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한만혁 기자] 2027년 1월 1일부터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양도, 대여 소득에 대한 과세가 시행된다. 정부는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업계와 학계에서는 유예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명확한 기준과 과세 및 집행 인프라가 미비하다는 이유다. 9월 3일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과세 토론회에서도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토론회 참여자들은 소득 분류 체계, 인프라 미비 등을 지적하며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세 차례 유예된 디지털자산 과세, 정부는 ‘예정대로 시행’
디지털자산 과세는 지난 2020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개정 소득세법은 당초 2022년 시행 예정이었지만, 과세 자료 확보, 신고 납부 지원 체계 및 이용자 보호 체계 보완, 취득가액 산정 방식 보완 등을 이유로 세 차례 유예됐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른 과세 시행일은 2027년 1월 1일이다.
현행 소득세법은 디지털자산 양도나 대여로 발생한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연간 소득에서 기본 공제액 250만 원을 제외한 금액에 기타소득세 20%와 지방소득세 2%를 합산한 총 22%의 세율을 적용한다. 신고 납부는 다음 해 5월 1일부터 31일까지인 종합소득세 신고 기한 내에 신고 및 납부해야 한다. 과세가 내년에 시행되면 2027년 거래분에 대한 최초 신고는 2028년 5월에 이뤄진다.
2025년에는 취득가액 평가 방법을 기존 이동평균법 대신 거주자별로 보유 자산을 통합해 평균을 내는 총평균법으로 전환했다. 2026년 12월 31일 기준 시가와 실제 취득한 금액 중 큰 금액을 취득가액으로 인정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예정된 일정대로 과세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7월 29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예정대로 내년부터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라며 “시행 이후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해 나가겠다”라고 전했다. 문경호 재정경제부 소득세제과장도 지난 5월 7일 열린 ‘가상자산 과세, 긴급 점검 토론회’에서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디지털자산도 과세하는 것이 맞다”라며 “자본이득 과세를 유예하거나 폐지하면 근로소득, 사업소득과의 형평성이 깨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크다. 과세 기준과 인프라가 미비한 상태에서 과세를 시행하면 글로벌 시장이나 다른 금융투자 자산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9월 3일 열린 '2027년 가상자산 과세 체계 점검 토론회'에서는 법조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현행 과세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토론회는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와 한국조세법학회가 주관한 것으로, 디지털자산 과세와 관련해 여당 의원이 주최한 첫 국회 토론회다.
박종수 교수 “현행 과세 체계 미비, 다양한 거래 유형 반영해야”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박종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겸 한국조세법학회장은 현행 과세 체계를 ▲다양한 거래 유형 반영 여부 ▲다른 금융투자 상품 과세 체계와의 정합성 ▲국세청의 과세 인프라 및 산정 절차 체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점검했다.
박종수 교수는 먼저 거래 유형별 소득 분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디지털자산 과세에 대해 논의하던 때와 달리 오늘날의 디지털자산 거래 행위는 매매, 채굴, 스테이킹, 랜딩, 유동성 공급 등으로 다양해졌다”라며 “현행 소득세법은 디지털자산 거래 행위를 양도와 대여로 특정지어 기타소득으로만 규정한다”라고 짚었다.
매매나 교환, 처분 등 투자형 거래는 양도 개념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외의 다른 거래 행위 유형은 양도나 대여에 넣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채굴은 사업적으로 이뤄지는 경우와 비사업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를 구분해야 하고, 스테이킹이나 유동성 공급처럼 여러 거래 행위가 결합된 복합 거래는 세부 요소를 나눠 적합한 소득 유형으로 구분해야 한다. 또한 무상으로 지급되는 에어드랍은 소득인지 증여인지도 검토해야 한다.
박종수 교수는 국내 과세 체계와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비교하며 “우리나라는 디지털자산 과세를 기타소득으로 일원화한 반면 해외 주요국은 거래 성격에 따른 구분을 통해 자본소득, 사업소득, 통상소득, 사적 양도 거래 등으로 세분화하고 있으며 손실 이월공제도 모두 허용한다”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는 다른 금융상품 과세 체계와의 정합성을 지적했다. 금융투자 상품의 경우 예금 이자는 이자소득으로, 주식 배당은 배당소득으로 과세하며, 해외 주식 매매 차익은 국내 주식과 마찬가지로 양도소득으로 분류한다. 반면 디지털자산은 세부 분류 없이 기타소득 하나로 묶여 있다. 박종수 교수는 “동일한 성격의 기초자산인데 투자 경로가 다르다고 소득 분류가 달라지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조세 중립성 차원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손실 이월공제에서도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사업소득은 15년간 손실 이월공제가 허용되지만 디지털자산은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종수 교수는 가격 변동성이 크고 손익 실현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디지털자산의 특성을 고려하면 손익 조정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지적한 부분은 과세 및 집행 인프라 미비다. 취득가액 평가 방식이 거주자별 총평균법으로 바뀌면서 납세자가 국내외 여러 거래소와 개인 지갑에 흩어진 취득 내역을 모두 찾아 신고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해외 거래소나 디파이(DeFi)를 이용하는 경우 수량, 원화 환산 가액, 수수료, 지갑 이전 내역 등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가상자산사업자(VASP) 간에 거래 내역을 상호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박종수 교수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세 집행이 원활하게 이뤄질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박종수 교수는 취득가액 산정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거래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취득 시점이 오래돼 시가 확인이 어려운 디지털자산은 취득가액 산정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거래 수수료에 이미 부가가치세가 부과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득에 다시 기타소득세를 매기면 이중 과세 소지가 있다는 점,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로 인한 형평성 문제도 업계가 꼽는 우려 사항으로 제시했다.
박종수 교수는 “과세 시행 전 ▲디지털자산의 행위별 소득 구분 ▲금융투자 상품 과세와의 균형 ▲실무 매뉴얼과 행정 기준 마련 ▲세 부담, 손실공제 형평성 등을 점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거래 유형의 경제적 실질에 따라 이자, 배당, 사업, 양도, 기타소득으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디지털자산 보유 및 거래 내역을 신고할 수 있는 자료 제출 절차를 마련해야 디지털자산 과세가 원활해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과세 형평성, 조세 중립성, 기술 중립성, 명확성 및 예측 가능성, 납세협력 비용 최소화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디지털자산 과세, 충분히 준비해야
국회에서는 과세 시행에 제동을 거는 법안도 이어지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월 디지털자산 소득세 조항인 소득세법 제21조 1항 27호를 삭제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8월 10일 과세 시행일을 2027년 1월 1일에서 2030년 1월 1일로 3년 늦추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제37조 5항)을 대표발의했다. 투자자 보호 장치와 과세 인프라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만큼 제도 정비가 우선이라는 취지다.
국회 전자청원에는 디지털자산 과세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회부됐고, 과세를 2년 유예해 달라는 청원도 진행 중이다.
디지털자산 과세 시행이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와 여당은 유예 없이 추진한다고 한다. 물론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충분한 제도나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납세자의 혼란과 행정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과세 시행 일정만 고수하기 보다는 제도와 인프라 정비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IT동아 한만혁 기자 (m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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