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향기는 오래된 성벽과 골목, 물길과 시장 사이에 남아 있다. 버드나무가 흔들리는 용연에서 시작해 230여 년 된 성곽을 걷고, 저녁에는 화성행궁의 달빛까지 만난다. 갈비 굽는 냄새와 통닭거리의 고소한 향도 빠질 수 없다. 하루 동안 천천히 따라가 보는 수원의 향기다.
달빛 품은 연못에서 견고한 성벽의 능선으로
수원천로를 따라 걸으면 물과 성곽, 수원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첫 지점은 수원천 위에 걸터앉은 화홍문이다. 수원화성의 북쪽 수문이라 북수문으로도 불리며, 일곱 개의 홍예가 성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가지런히 나눈다. 물이 들어차면 홍예 아래로 쏟아지는 물보라가 흰 비단처럼 펼쳐진다. 이 모습을 일컫는 ‘화홍관창(華虹觀漲)’은 수원팔경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견고한 석축 위에 단아한 문루가 올라앉은 모습은 방어시설에도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던 수원화성의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화홍문 옆 언덕을 오르면 동북각루(방화수류정)를 만난다. 본래 성 밖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방어시설이지만,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이름의 방화수류정으로 더 유명하다. 정조는 방화수류정의 ‘화(花)’와 ‘류(柳)’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자리한 화산과 새롭게 조성한 수원 읍치의 유천을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군사들이 쉬던 다른 각루의 온돌방과 달리 이곳에는 임금을 위한 온돌방을 2층에 마련하고 창문까지 냈다. 왕이 머물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실용과 풍류를 함께 고려한 것이다. 정조 역시 1797년 화성을 순행하다가 이곳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썼다고 한다.
그 시선을 따라 누각 아래를 내려다보면 1796년 조성된 연못 ‘용연(龍淵)’이 펼쳐진다. 화성 축성 과정에서 조성된 용연은 정조의 미감이 짙게 드러나는 조경 공간으로, 가운데 작은 섬을 둔 전통 연못의 구성이 방화수류정,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정조는 화성의 가을 절경 여덟 곳을 정하면서 비 갠 뒤 용연에 뜬 달을 뜻하는 ‘용연제월’을 그중 하나로 꼽았고, 이후에는 용연에서 바라보는 방화수류정의 야경과 달이 어우러진 ‘나각망월’이 수원팔경으로 자리했다. 잔잔한 수면에 누각과 달빛이 포개지는 순간, 군사도시 한편에 아름다운 정원을 들인 왕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된다.
팔달산 정상에서 만나는 왕의 시선
행리단길에서 잠깐 목을 축이며, 팔달산을 오를 채비를 한다. 다시 역사를 걷는 길은 수원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에서 시작한다. 곁에 선 서북공심돈과 함께 바라보면 군사시설 특유의 견고함과 절제된 아름다움이 동시에 전해진다. 여기서 성곽을 따라 팔달산으로 오르면 도시는 조금씩 발아래로 물러나고, 걸음마다 230여 년을 견딘 돌의 시간이 가까워진다. 또 평지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던 성벽이 산의 굴곡을 따라 가팔라지는 순간, 수원화성이 평지와 산성을 결합한 독특한 성곽임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도착한 팔달산 정상(해발 145m)에는 서장대가 서 있다. 장수가 군사 훈련을 지휘하던 서쪽 지휘소로, 정조도 1795년 이곳에 올라 장용영 군사들의 훈련을 지켜봤다. 누각 앞에 서면 성곽 안팎과 수원의 옛 도심, 멀리 솟은 빌딩 숲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과거의 성벽이 현재의 수원을 둥글게 품은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다.
수원의 낮에서 밤으로 계속되는 산책
팔달산을 내려왔다고 수원화성 산책이 끝나는 건 아니다. 사실상 화성의 정문 역할을 한 장안문, 동장대와 창룡문 등도 남았으니 말이다. 장안문은 북문이면서도 정조가 수원에 들어올 때 이용한 문으로, 거대한 홍예문과 2층 문루, 이를 둥글게 감싼 옹성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성곽 위를 천천히 걷다 보면 도로와 주택가 사이로 18세기의 성벽이 이어지는 수원만의 풍경도 만날 수 있다.
또 동쪽으로 걷다 보면 동장대, 창룡문에 닿는다. 동장대는 장용영 군사들이 훈련하던 장소로 사방이 탁 트여 있고, 지금도 국궁 체험 등 수원화성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해가 기울 때쯤, 낮 동안 단단해 보이던 성벽과 누각이 부드러운 빛을 머금어 산책의 분위기도 한결 느긋해진다.
창룡문 인근에서는 수원화성을 조금 다른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플라잉수원이 기다리고 있다. 플라잉수원은 약 70~150m 상공까지 올라가는 계류식 헬륨기구다. 둥글게 이어진 성곽과 수원 시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성곽을 따라 충분히 걸었다면 여행의 마지막은 다시 화성행궁이다. 낮에는 정조의 행차와 수원부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지만, 어둠이 내려앉으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처마 아래 조명이 켜지고 마당과 회랑에 달빛이 번진다. 낮에서 시작한 수원화성 산책을 밤까지 이어갈 이유로 충분하다.
2026 화성행궁 야간개장
성곽 산책을 마쳤다면 화성행궁의 밤까지 이어가도 좋다. 2026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화담, 花談’이 진행 중이며, 11월 1일까지 매주 금~일요일과 공휴일(관람 시간 18:00~21:30)에 만날 수 있다.
2026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화서문과 장안문, 장안공원 일원이 빛으로 물든다. 9월 19일부터 10월 6일까지 화서문 메인 미디어아트와 장안문의 수원화성 스토리 영상, 보타닉 미디어아트 등을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만날 수 있다.
제63회 수원화성문화제
10월 4일부터 11일까지 화성행궁과 연무대, 방화수류정, 성곽 일대에서 열린다. 수원화성을 무대로 정조와 화성의 이야기를 공연과 체험, 전통문화 콘텐츠로 풀어내는 수원의 대표 역사문화축제다.
Editor’s Pick
수원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
수원갈비
수원의 맛은 너른 들판보다 북적이는 시장과 골목에서 태어났다. 화성 축성 이후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며 성장한 우시장은 수원갈비의 든든한 뿌리가 됐고, 팔달문을 에워싼 전통시장에서는 통닭과 순대(지동시장 순대타운)가 시민들의 허기를 채우는 친근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수원갈비가 하나의 지역 음식으로 이름을 얻은 데에도 우시장의 역할이 컸다. 소의 거래가 활발했던 만큼 질 좋은 갈비를 구하기 쉬웠고, 1940년대 영동시장 인근의 화춘옥에서 갈비구이를 내기 시작했고, 점점 수원갈비라는 이름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소금을 기본으로 간을 하는 양념과 큼지막하게 손질한 갈빗대가 전통적인 수원갈비의 특징으로 꼽힌다.
지금도 수원을 대표하는 갈빗집으로 가보정, 신라갈비, 삼부자갈비, 본수원갈비 등이 자주 꼽힌다. 생갈비와 양념갈비 중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되는데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점심시간을 노려볼 만하다. 일부 식당은 평일 점심에 갈비 정식이나 특선 메뉴를 운영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수원갈비를 경험할 수 있다.
레트로 통닭이 궁금하다면
수원 통닭거리
수원천 주변의 통닭거리는 1970년대 통닭집이 하나둘 문을 열며 시작됐다. 지금은 팔달로 100m 구간에 10여 곳의 전문점이 모여 고소한 냄새로 발길을 붙든다. 대형 가마솥에서 튀겨내는 옛날식 프라이드치킨이 대표 메뉴이며, 영화 <극한직업> 이후에는 달콤하고 짭조름한 수원 왕갈비통닭도 인기다. 넉넉한 양과 친숙한 맛 덕분에 남녀노소 즐겨 찾는데, 곁들임으로 나오는 닭 근위 튀김, 닭발 튀김 등에서 수원의 인심도 느껴진다.
올가을에는 거리 전체가 축제장이 된다. ‘2026 수원 통닭거리 축제’가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화성행궁광장과 통닭거리 일원에서 열리며, 야외취식존을 비롯해 체험 부스와 버스킹, 축하공연 등이 이어진다. 통닭 한 마리를 앞에 두고 수원의 밤을 즐길 수 있다.
지금의 수원을 만나는 복합공간
스타필드 수원
수원이 고향인 리센느 리브가 여러 차례 자랑한 스타필드 수원도 일정에 넣어볼 만하다. 스타필드 수원은 약 33만1,000㎡(약 10만127평) 규모의 복합쇼핑몰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매장뿐 아니라 음식점과 팝업 스토어, 문화, 엔터테인먼트까지 한 공간에 모았다.
먹거리도 하나의 볼거리다. 수원의 로컬 음식부터 전국 각지의 인기 브랜드와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는 팝업, 행사가 수시로 열려 여행 중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4~7층을 수직으로 연결한 별마당도서관이다. 높은 서가와 여러 층에서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입체적인 구조 덕분에 수원화성과는 전혀 다른 매력의 사진 스폿이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sage@travel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