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30년 전의 카드가 다시 돌아왔다.
9월 16일, '포켓몬' 트레이딩 카드게임(TCG)의 30주년을 기념한 ‘Pokémon TCG: 30th Celebration’이 출시된다.
1996년 10월 20일 처음 등장한 포켓몬 카드게임은 올해 30주년을 맞는다. 포켓몬 카드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시되는 확장팩이다. 모든 카드가 포일 사양으로 제작되고, 새로운 카드뿐 아니라 과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카드들도 다시 등장한다.
30주년을 기념하면서 과거의 카드를 다시 꺼내든다는 점이 재미있다. 1990년대 포켓몬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이제 30~40대가 됐다. 당시에는 게임을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며 카드를 가지고 놀았다면, 지금은 그때 좋아했던 캐릭터와 기억을 하나의 컬렉션으로 다시 모은다. 새로운 소비자를 만드는 것과 동시에 오래된 팬을 다시 시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포켓몬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원피스'와 각종 애니메이션, 야구,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부터 K-POP 아티스트와 연예인까지 카드가 담는 대상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고 듣는 것이 팬 경험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직접 소유하고 모으는 경험이 하나의 시장이 되고 있다. 원천 IP가 카드라는 또 다른 형태로 확장되는, 이른바 '2차 IP'의 영역이다.
카드는 일반적인 굿즈와 조금 다르다. 같은 캐릭터와 선수가 들어 있어도 어떤 시리즈에서 나왔는지, 몇 장만 제작됐는지, 어느 나라에서 발행됐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친필 사인이 들어간 카드도 있고, 실제 유니폼이나 의상 조각이 들어가는 카드도 있다. 카드의 보존 상태에 따라 다시 등급이 나뉘고 거래가격도 달라진다. 작은 종이 한 장인데, 그 안에 콘텐츠와 희소성, 거래와 인증이 모두 들어가 있다.
세 명이 카드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공간기획사 담장너머에서 공간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던 중 나를 포함한 세 명이 올해 건대에 ‘아카팩(AKAPACK)’이라는 새로운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했다. 전혀 다른 일을 시작했다기보다는, 그동안 공간을 만들며 보아온 사람들의 행동과 브랜드의 경험을 카드라는 새로운 시장에 적용해보는 쪽에 가깝다.
아카팩은 2차 IP 컬렉팅 스타트업이다. 첫 번째 모델은 오프라인 카드숍으로 시작한다. 현재 매장에서는 포켓몬과 원피스 같은 TCG부터 스포츠카드, 애니메이션, K-POP 등 다양한 트레이딩카드까지 함께 다룬다. brg와 연계된 카드와 그레이딩 카드도 취급한다. 한쪽 장르의 마니아만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IP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집’이라는 하나의 행동으로 만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공간기획 일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도면이나 숫자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것이 실제 공간에서는 너무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아카팩도 비슷하다. 직접 매장을 열어보니 누군가는 캐릭터보다 일러스트레이터를 보고 카드를 고르고, 스포츠카드를 모으는 사람은 특정 선수의 신인 시절만 찾기도 했다.
K-POP 카드를 보는 방식도 달랐다. 좋아하는 멤버가 가장 중요할 때도 있지만 특정 활동 시기나 의상, 한정 수량 여부가 더 중요한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가격을 보고, 누군가는 자신의 추억을 보고 카드를 고른다.
그래서 아카팩에서 오프라인 공간은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매장이 아니라, 실제 컬렉터가 어떤 카드를 찾고,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며, 어디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확인하는 곳이다. 카드 한 장을 보기 위해 진열장 앞에 한참 서 있거나, 휴대전화를 꺼내 일본과 미국 가격을 찾아보고, 처음 만난 사람끼리 각자의 카드를 꺼내 이야기하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기존에 공간을 기획하면서 고민했던 ‘사람을 어떻게 머물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카팩 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카드 한 장의 가격을 찾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카드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있다. 지금 보고 있는 카드가 정확히 어떤 카드이고,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알아내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피카츄나 같은 선수의 카드도 발행 연도와 국가, 시리즈, 카드 번호, 희소도에 따라 종류가 수없이 갈린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일본이나 미국에서 거래되는 가격도 다르고, 온라인에 올라온 판매가격과 실제 거래가 완료된 가격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아카팩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체 AI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카드 이미지를 통해 어떤 상품인지 찾아내고, 국내외의 시세와 거래정보를 한곳에서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 시장에 들어온 사람이 카드 이름과 번호를 하나씩 검색해서 해외 사이트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자신이 가진 카드가 무엇인지부터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이 과정에서 오프라인과 기술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매장에서 반복적으로 생기는 질문을 보면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알 수 있고, 그 문제를 다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가격만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카드를 보고 비교하고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함께 있어야 수집의 경험도 더 풍부해진다.
앞으로는 이미 만들어진 해외 카드를 유통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IP를 카드로 확장하는 일까지 보고 있다. 한국에는 K-POP과 스포츠, 게임, 애니메이션, 웹툰처럼 카드로 다시 풀어낼 수 있는 IP가 많다. 아티스트의 특정 활동 시기나 콘서트, 운동선수의 기록적인 경기, 브랜드의 역사처럼 이미 지나간 한 장면도 카드라는 형태를 만나면 다시 하나의 컬렉션이 될 수 있다. 좋은 IP를 만드는 일만큼, 이미 가진 IP를 어떻게 다시 꺼내고 오래 경험하게 할 것인지도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카드가 하나의 산업이 되고 있다
카드 시장이 커지려면 카드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고 거래가 늘고 수십만 원, 많게는 그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카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이 카드가 진짜인지’,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해진다.
국내에서는 브레이크앤컴퍼니가 운영하는 트레이딩카드 그레이딩 브랜드 ‘brg’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카드의 진위와 표면, 모서리, 센터링 등의 상태를 일정한 기준으로 확인하고 등급을 부여해, 컬렉터들이 보다 안심하고 카드를 보관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브레이크앤컴퍼니 측에 따르면 현재 brg가 쌓은 누적 그레이딩 데이터는 40만 장을 넘어섰다.
아카팩 역시 brg의 공식 파트너 매장으로 연결돼 있다. 매장에서는 일반 카드뿐 아니라 brg에서 그레이딩을 받은 카드들을 직접 볼 수 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그레이딩으로 연결하는 과정도 경험할 수 있다.
처음 카드 시장에 들어온 사람에게 ‘인증’이라는 과정은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실제 카드를 보고 설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면 진입장벽도 조금 낮아진다. 우리 역시 단순히 서비스를 하나 더 제공한다기보다, 카드를 사고 모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보관하고 인증하고 다시 거래하는 과정까지 오프라인 공간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고 있다.
한편 브레이크앤컴퍼니는 ‘TELECA’라는 별도의 글로벌 트레이딩카드 브랜드도 운영하고 있다. TELECA는 세계 최초로 여러 K-POP 아티스트가 함께 참여한 트레이딩카드 세트를 선보였고, 브레이크앤컴퍼니 측에 따르면 현재 관련 트레이딩카드는 해외 3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K-POP 포토카드에 한정 수량과 시리얼 넘버, 친필 사인, 렐릭 같은 글로벌 트레이딩카드의 방식을 더하면서 한국의 문화와 IP를 또 다른 컬렉터블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보면 한국의 카드 시장도 단순히 해외에서 만들어진 포켓몬이나 스포츠카드를 가져와 소비하는 단계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K-POP을 비롯해 스포츠, 게임, 웹툰과 캐릭터처럼 이미 팬덤을 가진 IP가 많고, 여기에 제작과 인증, 거래의 구조가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해외에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미 만들어진 하나의 IP에서 얼마나 다양한 경험과 시장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볼 필요가 있다. 카드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일본은 카드시장만 3조 원에 가까워졌다
일본은 이 흐름을 훨씬 먼저 경험하고 있다. 일본완구협회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회계연도 일본의 카드게임, 트레이딩카드 1차 발행시장은 3,384억 엔, 9월 9일 환율을 적용하면 약 2조 9,500억 원 규모다.
2차, 3차 시장으로 넘어가면 10조 이상의 시장으로 보인다. 전년도보다 359억 엔이 늘었고, 2017년 이후 8년 연속 성장했다. 이제 카드게임과 트레이딩카드가 일본 전체 완구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30%다. 포켓몬뿐 아니라 듀얼 마스터즈, 유희왕 같은 오랜 IP들이 계속 시장을 키우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바라보는 방향도 재미있다. 경제산업성은 현재 ‘IP360’을 추진하면서 2033년 일본 콘텐츠 산업의 해외 매출 20조 엔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화 하나를 만화로 끝내지 않고 애니메이션과 게임, 실사, 음악, 굿즈 등으로 확장해 하나의 IP가 만들어내는 전체 가치를 키우겠다는 내용이 정책에 명확하게 담겨 있다. 신규 IP를 만드는 스타트업 지원부터 유통 플랫폼과 해외 진출까지 정책의 범위도 꽤 넓다.
결국 올해 30주년을 맞은 포켓몬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게임으로 시작한 캐릭터가 애니메이션이 되고, 영화와 굿즈가 되고, 다시 카드가 됐다. 30년 전에 나온 카드를 지금 다시 꺼내도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히 캐릭터가 유명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IP를 계속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콘텐츠를 잘 만드는 나라로 성장했다. 이제는 다음 단계도 고민할 때다. 하나의 드라마나 음악, 캐릭터가 인기를 얻었을 때 다음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 그 IP가 카드가 되고, 상품이 되고, 공간이 되는 과정까지 이어갈 필요가 있다. 콘텐츠의 흥행 기간보다 IP의 수명을 길게 만드는 산업이 필요한 것이다.
IP가 상업공간과 부동산을 바꾸기 시작했다
카드시장을 보다 보면 결국 다시 공간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다. 특히 일본에서는 포켓몬이나 원피스 같은 IP가 캐릭터숍 하나를 채우는 콘텐츠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특정 건물과 지역을 찾아가게 만드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상품을 살 수 있게 된 시대에 상업시설도 이제 ‘무엇을 판매하는가’만큼 ‘왜 이곳까지 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부야 'PARCO'가 대표적이다. 6층 ‘CYBERSPACE SHIBUYA’에는 포켓몬센터와 Nintendo TOKYO, JUMP SHOP, CAPCOM STORE 등 일본을 대표하는 IP들이 한 층에 모여 있다. 과거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패션 브랜드를 중심으로 층을 구성했다면, 이제는 강한 IP 자체가 하나의 집객 콘텐츠가 된 것이다.
시부야의 'SHIBUYA TSUTAYA'도 2024년 리뉴얼을 거치면서 포켓몬 카드 라운지와 IP 팝업, 애니메이션과 만화 관련 콘텐츠, 컬래버레이션 카페 등을 건물 곳곳에 배치했다. 과거 책과 음반을 판매하던 공간이 IP를 경험하기 위해 머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케부쿠로에서는 이런 흐름이 건물 하나를 넘어 지역의 성격까지 만들고 있다. 애니메이트 본점을 중심으로 선샤인시티의 포켓몬과 반다이남코 관련 공간, 다양한 애니메이션·게임 매장이 집적되면서 지역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 목적지가 됐다. 도시마구 역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지역 문화와 관광의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하며 사람들이 역에서 주변 거리까지 걸어 다니도록 도시의 보행 환경과 문화거점을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2차 IP는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찾아올 이유를 만들고,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여러 IP가 모이면 하나의 상권을 만들어낸다. 콘텐츠가 상품이 되고, 상품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들이 모여 다시 도시의 성격을 만드는 것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카드와 컬렉터블 시장을 단순한 소매업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간을 만들면서, 또 다른 시장을 바라본다
나는 여전히 공간기획사 '담장너머'에서 공간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동시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이 아카팩이라는 새로운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공간을 만들면서 계속 고민해왔던 질문을 다른 시장에서 다시 확인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좋은 공간을 만든다고 해서 사람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곳에 갈 이유가 있어야 하고, 다시 방문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카드는 그 이유를 상당히 반복적으로 만들어낸다. 새로운 카드가 나오고, 원하는 카드를 찾고, 자신의 컬렉션을 보여주고, 가격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과 교환한다. 작은 카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하고 다시 공간을 찾는다.
아카팩도 지금은 건대의 오프라인 카드숍에서 시작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넓다. 공간에서 컬렉터를 만나고, 자체 AI를 통해 복잡한 카드의 정보와 시세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이후에는 한국이 가진 K-POP과 스포츠, 캐릭터와 다양한 콘텐츠 IP를 새로운 컬렉터블로 확장하는 과정까지 보고 있다.
포켓몬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하나의 콘텐츠가 30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30년 동안 그 콘텐츠를 경험하는 방식이 계속 바뀌었다는 점이다. 게임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애니메이션에서 카드와 상품으로, 그리고 다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이어졌다.
한국에도 이미 세계가 알고 있는 수많은 IP가 있다. 이제는 좋은 IP를 새롭게 만드는 것만큼 이미 가지고 있는 IP를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살아나게 만들 것인지도 중요해질 것이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새롭게 컬렉팅 시장에 들어온 한 사람으로서 내가 관심 있게 보는 것도 바로 그다음이다.
카드 한 장에서 시작된 경험이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들이 다시 공간을 만들고, 언젠가는 하나의 상권과 도시의 새로운 장면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금 아카팩에서 시작한 작은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보려 한다.
정훈구 담장너머 대표 (plus82jh9@gmail.com)
담장너머의 공동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즈'와 '굿디자인 어워즈'에 선정된 바 있으며, 다양한 공간기획 프로젝트를 통해 창의적인 공간과 경험을 제안, 구축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