그중 섬사랑호로 대표되는 여객선은 목포, 완도, 진도 등 남도의 주요 거점과 인근의 작은 섬들을 묵묵히 잇고 있다.
섬사랑호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맞춤형·예약형 운항 체계다. 이용객이 적은 소규모 도서 특성상 고정된 시간표대로만 움직이지 않고, 기항지별 사전 전화 예약제로 운영된다. 승객이나 화물이 없으면 통항을 생략해 효율성을 높이거나, 조석차와 기상 악화에 따라 실시간으로 운항 시간을 조율하는 유연성 또한 갖추고 있다.
섬사랑호는 언제나 추억을 소환한다. 목포를 기점으로 수년간 마진도, 백야도, 율도, 고평사도, 가사도, 라배도, 서거차도 등을 여행했다. 진도항에서 출항하는 또 하나의 섬사랑호를 타고는 더 멀리 맹골도와 죽도를 여행했다. 그중, 노을빛이 유난히 고왔던 고사도, 짙푸른 바다 위에서 맛본 서거차도 멸치회, 맹골도와 죽도에서의 찐 야생 캠핑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누군가는 낙도를 여행하는 일을 순례길에 비유했다. 뱃길 위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섬은 저마다의 풍경과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섬사랑호는 그 길 위에서 섬과 섬, 섬과 육지를 묵묵히 잇는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