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와 교토, 이름은 닮았는데 거리는 '너무나 먼 그대'다. 그런데도 두 도시를 함께 떠올리게 되는 건, 현대와 전통이라는 타협할 수 없는 매력을 각자 쥐고 있어서다. 짧은 도쿄 여행 일정에 교토를 끼워 넣는 건 무리다.
하지만 일본 고유의 정취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방법은 있다. 도쿄 세이부신주쿠역에서 직통 열차인 특급 고에도로 최단 45분, 왕복 교통비는 1만원이 채 안 되는 도시, 사이타마현 가와고에(川越)다. 도쿄 일정에서 딱 하루만 빼면 된다.
왕복 1만원, 하루로 충분한
도쿄 당일치기 근교 여행법
도쿄에서 가와고에까지 이동 난이도를 한 번에 낮추는 방법은 '세이부 가와고에 패스'를 쓰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E-티켓을 예매하면 QR 코드가 발행돼 종이 티켓을 따로 발권할 필요가 없다.
클룩에서 왕복권을 1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2026년 8월 5일 기준). 편도 티켓 2장을 따로 끊는 것보다 더 저렴하다. 세이부 가와고에 패스가 있으면 세이부신주쿠역·다카다노바바역·이케부쿠로역 중 한 곳에서 혼카와고에역까지 세이부선을 1회 왕복할 수 있다. 출발역과 도착역을 다르게 잡아도 되니 동선 짜기가 한결 자유롭다.
이동 시간을 조금 더 줄이고 싶다면, 특급 열차를 고려해 보자. 세이부신주쿠역에서 혼카와고에역까지 최단 45분이면 갈 수 있는 특급 ‘고에도(小江戸)’ 열차다.
세이부 가와고에 패스를 구매했다면, 역 창구나 온라인(Smooz)에서 특급권(편도 1회 600엔)을 추가로 구매하면 된다. 전 좌석 지정석에 시트도 푹신해서, 앉아 가는 45분이 꽤 쾌적하다. 일반 세이부선을 탈 때보다 이동 시간이 15~20분쯤 짧아진다.
참고로 세이부신주쿠역은 JR 신주쿠역과 다른 역이다. 지하로 이어지지 않는 구간이 있어 도보로 5~10분쯤 걸리니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열차를 타기 전 알아두면 좋은 점은 '출발 시각 1~5분 전에 문이 열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리 플랫폼에 도착했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어도 당황하지 말자. 타고 온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나면 객실을 한 차례 깔끔하게 청소한 뒤 문을 열어 준다. 가와고에로 향할 때는 열차 진행 방향 기준 오른편 좌석에 앉으면 탁 트인 자연 전망이 이따금 펼쳐진다.
가와고에 여행의 시작
구라즈쿠리 거리 속으로
혼카와고에역에 내리면 여행은 이미 코앞이다. 시작점이나 다름없는 '구라즈쿠리 거리(蔵造りの町並み)'가 도보 10분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가와고에가 낯선 여행자를 위해 이곳의 별명부터 소개하자면, 이 도시는 ‘작은 에도’, 즉 고에도(小江戸)라 불린다. 현재의 도쿄, ‘에도’로 물자를 대던 아랫마을이었던 덕에 에도의 풍경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남은 곳이 30여 채의 구라즈쿠리 건물이 늘어선 구라즈쿠리 거리다.
‘구라즈쿠리’는 나무 골조 위에 두꺼운 흙벽을 발라 올린 에도 시대의 방화(防火) 건축 양식이다. 검은 기와지붕과 육중한 여닫이문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길 위에 이어진다.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지만 길 자체는 깨끗하고 반듯하게 닦여 있어 걷기 편하다. 무엇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저마다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캐릭터 숍과 편집숍, 카페와 식당, 공방과 스튜디오까지 100개가 넘는 점포가 들어서 있어 문 여는 맛이 전부 다르다.
가와고에 여행의 핵심이 구라즈쿠리 거리라면, 그 안에도 랜드마크가 있다. ‘토키노카네(時の鐘)’와 ‘리소나 코에도 테라스’(旧第八十五銀行本店本館)'다.
토키노카네는 ‘때를 알리는 종’이라는 뜻이다. 구라즈쿠리 양식으로 지은 3층 종루로, 높이 약 16m다. 2층 규모의 낮은 건물들 사이에서 혼자 우뚝해 멀리서도 눈에 띈다. 옛사람들이 약속을 잡거나 일을 시작할 때 올려다보던 것이 늘 이 종이었다. 종루와 동종은 화재로 여러 차례 소실됐지만 그때마다 다시 지어졌다.
지금 서 있는 것은 네 번째로 다시 지은 것이다. 메이지 26년(1893) 가와고에 대화재 이듬해에 재건했다. 종은 지금도 살아 있는 알람이다. 하루 네 번(오전 6시, 정오, 오후 3시, 오후 6시) 울리니, 소리를 듣고 싶다면 그 시간에 맞춰 다가가 보자.
다음은 리소나 코에도 테라스다. 구라즈쿠리 거리 한복판에 흰 벽돌로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 뜬금없이 서 있다. 어딘가 낯익은 외관이다 싶어 찾아보니, 설계자 야스오카 가쓰야(保岡勝也)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지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의 제자다. 1918년 제85은행 본점 본관으로 태어나 2020년까지 은행으로 쓰였고, 2024년 5월, 코워킹 스페이스를 품은 복합 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관광객에게도 활짝 열려 있다. 1층은 사이타마현의 물건을 모은 셀렉트 숍과 카페, 2층은 레스토랑이다. 무료로 구라즈쿠리 전망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2층 테라스로 나서면 낮에는 활기찬 거리 풍경이, 밤에는 건물만 빛을 발하는 풍경이 펼쳐져 진짜 에도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집 나간 입맛도 되돌아오는
가와고에 장어 & 고구마
거리를 한참 둘러보다 보면 배가 고파진다. 뭘 먹을지 고민이라면 역시 가와고에를 대표하는 음식이 정답이다. 일본에서 장어와 고구마로 이름난 도시다.
장어 맛집이 여럿이지만 그중 하나가 '우나기 덴베(うなぎ 傳米)'다. 지은 지 150년이 넘은 민가를 리노베이션해 식당으로 쓰고 있다. 엄선한 반도타로 장어(坂東太郎, 자연산의 맛과 향을 구현하려 양식 방식을 차별화한 고급 양식 브랜드)를 비장탄에 굽고, 솥에서 손수 졸인 간장 소스를 펴 발라 낸다.
두툼한 살과 부드러운 지방이 어우러지는 맛이다. 장어덮밥 한 그릇이 부담스럽다면 간식으로 해결해도 된다. 식당 앞에서 장어 컵밥, 장어 꼬치 같은 먹거리를 따로 판다. 맛만 보기에 딱이다.
찌고 굽고 삶은 고구마가 평범하게 느껴진다면, 색다른 고구마를 만날 차례다. 카페 '야키이모 이모카와 미나미마치 커피(やきいも芋川 MINAMIMACHI COFFEE)'로 향하면 된다. 시그니처는 고구마 구이, 그중 크렘브륄레 고구마가 특히 인기다. 달콤한 군고구마 위에 설탕이 노릇하게 코팅돼 있어 숟가락으로 깡깡 깨 먹는 맛이 쏠쏠하다. 고구마를 차갑게 식혀 두기 때문에 속은 시원하고, 아이스크림 같은 식감이 난다.
공간은 둘로 나뉜다. 입구로 들어서면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하는 카운터, 그리고 고구마 스낵과 말랭이 같은 가공품이 진열된 공간이 나온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착석 공간이다.
귀엽고예, 가와고에
미피 쿠라노키친 앤 베이커리 가와고에점 & 가시야 요코초
에도 시대의 분위기만으로도 가와고에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런데 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이 아직 남았다. 먼저 구라즈쿠리 거리의 캐릭터 숍들이다. 토토로, 스누피, 미피 등 인기 캐릭터들이 이 거리에 자리를 잡고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그중 '미피 쿠라노키친 앤 베이커리 가와고에점(みっふぃー蔵のきっちん&べーかりー 川越店)'은 소품숍과 베이커리를 겸해 운영 시간 내내 사람들로 빼곡하다.
일반적인 미피 상품도 있지만, 사람을 멈춰 세우고 지갑을 열게 하는 건 가와고에 한정 상품이다. 갓 구운 빵도 넋을 놓게 만드는 건 매한가지다. 가와고에 명물 고구마를 넣은 빵, 미피 얼굴 모양으로 노릇하게 구워 낸 빵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손에 빵 봉투가 들려 있다.
구라즈쿠리 거리를 다 돌고 골목을 꺾으면 200m 남짓한 길이 나온다. 가시야 요코초(菓子屋横丁), 우리말로 '과자 골목'이다. 옛날 일본 어린이들이 10~20엔씩 쥐고 사 먹던 군것질거리, ‘다가시(駄菓子)’가 가득해 어른들이 아이처럼 해맑아지는 곳이다. 가와고에에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에도 시대와 추억의 어린 시절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원래 이 길은 근처에 있는 절 ‘요주인(養寿院)’의 참배로였다. 메이지 초, 1870년 경 과자 장인 스즈키 도자에몬(鈴木藤左衛門)이 이곳에 다가시 가게를 내면서 과자 거리가 시작됐다.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도쿄 시타마치의 과자업이 무너지자 그 공백을 이 골목이 메웠고, 쇼와 초기 전성기에는 점포가 70여 곳까지 늘었다. 지금 남은 노포는 10여 곳이다.
다이쇼 3년(1914)부터 이어 온 다마리키 세이카(玉力製菓)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사탕 장인의 손끝을 볼 수 있고, 마쓰리쿠 세이카(松陸製菓)에서는 이 골목의 상징인 95cm짜리 흑설탕 후가시도 만날 수 있다.
인연을 맺고 싶다면
가와고에 히카와 신사
연애 중이거나 짝사랑 중이라면 인연을 잇고 싶을 터. 연애운과 부부운을 빌러 가와고에 사람들이 향하는 곳, 가와고에 히카와 신사(川越氷川神社)로 가 보자.
창건은 약 1,500년 전으로 전해진다. 이 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다섯 명, 모두 한 가족이다. 여기에는 인연의 신으로 알려진 오오나무치노미코토(大己貴命)가 있고, 부부신 두 쌍을 모시고 있어서, 예로부터 가정의 화목과 부부의 인연에 효험을 가져다주는 신사로 알려져 있다. 그 덕에 입구의 오마모리(縁結び守り)를 판매하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신사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건물 뒤편에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나무 사이 돌길을 8자로 한 바퀴 돌면 좋은 인연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미쿠지도 인연과 관련된 것이 인기다.
시그니처는 ‘도미 오미쿠지’다. 낚싯대로 원하는 도미를 건져 올려야 해서 게임하는 기분도 더해진다. 색깔에 따라 점치는 운세가 다르니 참고하자. 빨강은 1년의 총운, 분홍은 연애운이다. 계절 한정 색상이 추가되기도 한다. 또한 고구마 오미쿠지 같은 색다른 오미쿠지도 종종 등장한다. 가와고에 고구마 오미쿠지에는 행운의 고구마 아이템이 적혀 있어, 그걸 찾으면서 가와고에를 관광하면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오미쿠지를 뽑았는데 점괘가 좋지 않다면 그 자리에 묶어 두고 떠나면 된다.
효험을 더 높이고 싶다면 걸어 볼 길이 둘 있다. 하나는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매다는 ‘에마 터널(絵馬トンネル)’이다. 사람들이 고이 적어 둔 소원을 구경하며 걷다가, 내 소원도 하나 매달고 소원을 빌면 된다.
다른 하나는 등불이 늘어선 길이다. 결혼식과 피로연을 위해 신랑 신부가 걷는 길로, 일본 신사 특유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INFO
하루면 충분한 가와고에 여행 코스
세이부신주쿠역 → (세이부선 또는 특급 고에도 열차) → 혼카와고에역-구라즈쿠리 거리(토키노카네, 리소나 코에도 테라스) → 우나기 덴베 → 야키이모 이모카와 미나미마치 커피 → 미피 쿠라노 키친 앤 베이커리 가와고에점 → 가시야 요코초 → 가와고에 히카와 신사
글 · 사진 남현솔 기자 solsol@travel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