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매년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준의 게임이 다양한 플랫폼에서 출시되고 있죠. 재미있는 부분은 수없이 쏟아지는 신작 속에서 이용자의 지갑은 오래된 게임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 최대 PC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서는 수년 전 출시된 게임들이 여전히 매출 순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장수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이 회사의 실적을 뒷받침하고 있죠. 이에 신작 출시와 함께 기존 게임의 수명을 늘리는 운영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죠.
시장조사업체 알리니아 애널리틱스가 지난 3일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올해 1~8월 스팀 게임 총매출은 약 150억 달러, 우리 돈 약 20조 원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약 15% 증가한 규모입니다.
반면 올해 출시된 게임 가운데 매출 상위 100개 작품의 합산 매출은 약 24억 달러로 전체의 15.9%에 그쳤습니다. 이는 신작 전체의 매출 비중을 뜻하지는 않지만, 주요 신작만으로 시장의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존의 인기 작품이 여전히 탄탄한 매출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기존 게임의 존재감은 매출 중위권에서도 확인됩니다. 올해 스팀 매출 순위 101~1000위에 오른 900개 게임 중 83%가 2026년 이전 출시 작품이었습니다. 출시된 지 2년 이상 지난 게임도 약 3분의 2를 차지했습니다. 한때 흥행한 게임들이 시간이 흘러 순위가 내려간 뒤에도 꾸준히 매출을 올리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작이 적어서 벌어진 현상도 아닙니다. 9월 15일 기준으로 스팀DB 기준으로 올해 출시작은 이미 1만 8500개를 넘어섰습니다. 신작은 출시 시기가 비슷한 게임뿐 아니라 오랜 기간 평가와 인지도를 쌓은 기존 작품과도 경쟁해야 하니 새로운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가 쉽지는 않죠.
스팀에서만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플레이스테이션에서도 장기 서비스 게임의 존재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소니가 공개한 올해 8월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다운로드 순위에서 '포트나이트'가 미국·캐나다의 PS5·PS4 합산 무료 게임 부문 1위에 올랐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원신이 6위, 포트나이트가 10위를 기록했습니다. '포트나이트'와 '원신' 등은 각각 플레이스테이션 4시절인 2017년과 2020년 출시 이후 계속해서 다운로드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운로드 순위가 매출 규모를 뜻하지는 않지만, 출시 이후의 콘텐츠 판매가 중요한 수익원이라는 점은 소니의 실적에서도 확인됩니다. 소니는 올해 4~6월 게임 소프트웨어 매출 5266억 엔 중 추가 콘텐츠 매출이 2932억 엔에 달한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부문 유료화로 제공 중인 무료 게임 차트 상위권에 자리한 '포트나이트'와 '원신' 등이 상당히 많은 돈을 벌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죠.
그리고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는 이런 구조가 일찍부터 자리 잡았습니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가 대표적입니다. 넥슨이 올해 투자자 설명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PC 던전앤파이터 매출은 전년 대비 30% 증가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00% 넘게 성장하며 서비스 20년 차에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을 정도죠.
모바일에서도 장수 게임의 매출이 확인됩니다. 국내 구글 플레이 차트를 잠깐만 살펴봐도 '오딘'과 같은 장수 게임들이 자리하고 있죠. 회사의 매출 자료에서도 장수 게임의 위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2017년 출시된 엔씨의 '리니지M'은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분기보다 4%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PC 게임 '리니지 리마스터'도 18% 성장했습니다. 오래 서비스한 게임이라도 업데이트와 운영에 따라 다시 매출을 끌어올릴 여지가 있고 이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넷마블은 이러한 방향을 경영 전략으로 밝혔습니다. 김병규 넷마블 대표는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신작 라인업을 조금 타이트하게 가져가면서도 기존 라이브 게임들의 PLC를 확장하는 것이 하반기에 주된 전략의 핵심”이라고 밝혔습니다. PLC는 제품수명주기로, 게임에서는 출시 이후 이용자와 매출을 유지하며 서비스를 이어가는 기간을 뜻합니다.
김 대표는 신작 출시에 대규모 자원이 투입되는 만큼 출시 기준을 강화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작 전략의 이면에 게임 수명이 짧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점에도 공감하면서, 서비스 7년 이상인 모바일 게임에서도 매출이 성장하는 잠재력을 확인한 만큼, 운영 노하우를 적용해 기존 게임의 수명과 매출을 늘리겠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출시 이후 시간이 지난 게임의 흥행을 위해서는 그만큼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업데이트가 반복돼도 새로운 재미가 부족하거나 성장 부담이 커지면 이용자를 붙잡기 어렵고, 출시 당시 확보한 관심을 유지하려면 콘텐츠 공급뿐 아니라 이용자 의견에 대한 대응과 서비스 신뢰도 관리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저 오래된 게임이라는 사실 자체가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죠. 이용자와 소통은 물론 지속적인 개선도 이뤄져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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