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귀여운 까만 곰 ‘구마몬’의 고향으로 먼저 각인돼 있지만, 구마모토를 좀 더 들여다보면 이 도시가 품은 매력의 층위가 훨씬 두텁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마찰음을 내며 아날로그적 낭만을 선사하는 노면전차에 몸을 실으면 도시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다.
창밖으로는 여러 풍경이 흘러가는데, 한쪽에는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거대한 성곽이 버티고 섰고 다른 한쪽에는 아케이드가 끝없이 이어진다. 여기에 개성 있는 로컬 미식, 푸른 숨결이 깃든 정원 등이 어우러져 색다른 일본 여행을 완성한다.
구마모토 자유여행을 위한 필수 여행지 5
상처를 딛고 부활한 검은빛 위용
구마모토성 & 가토 신사
구마모토 여행의 기점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으로 꼽히는 구마모토성이다. 1607년 축조된 성은 2016년 지진 피해로 천수각을 잃었다. 부단한 노력 끝에 2021년 천수각이 다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성은 부활과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검은 판자를 덧댄 특유의 외관은 굳건하고 기품이 넘친다. 새롭게 단장한 천수각 내부는 층마다 성의 역사와 축성 과정을 세련된 전시로 풀어내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성을 제대로 사진에 담고 싶다면 혼마루 바로 옆에 자리한 가토 신사로 향해야 한다. 천수각을 가장 가까이서, 어떤 장애물도 없이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조망 명소다.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장엄한 검은빛 성과 성곽이 주는 묵직한 느낌이 그대로 기록된다.
에도 시대로의 시간 여행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
구마모토성 곁에 자리한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은 에도 시대의 성하 마을을 재현해 놓은 관광지다. 기와지붕과 옛 상점가 골목을 거닐다 보면 마치 시대극 세트장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먼저 역사 문화 체험 시설 ‘와쿠와쿠자’에서 가상현실(VR)과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구마모토의 역사를 몰입감 있게 즐기면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높아진다.
게다가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에서는 구마모토의 명물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카라시 렌콘(겨자 연근)을 튀겨낸 꼬치, 달콤 쌉싸름한 말차 아이스크림, 진한 풍미의 성게알 고로케 등 길거리 간식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사색의 즐거움
스이젠지 조주엔
고즈넉한 사색을 즐기고 싶다면 스이젠지 조주엔이 정답이다. 17세기 구마모토의 영주였던 호소카와 가문이 무려 3대에 걸쳐 완성한 회유식 정원(중앙에 연못을 두고 그 주위에 산책로를 조성한 형태)이다.
후지산을 상징하는 쓰키야마와 에도와 교토를 잇는 옛 도로인 ‘도카이도 53차’의 명승지들을 모티브로 삼아 정원을 꾸몄다. 잔잔한 연못, 정갈하게 다듬어진 소나무가 조화를 이룬 풍경은 그 자체로 화려해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된다. 그러다가 연못가의 고풍스러운 찻집 고킨덴주노마에 앉아 말차와 화과자를 음미하면 계절의 흐름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풍경과 동화된다.
구마모토의 새로운 심장
사쿠라마치 구마모토
전통의 무게를 충분히 만끽했다면, 이제 구마모토의 가장 트렌디한 모습을 만날 차례다. 사쿠라마치 구마모토(SAKURA MACHI Kumamoto)는 쇼핑몰과 호텔, 정원, 버스 터미널이 하나로 연결된 도심형 복합 시설이다. 버스 터미널과 바로 연결돼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
건물 외관을 따라 이어지는 계단식 테라스와 풍성한 녹지가 먼저 시선을 끈다. 옥상 정원은 구마모토 도심과 구마모토성은 물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아소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휴식처 겸 전망대다. 또한, 5층에 자리한 거대한 구마몬 조형물은 빼놓을 수 없는 포토존이다.
지하는 로컬 먹거리를 만날 수 있는 푸드홀이, 지상에는 패션, 뷰티 매장과 여러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쇼핑과 식사, 휴식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고, 여행 중 잠시 쉬어 가기에도 좋은 구마모토의 대표적인 도심 명소다.
로컬들의 아지트
시모토리 & 가미토리
해가 저물면 구마모토의 활기는 시모토리와 가미토리로 모여든다. 시모토리 아케이드는 긴 천장 아래 생활용품, 기념품 상점, 돈키호테를 비롯한 드럭스토어 등 여러 가게가 모여 있고, 이자카야와 구마모토 라멘 등 맛집들도 빼곡히 들어서 있다. 아케이드에서 한 블록 벗어난 가미노우라 도리도 빼놓을 수 없다. 오래된 민가와 창고를 감각적으로 개조한 공간들이 모여 있어 마치 서울 망원동처럼 힙한 감성이 넘실댄다.
Editor’s Pick
카페 나나세키
시모토리에 자리한 아담한 카페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파르페를 즐길 수 있는데, 지역에서 재배한 딸기, 복숭아 등의 과일을 듬뿍 올린 파르페가 인기다. 일단 보는 맛이 있고, 입에 넣으면 풍부한 과실 향과 기분 좋은 단맛이 몸에 스며든다.
히비코우지야
가미토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오니기리 전문점으로, 최근에 구마모토 MZ세대가 즐겨 찾으며 입소문이 났다. 히비코우지야(日々麹舎)는 1751년 창업한 구마모토의 미소·간장 제조업체인 야마우치 본점(やまうち本店)에서 직접 운영하는 식당 브랜드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불필요한 첨가물이나 자극적인 조미료 대신, 천연 식재료와 발효의 힘을 빌려 정갈한 오니기리 한상차림을 선보인다.
미각으로 기억하는 구마모토
지역이 품은 고유한 맛도 여행지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구마모토의 미식은 군더더기 없이, 식재료 본연의 맛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지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것들을 소개한다.
입에서 녹아내리는 붉은 보석, 바사시
바사시(말고기회)는 구마모토 미식의 상징이다. 벚꽃처럼 붉은빛 덕에 현지에서는 ‘사쿠라니쿠(벚꽃 고기)’라 부른다. 신선도가 보장돼 잡내가 없고, 담백한 풍미가 매력이다. 현지인들이 퇴근 후 즐겨 찾는 향토 요리 전문점 고로하치(Gorohachi)에서는 마블링이 뛰어난 부위부터 쫄깃한 특수 부위까지, 수준급의 바사시를 부위별로 음미할 수 있다. 달짝지근한 규슈 간장에 간 생강과 마늘을 얹어 먹으면 깊은 고소함이 입안을 맴돈다.
한국인 입맛 저격, 구마모토 라멘
후쿠오카에 하카타 라멘이 있다면, 이곳엔 구마모토 라멘이 있다. 진한 돼지 뼈(돈코츠) 육수에 닭 뼈를 섞어 한결 부드럽고 덜 느끼한 것이 특징이다. 한 끗이 다른 건 튀긴 마늘 칩과 마늘을 태우듯 볶아 만든 검은 기름 ‘마유’다. 진득한 육수에 마유가 섞이며 증폭되는 감칠맛은 한국인이라면 만족할 수밖에 없는 맛이다.
참, 구마모토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구마모토는 70만명이 넘게 거주하는 도시임에도 시민에게 공급하는 수돗물 100%를 지하수로 조달한다. 댐과 하천, 저수지를 함께 사용하는 대도시와 달리 아소산의 토양을 거친 깨끗한 물이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 맑은 물은 구마모토의 음식과 술, 농작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즉, 구마모토가 자연의 축복을 받았다는 의미다.
육향의 진수, 아카규 & 아카규동
아소산의 광활한 초원에서 방목해 키운 붉은 소 아카규는 소고기 본연의 육향이 꽉 차 있다. 퀄리티 높은 원육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철판 직화구이를, 밥과 함께 가벼운 점심 식사로 원한다면 아카규동이 제격이다. 요카요카 철판 그릴(Yokayoka Teppan Grill)이나 프리미엄 야키니쿠를 즐길 수 있는 스미카(Sumika)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밥 위에 미디엄 레어로 구운 아카규를 수북이 쌓고 온천 달걀을 톡 터뜨려 먹는 아카규동은 비주얼만큼이나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준다.
길거리 간식의 숨은 강자, 이키나리 당고
구마모토성 주변이나 조사이엔을 거닐다 출출해질 땐 이키나리 당고를 찾자. 짭조름하고 쫄깃한 밀가루 반죽 속에 두툼하게 썬 달콤한 생고구마와 팥 앙금을 빈틈없이 채웠다. 인공적인 단맛을 배제하고 구황작물 특유의 구수함과 팥의 단맛으로 승부하는 구마모토의 소울푸드다.
여행 Tip
구마모토로 가는 길
한국에서 구마모토로 향하는 직항 노선이 있다. 대한항공과 트리니티항공이 인천에서 매일 1회 운항 중이고, 이스타항공은 부산과 구마모토를 매일 연결하고 있어 일정을 계획하기가 수월하다. 기차를 활용하면 후쿠오카와 묶어서 여행할 수 있다.
하카타역에서 규슈 신칸센에 탑승하면 구마모토역까지 약 35~50분이면 닿는다. 당일치기도 가능하지만, 구마모토의 낮과 밤을 온전히 즐기고 싶다면 최소 2박 3일 일정의 근교 여행으로 엮는 것을 추천한다.
대한항공 인천-구마모토 매일 1회
인천→구마모토 17:05-18:35
구마모토→인천 19:35-21:20
트리니티항공 매일 1회
인천→구마모토 07:55-09:25
구마모토→인천 10:25-12:00
이스타항공 매일 1회
부산→구마모토 12:30-13:50
구마모토→부산 14:50-15:55
알아두면 유용한 로컬 서비스
빈손 관광(수하물 위탁 서비스)
무거운 캐리어에서 해방되어 곧바로 여행에 나설 수 있는 스마트한 서비스다. 수하물 숙소 배송과 구마모토 시덴(노면전차) 24시간 승차권을 묶어 1,000엔(약 8,8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
이용 방법 : QUICK TRIP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다. 배송 가능한 수하물의 크기는 길이, 너비, 높이의 합이 200cm 이하, 무게가 30kg 이하다.
수하물 위탁 : 구마모토역 내 야마토운수(Yamato Transport)
이용 가능한 주요 호텔 : OMO5 구마모토 by 호시노 리조트, 미츠이 가든 호텔 구마모토, 레프 구마모토 바이 베셀 호텔, 더 블라썸 구마모토, 소테츠 그랜드 프레사 구마모토, 호텔 니꼬 구마모토, 코코 호텔 프리미어 구마모토 등(이용 전 웹사이트 확인)
운영 시간:9:00~12:00 접수 시 16:00까지 배송, 12:00~15:00 접수 시 18:30까지 배송
※교통 사정 등으로 늦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시덴(노면전차) 승차권
구마모토성, 스이젠지 등 주요 스폿을 거미줄처럼 잇는 노면전차는 구마모토 여행의 든든한 조력자다. 동선과 체류 시간에 맞춰 알맞은 패스를 선택하면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
시덴 1일 승차권 : 모바일 성인 500엔, 소아 250엔 / 실물 티켓 성인 700엔, 소아 350엔
시덴 24시간 승차권 : 성인 600엔, 소아 300엔(사용 개시 시점부터 24시간 적용, 모바일에서만 구매 가능)
*2026년 7월 발생한 지진의 영향으로 일부 시설의 영업시간 등이 변경될 수 있다. 방문 전 각 시설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구마모토성은 지진 발생 이후 안전 점검을 거쳐 2026년 8월 13일부터 관람을 재개했다.
글 이성균 기자 sage@traveltimes.co.kr, 사진 구마모토 국제관광컨벤션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