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국내 출시 예정인 신형 그랜드 체로키 L은 부분 변경을 통해 디자인을 다듬는 동시에 보닛 아래에 더 큰 변화를 담는다. 오랫동안 대형 SUV의 기본 공식으로 여겨졌던 3.6리터 자연흡기 V6 엔진을 2.0리터 고출력 터보 엔진으로 교체해, 성능과 효율의 균형을 새롭게 맞춘 것.
실린더는 6개에서 4개로, 배기량은 3.6리터에서 2.0리터로 줄었다. 숫자만 보면 엔진의 축소처럼 보인다. 특히 3열을 갖춘 대형 SUV에는 묵직한 6기통 엔진이 어울린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해, 2.0리터 엔진이 큰 차체를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성능 수치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새로운 2.0리터 허리케인 4 터보(Hurricane 4 Turbo) 엔진은 국내 인증 기준 최고출력 329PS, 최대토크 45.89kg•m를 발휘해 기존 3.6리터 V6 엔진의 286PS와 35.1kg•m를 모두 넘어선다. 배기량과 실린더 수는 줄었지만 출력은 약 15%, 토크는 약 31% 향상됐다.
방향은 명확하다. 지프가 줄인 것은 배기량과 실린더 수이지, 그랜드 체로키 L에 필요한 힘이 아니다.
오늘날의 엔진 다운사이징은 단순히 작은 엔진을 장착해 연료를 아끼는 개념이 아니다. 터보차저와 정밀한 연소 기술을 이용해 필요할 때는 큰 엔진에 버금가는 힘을 끌어내고,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불필요한 연료 소비를 줄이는 기술 전략에 가깝다.
특히 차체가 크고 탑승 인원이 많은 3열 SUV에서는 최고 출력만큼 토크도 중요하다. 여러 명이 타거나 짐을 가득 실었을 때, 오르막길이나 고속도로에서 다시 속도를 높일 때 차체를 얼마나 힘들이지 않고 움직이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허리케인 4 터보는 가변 지오메트리 터보차저를 통해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회전 영역부터 강한 토크를 끌어내도록 설계됐다. 출발과 추월, 오르막 주행에서 운전자가 체감하는 것은 실린더의 개수가 아니라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얼마나 빠르고 여유 있게 힘이 전달되는가다.
국내 인증 기준 최고출력 329PS, 최대토크 45.89kg•m로 기존 3.6리터 V6 엔진의 성능을 웃돌면서도, 최대 2,812kg의 견인 능력은 동일하게 유지했다. 엔진의 크기는 줄었지만 대형 SUV에 필요한 힘과 실질적인 주행 능력은 오히려 강화된 셈이다.
작은 엔진에서 이처럼 높은 성능을 끌어낼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난류 제트 점화(Turbulent Jet Ignition, TJI)’ 기술이다. 제한된 연료로 최대한의 성능과 효율을 내야 하는 F1 파워유닛에서 활용돼 온 연소 원리를 일반 양산차에 맞게 발전시킨 기술이다.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일반적인 엔진은 하나의 점화플러그에서 시작된 불꽃이 주변으로 번지며 연료를 태운다. 반면 TJI는 별도의 작은 공간에서 먼저 불을 붙인 뒤, 여러 갈래의 강한 화염을 주 연소실 전체로 분사한다.
쉽게 말해 한쪽에서 불이 서서히 번지게 하는 대신, 연소실 여러 곳에 동시에 불을 붙이는 방식이다. 연료가 더 빠르고 고르게 타기 때문에 같은 양의 연료로도 더 많은 힘을 끌어낼 수 있고, 연소되지 않고 남는 연료도 줄일 수 있다.
허리케인 4 터보는 이 기술을 대량생산 차량의 일상적인 주행 환경과 내구 조건에 맞춰 구현했다. 단순히 배기량만 줄인 엔진이 아니라, 연료를 태우는 방식 자체를 바꿔 더 작은 엔진으로 기존 V6보다 강한 성능과 향상된 효율을 함께 노린 것이다. 《Road & Track》도 이를 TJI 기술이 대량생산 엔진에 본격적으로 적용된 첫 사례로 평가했다.
다운사이징의 효과는 출력이나 연비 같은 제원표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내 소비자에게는 매년 납부하는 자동차세가 줄어드는 직접적인 이점도 있다.
국내 비영업용 승용차의 자동차세는 차량 가격이 아니라 배기량을 기준으로 부과된다. 1,600cc를 초과하는 차량은 cc당 200원의 자동차세가 적용되며, 여기에 자동차세의 30%에 해당하는 지방교육세가 더해진다.
이를 3.6리터와 2.0리터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연간 자동차세는 약 94만 원에서 약 52만 원으로 낮아진다. 기존보다 매년 약 40만 원의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는 셈이다. 실제 납부액은 국내 인증 배기량과 차량 연식에 따른 경감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신형 그랜드 체로키 L의 변화는 엔진의 크기와 자동차의 성능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시대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실린더가 몇 개인지가 아니라, 그 엔진이 큰 차체를 얼마나 여유롭고 세련되게 움직이느냐다. 배기량을 덜어낸 자리에 어떤 주행 경험을 채웠을지, 9월 말 국내 출시를 앞둔 그랜드 체로키 L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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