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암스테르담(네덜란드)=김동진 기자] 생성형 AI의 등장은 여행을 검색하고 계획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목적지와 날짜를 입력한 뒤 수많은 숙소를 비교하는 데서 나아가 원하는 여행을 자연어로 설명하고, AI에게 맞춤형 계획을 추천받는 방식으로의 변화다.
부킹닷컴(Booking.com)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AI를 활용해 숙박과 항공, 렌터카, 현지 교통, 액티비티 등 여행의 각 단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여행 중 발생하는 변수에도 대응하려 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부킹닷컴 본사에서 만난 제임스 워터스(James Waters) 부킹닷컴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는 “AI가 사람 대신 여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도움으로 여행자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기술을 활용하고자 한다”며 “AI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이로 인해 여행 예약이 더 쉬워졌는지, 고객 만족도가 높아졌는지, 문제 해결 시간이 줄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택지 늘리던 시대에서 ‘나에게 맞는 선택’ 찾는 시대로
워터스 CBO는 부킹닷컴에서 17년 넘게 근무한 인물이다. 대학에서 인류학과 인류 진화를 공부한 그는 학생 시절 부킹닷컴 케임브리지 사무실에서 며칠간 임시 리셉션 직원으로 일한 것을 계기로 회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부킹닷컴 영국과 중국 상하이 지사에서 근무하며 마케팅과 고객서비스, 파트너서비스, 프로덕트 등 여러 조직을 거쳤다. 현재는 재무·법무·인사를 제외한 부킹닷컴의 거의 모든 사업 부문을 총괄한다.
워터스 CBO는 지난 20여년간 온라인 여행 시장의 과제가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초기에는 오프라인 여행사를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에서 많은 숙박시설을 비교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 과제였다. 하지만 숙박시설과 여행상품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제는 선택지가 많은 것 자체가 또 다른 불편이 됐다.
그는 “과거에는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AI가 바꾸려는 지점도 여기다. 부킹닷컴은 생성형 AI 등장 이전부터 머신러닝과 AI를 검색 순위와 추천에 활용해왔다. 생성형 AI는 이용자가 여행지를 결정하기 전 단계까지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별점을 형성한다.
예컨대 “자연과 와인을 좋아하고 하이킹을 즐기는데 유럽 어디로 가면 좋을까”라고 자연어로 질문하면, AI가 취향에 맞는 목적지와 숙박시설 등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목적지를 정하고 조건을 입력한 뒤 검색 결과를 비교하는 방식’에서 ‘원하는 경험을 설명하고 선택지를 추천받는 방식’으로 여행 설계가 바뀌는 셈이다.
“같은 AI 쓰더라도 데이터와 신뢰도에서 차이 발생”
워터스 CBO는 AI 기술 자체만으로는 부킹닷컴의 경쟁력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재 경쟁사들도 모두 같은 AI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결국 경쟁력은 ‘AI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AI를 얼마나 똑똑하게 활용하느냐’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워터스 CBO가 꼽은 부킹닷컴의 차별점은 고객에 대한 이해와 오랜 기간 축적한 자체 여행 데이터, 글로벌 사업 규모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부킹닷컴에는 이용자의 검색 패턴과 예약 행동, 선호 등을 비롯한 방대한 여행 데이터가 축적돼 있다. 범용 LLM을 사용하더라도 어떤 데이터를 결합하느냐에 따라 여행자가 얻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AI의 약점도 분명하다. AI가 그럴듯한 여행 일정을 만드는 것과 실제 예약 가능한 객실을 정확한 가격에 연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예컨대 잘못된 체크인 시간이나 존재하지 않는 객실, 오래된 가격 정보를 제공하면, 여행 자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워터스 CBO는 “그래서 AI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AI+신뢰(Trust)’가 필요하다”며 “정확한 공급 정보와 실제 예약 가능 여부, 가격, 최신 정책, 신뢰할 수 있는 리뷰 등을 AI와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숙소부터 항공·교통까지…AI로 ‘연결된 여행’ 구현
부킹닷컴이 궁극적으로 AI를 활용해 구현하려는 것은 ‘연결된 여행(Connected Trip)’이다.
현재 여행자는 숙소와 항공권, 공항 이동, 렌터카, 액티비티 등을 서로 다른 서비스에서 찾고 일정을 직접 짜야 한다. 부킹닷컴은 AI를 활용해 이처럼 흩어진 여행 과정을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하려 한다.
예컨대 “9월에 이탈리아로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고 입력하면 가족 구성과 예산, 이동 거리 등을 고려해 숙소뿐만 아니라 항공편과 현지 교통, 관광명소와 일정까지 제안하는 방식이다.
여행이 시작된 뒤에는 AI가 실시간 변수에도 대응할 수 있다. 항공편이 지연되면 호텔 체크인과 이후 일정을 조정하고, 기차가 취소되면 다른 이동수단을 제안하거나, 비가 오면 실내 관광지를 추천하는 식이다.
향후 에이전틱 AI가 발전하면, 대체 항공편을 찾고 호텔 체크인과 렌터카 예약을 연쇄적으로 변경하는 등 AI가 실제 행동까지 수행할 가능성도 있다. 워터스 CBO는 이를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하는 ‘End-to-End Travel Experience’라고 설명했다.
부킹닷컴은 이를 위해 지난 2023년, 기존 머신러닝 기술에 오픈AI의 챗GPT API 기반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결합한 ‘AI 트립 플래너(AI Trip Planner)’를 선보였다. 이용자가 대화하듯 원하는 여행 조건을 입력하면, 여행지와 숙박시설을 추천하고 특정 도시나 국가의 여행 일정까지 구성해주는 방식이다.
2025년에는 숙박업체와 투숙객 간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스마트 메신저(Smart Messenger)’와 ‘오토 리플라이(Auto-Reply)’를 공개했다. 예약·숙박시설 정보를 바탕으로 필요한 응답을 생성하거나 반복적인 문의에 자동으로 대응하는 기능이다. 여행자를 대상으로는 예약 관련 정보를 안내하고, 변경을 지원하는 ‘AI 트립 서포트’도 제공하고 있다.
2026년에는 AI 접점을 외부 플랫폼으로까지 넓혔다. 부킹닷컴은 올해 5월 ChatGPT 안에서 렌터카를 탐색할 수 있는 기능을 발표하는 등 AI를 여행 검색과 예약 과정에 직접 연결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AI 활용 확대할수록 커지는 ‘신뢰’ 과제
부킹닷컴이 AI를 여행 전 과정에 활용하려면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소비자가 AI에 어디까지 판단과 행동을 맡길 수 있느냐는 ‘신뢰’의 문제다.
부킹닷컴이 37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AI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89%는 앞으로 여행에 AI를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AI에 실제 여행 결정을 맡기겠다는 응답은 약 12%에 그쳤다. AI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응답은 6%였다. 여행 정보를 탐색하고 추천받는 데 AI를 활용하는 것과 실제 여행 결정을 AI에 맡기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는 의미다.
워터스 CBO는 “이런 신뢰의 간극을 줄이려면 AI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역할을 나눠야 한다”며 “예약 날짜 변경이나 주차 문의, 취소 규정처럼 정형화된 문제는 AI가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숙박시설이 갑자기 문을 닫거나 공항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등 이용자의 상황과 감정을 고려해야 할 때는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에게 최종 통제권을 남겨두는 것도 중요하다.
워터스 CBO는 이용자가 원하면 언제든 AI 대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탈출구(Escape Hatch)’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AI 자체를 성과지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AI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AI를 사용해 예약이 더 쉬워졌는지, 고객 만족도가 높아졌는지, 문제 해결 시간이 줄었는지를 봐야 한다. AI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5년 뒤에도 여행 본질은 같아…준비 과정은 훨씬 쉬워질 것”
워터스 CBO는 5년 뒤에도 사람들이 새로운 장소를 찾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경험을 하려는 여행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신 여행을 준비하고 관리하는 과정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AI가 수많은 선택지를 개인의 취향에 맞게 좁혀주고, 여행 중에는 실시간 상황을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더 나은 선택지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AI 시대에도 최종 선택권은 여행자에게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터스 CBO는 “AI를 활용해 여행자가 여행을 더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라며 “부킹닷컴은 앞으로도 기술 도입 자체보다 그로 인해 여행자의 실제 여행 경험이 개선됐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부킹닷컴이 AI를 통해 만들려는 것도 결국 새로운 검색창이 아니다. 여행 계획부터 예약, 이동과 현지 경험,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까지 흩어진 여행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되, 최종 결정권은 여행자에게 남겨두는 것이 목표다. AI가 여행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가 더 쉽고 편리하게 자신의 여행을 완성하도록 돕는 것. 부킹닷컴이 그리고 있는 AI 여행의 미래다.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