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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기술 혁신은 대부분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만, 혁신적 신제품의 초기 품질은 구 제품에 비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는 신제품이 혁신의 초점을 품질이 아니라 ‘편의성’ 또는 ‘낮은 가격’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전략으로 일단 시장에 자리잡은 후, 점진적으로 품질을 높이며 결국 기존 경쟁자들이 구축한 시장을 파괴한다. 그리고 이들을 퇴출시킨다.
과거 하버드 대학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장했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그가 주로 든 사례는 PC산업이다. PC가 처음 나왔을 때 성능은 당시 미니컴퓨터에 비해 품질면에서 열등한 ‘열등재’였고 가격도 쌌다. 품질(성능)이 미니컴퓨터에 비해 낮았지만, 편의성과 가격이 좋았기에 PC는 시장에서 생존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파괴적 기술인 PC는 낮은 성능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PC는 기술 발전의 궤적을 따라 꾸준히 성능을 향상해가며 결국 미니컴퓨터 산업을 파괴하고 대세가 되었다. 진공관을 대체한 트랜지스터도 마찬가지다. 초창기의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열등재였으나, 비슷한 기술발전 궤적을 따라 품질을 향상시켜 진공관 시장을 대부분 파괴했다.
그러나 크리스텐슨 교수의 지적과는 달리, 이런 파괴적 혁신자들 중 상당수는 구 시장을 완전히 파괴하지 못하고 구 기술과 공존했다. 예를 들면 전자책이다. 전자책은 아직까지 종이책을 압도할 정도로 품질이 완벽하지는 않다. 휴대전화 카메라도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옛 DSLR카메라를 대체하지는 못했다. 마트에서 파는 삼각김밥이나 밀키트도 싸고 간편하기는 하지만, 직접 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전통 방식을 이기지 못했다.
이 외에도 3D프린팅과 대체육, 인스턴트 커피, 태양광 및 풍력, 디지털피아노, 원격수업과 진료 등 수없이 많은 신기술들이 편의성과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으나, 품질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기존 제품들과 공존한다. 이 때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불완전한 혁신 제품들이 편의성과 가격이라는 장점으로 대세가 될수록, 우리의 생활은 품질이 보다 낮은 제품들로 채워지는 것은 아닐까?
더 심각한 문제는 일부 파괴적 혁신이 구 제품과 구 시장을 파괴하는 것에서 나아가 기존의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경우이다. 요즘 식당에 꾸준히 설치되는 주문용 키오스크나 태블릿을 예로 들자. 이들 기기는 인건비를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파괴적 혁신으로 볼 수 있다. 이들 기기는 종업원의 노동 강도를 줄인다. 대신 소비자가 종업원이 하던 것을 직접 입력하도록 한다. 혁신이란 이름으로 고객이 종업원 대신 노동하며 식당의 원가를 절감해주는 형국이다. 그리고 식당에서 종업원과 고객간 친밀한 대화는 사라졌다. ‘파괴’됐다. 분명히 과거에 비해 식당에서 경험하는 서비스의 품질은 나빠졌다.
최근 인공지능(AI)의 등장은 파괴적 혁신일까? AI의 발전속도는 눈부시다. 답변 능력이 기존의 인터넷 검색을 넘어서기에, AI는 기존 인터넷 검색서비스를 거의 완벽하게 파괴하고 대체할 것이다. 그리고 AI는 식당의 키오스크나 태블릿보다 더 광범위하게 우리 인간관계를 대체 또는 파괴한다.
과거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서 서로 자연스레 친해졌다. 인간은 서로 부족한 점을 도와주며 더 가까워진다. 이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친구나 선후배에게 전화할 필요가 없다. AI에게 물으면 된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관계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요즘 현대인의 일상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 정성스레 준비한 아침식사 대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때우고, 독서를 위해 책을 보는 대신, 눈이 좀 아프더라도 전자책을 펼친다. 점심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불편을 감수하고 키오스크를 뒤지며 햄버거를 주문한다. 점심 후엔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온라인 회의를 하고, 이동 중엔 PC화면이 아닌 모바일의 좁은 화면에서 이메일 작업을 한다. 공부는 화상강의로 대체하는데 교수나 학생들과의 직접적 교류가 아쉬워도, 모르는 건 교수나 친구 대신 AI에게 물어보면 된다. 저녁엔 다시 집에서 밀키트를 데워먹고, 유행하는 드라마는 전체를 보는 대신 유튜브에 짧게 요약해준 영상을 2배속으로 본다. 모든 게 불완전하지만 편리하다.
물론 이들 파괴적 혁신 제품의 낮은 가격이 저소득층에 큰 경제적 혜택이며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소득층은 혁신 제품을 사는 대신 과거 제품이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경제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고성능 휴대전화 카메라나 전자책을 새로 구입하느니, 과거 가지고 있던 디지털카메라나 종이책을 보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 밀키트 음식을 먹는 대신 시장에서 저렴하게 장을 봐서 직접 요리하는 방식이 한결 익숙하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즉, 저소득층도 파괴적 혁신 제품을 사용하면서 이전보다 불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파괴적 혁신이 구 제품과 시장을 대체하게 되면 이전에 비해 불완전한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가 우리 주변에 만연하게 될 것이다. 파괴적 혁신이 인간을 대체하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소원해질 것이다. 불완전한 품질의 제품을 대량 소비하며 고독감에 젖어 사는 우리의 모습이 기술 진보의 종착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글 / 이웅희 한국경영인학회 회장
이웅희 한국경영인학회 회장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핵심역량 이론’ (또는 자원기반이론)으로 유명한 경영전략 분야의 대가 Jay Barney교수의 지도하에 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 경영대학에서 경영전략과 혁신전략을 강의하고 있으며, 자유기업원 이사장도 맡고 있다. 과거 대우증권 국제부에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박사 후엔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의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한국경영학회 부회장, 한국국제경영학회 부회장 등 주요 학술단체의 임원을 지냈다. 「자유의 7가지 원칙」,「자유주의 틀깨기」,「디지털 컨버전스 전략」등의 공동저서가 있고 2016년 문화관광체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정리 / IT동아 차주경 기자 (racingcar@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