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시장에서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AAA급 작품이 흥행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멧챠 카멜레온'이나 '피크' 등의 작품은 다른 방식으로 이용자의 지갑을 열며 성공했다. 게이머들의 구매 부담을 낮추고 핵심 재미에 집중한 작품들이 성과를 내면서, 대작 중심의 투자 방식 외에도 새로운 선택지를 선택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게임 시장에서 AAA 게임의 제작 비용 부담은 어마어마하다. 2023년 공개된 소니의 법원 제출 자료에 따르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 개발비는 약 2억2000만 달러,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는 약 2억1200만 달러였다. 마케팅비를 제외한 개발비만 수천억 원 규모다. 올해 출시를 앞두고 있는 GTA 6는 우리 돈 2조 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3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판매량이 높아도 투입 비용에 따라 사업적 성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거대한 제작비는 당연히 게임 개발에도 영향을 미친다. 개발이 길어지면 매출이 발생하기 전까지 인건비와 운영비가 누적되고, 기획 당시의 유행이 출시 시점에는 바뀔 수 있다. 소수 대작에 투자와 인력이 집중된 회사일수록 출시 지연이나 흥행 부진의 충격도 커진다. 때문에 AAA급 게임들은 새로운 시도보다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전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아메리카 숀 레이든 대표는 커진 제작비가 새로운 시도를 감수할 여지를 줄이고, 검증된 공식과 후속작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지적해온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임들이 등장하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AAA급의 제작비를 투입하지 않아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올해 일본 개발자 2명이 만들어 출시한 '멧챠 카멜레온'이다.
몸에 그림을 그려 주변 환경에 숨는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6월 출시 후 개발진 발표 기준 8월 누적 판매량 2000만 장을 넘었다. 9월 10일에는 닌텐도 스위치2로도 출시돼 벌써 3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게임의 가격은 북미 기준으로 정가가 5.99달러다. 우리나라에서도 할인 시 6500원 정도면 만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멧챠 카멜레온'의 흥행 요소로 직관적인 규칙과 구경하는 재미를 흥행 요인으로 짚었다. 기발한 위장과 우스운 실패가 영상으로 퍼지고, 낮은 가격이 구매 부담을 줄인다는 설명이다.
또 짧은 두 달간의 개발에는 포트나이트가 많은 도움이 됐다. 개발진은 포트나이트 제작 도구로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이전 작품의 자산을 재활용하며 게임을 개발하고 선보여 왔다. 짧게 만드는 것보다 기존 자원을 핵심 재미에 집중하는 방식이 중요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흥행은 이른바 '프렌드슬롭(friendslop)'의 유행과도 맞닿아 있다. 친구들과 함께 벌이는 소동과 우스운 실패를 핵심 재미로 삼는 저가 멀티플레이 게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실제 게임 평가 등을 살펴보면 게이머들은 친구들에게 고가 게임을 함께 구매하자고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적은 비용으로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이들 게임의 강점으로 꼽았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친구들의 동반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이 저가 게임의 확산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월 출시된 슈퍼 배틀 골프도 비슷하다. 최대 8명이 동시에 골프를 치면서 상대를 방해하는 게임으로, 3월 말 판매량 100만 장 돌파를 발표했다. 브림스톤이 발표한 개발 기간은 4개월 반에 그친다.
25년 작품인 협동 등반 게임 '피크'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어그로크랩과 랜드폴이 공동 개발한 이 작품은 2025년 출시 후 6일 만에 100만 장을 판매했고, 누적 판매량은 2,000만 장을 넘어섰다. 게임의 정가는 7.99달러, 출시 할인가는 약 5달러 수준이었다. 개발 기간은 단 4주로 한 달 만에 게임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AAA급에는 못 미치는 규모를 조금 더 확장해봐도 기존보다 작은 게임들의 열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스팀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FPS '워독스'는 개발 예산을 1000만~1200만 파운드로 잡았다. 우리 돈 약 221억 원 수준이다. 비슷한 장르 경쟁작이라 볼 수 있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의 생애주기 예산이 7억 달러로 우리 돈 9,500억 원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차이다.
'워독스'는 당초 텐센트 산하에서 대형 AAA로 계획했던 작품이지만, 벌크헤드는 독립 이후 규모를 줄여 얼리 액세스로 선보였다. 개발사의 최소 판매 목표는 40만 장 수준이었으나 이미 200만 장 이상 판매됐다. 스팀 동접자 수도 최대 42만 명 수준을 기록했다. 게임 플레이를 돈과 연결한 시스템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게임 시장의 이런 모습은 대형 모바일이나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개발해온 국내 시장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라인게임즈다. 라인게임즈는 올해 플레이엑스포에서 자체 개발 PC 게임인 '엠버 앤 블레이드', '콰이어트'와 퍼블리싱 예정작 '컴 투 마이 파티', '코드 엑시트'를 선보인 바 있다. 엑스포 이후에는 20년 이상의 업계 경력을 가진 베테랑 개발자 2인이 개발한 '어메이징 슬롯 서바이버'의 퍼블리싱을 밝히기도 했다.
협동 호러부터 비주얼노벨까지 다양한 장르의 PC 게임을 준비하고 있으며, 콰이어트의 경우 스팀 플레이테스트에 사전 신청 및 참여 포함 35만 명의 글로벌 이용자를 모으며 성황리에 종료됐다.
이외에도 컴투스 홀딩스가 PC·콘솔 기반 액션 메트로배니아 '페이탈 클로'와 공간을 회전시키고 중력을 활용하는 '스페이스 리볼버' 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