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익(Buick)이 9월 3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한국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무대에 오른 첫 모델은 중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SUV 엘렉트라 E7이다. 사전 예약은 행사 당일부터 시작했고, 본격적인 판매는 11월부터다.
이로써 GM 한국사업장은 쉐보레와 캐딜락, GMC에 뷰익까지 4개 브랜드를 거느리게 됐다. 헥터 비자레알 사장은 한국을 북미에 이은 뷰익의 두 번째 해외 진출 시장이라고 소개했다. 1903년에 출발해 120년 넘게 이어져 온 브랜드가 비로소 한국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사실 뷰익은 우리에게 전혀 낯선 브랜드가 아니다. 2010년 GM대우가 내놓은 알페온의 뿌리가 바로 뷰익 라크로스였다. 지금도 부평과 창원 공장에서는 뷰익 엔비스타와 앙코르 GX가 만들어져 북미로 향한다.
그 물량도 결코 적지 않다.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뷰익은 모두 19만8,155대였다. 그중 한국에서 건너간 두 차종이 11만6,477대로, 열 대 가운데 여섯 대꼴이다. 미국 뷰익 사업의 절반 이상을 한국 공장이 받쳐 온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한국 소비자는 뷰익 배지를 단 차를 한 번도 살 수 없었다. 이날 행사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다.
업계에서는 첫 주자로 엔비스타를 점치는 목소리도 많았다. 국내에서 만드는 차인 만큼 물량을 맞추기가 수월해서다. 그러나 GM이 첫 모델로 선택한 차량은 중국 SAIC-GM이 개발하고 생산한 E7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집안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엔비스타는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뼈대와 파워트레인을 함께 쓴다. 트랙스는 지난 8월 GM 한국사업장 내수 판매의 86%를 홀로 책임진 차다. 쌍둥이 같은 두 차를 한 매장에 나란히 세우면 새 고객을 부르기보다 서로의 몫을 나눠 가질 가능성이 크다.
라인업의 빈자리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지금 국내 GM 라인업에는 중형 SUV도, 전동화 모델도 없다. 트랙스와 트레일블레이저 같은 소형 SUV 위로는 곧장 수입 대형 SUV가 이어진다. 길이 4,850mm의 E7은 그 사이, 국내에서 수요가 가장 두터운 중형 패밀리 SUV 시장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중국에서 거둔 성적도 GM에 확신을 줬을 것이다. E7은 4월 중국 출시 후 한 달 만에 1만 대 이상이 고객에게 인도됐다. 5월부터 8월까지는 15만 위안 이상 합자 브랜드 신에너지차 부문에서 넉 달 내리 판매 1위를 지켰다. 구매자 열 명 중 여덟 명은 타던 차를 바꾸러 온 고객이었다.
이런 흐름은 GM의 중국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GM과 SAIC는 지난 8월 합작 계약을 2047년까지 20년 더 연장하며 중국을 전동화 신차의 개발과 수출 거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E7은 두 회사의 합작사가 처음으로 해외에 내보내는 프리미엄 신에너지차다. 한국이 그 첫 무대 가운데 하나가 된 셈이다.
한국형 E7에는 1.5L 자연흡기 엔진과 165kW 구동 모터가 짝을 이룬다. 배터리 용량은 31.7kWh로, 전기만으로 복합 기준 최대 126km를 달린다. 엔진까지 함께 쓰면 주행 가능 거리는 1,000km 이상으로 늘어난다. DC 급속충전기를 이용하면 배터리를 30%에서 80%까지 20분 안팎에 채울 수 있다.
중국에서 발표한 수치와 견주면 차이가 제법 크다. 중국 CLTC 기준으로는 전기 주행거리 235km, 통합 주행거리 1,630km였다. 국내 인증 기준이 훨씬 깐깐한 만큼 숫자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온라인에서 이미 '1,600km 달리는 SUV'로 이름이 알려진 터라 소비자에게 그 차이를 차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고를 수 있는 폭도 좁아졌다. 중국에서는 최상위 트림에 1.5L 터보 엔진을 얹지만, 국내 출시 모델에는 자연흡기 엔진만 올라 있다. 중국 사양의 자랑거리였던 라이다와 모멘타(Momenta) 기반 주행 보조 기능도 국내에서는 만나기 어려워 보인다. 구체적인 가격과 트림별 사양이 공개되는 시점 꼭 확인해 봐야 할 부분이다.
그 대신 뷰익이 힘주어 내세운 것은 '움직이는 라운지'다. 앞뒤 좌석을 이어 침대처럼 쓰는 퀸 베드 모드를 필두로 동승석 무중력 모드와 앞좌석 마사지 시트를 갖췄다. 여기에 20개 스피커와 노면에 맞춰 감쇠력을 실시간으로 바꾸는 CDC 서스펜션, 실외 V2L, 반려동물 모드까지 챙겼다.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보다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편안하냐로 승부하겠다는 뜻이다.
뷰익은 E7을 4개 트림으로 나누고 가격을 4,300만~5,400만 원대로 예고했다. 중국 현지에서는 우리 돈 3,000만 원대에 팔리는 차다. 1,000만원의 가격차가 나지만, 물류비와 인증 비용, 국내 안전사양을 충족시키기 위한 비용 등을 감안하면 국내 출시된 다른 중국산 차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에서 경쟁하게 될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5인승 2WD가 3,963만~4,576만 원, BYD 씨라이언 6 DM-i가 3,750만 원, 테슬라 모델 Y 후륜구동이 4,999만 원이다. E7의 시작 가격은 쏘렌토 하이브리드 하위 트림보다 높고, 최상위 트림은 모델 Y보다도 비싸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뷰익'이라는 이름에 그만한 값을 치를까. 국내 소비자 대부분에게 뷰익은 처음 들어 보는 브랜드다. 미국에서는 J.D. 파워 내구품질조사에서 2년 연속 대중 브랜드 1위에 올랐지만, 그 평판이 아직 한국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다.
생산 기지로서 GM 한국사업장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2024년 순이익은 2조2,000억 원으로 3년 연속 흑자를 이어 갔고, 올해 3월에는 6억 달러(약 8,800억 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는 누적 생산 200만 대를 돌파했고, 지난해 미국 소형 SUV 시장의 약 43%를 가져갔다.
국내 판매로 눈을 돌리면, 지난해 내수 판매는 1만5,094대로 한 해 전보다 39.2% 줄었다. 올해 1~8월 내수는 6,768대로 전체 판매의 2% 남짓에 머물렀다. 뷰익과 GMC는 이 기울어진 균형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 GM이 꺼내 든 카드다.
비용만 놓고 보면 영리한 선택이다. 뷰익은 GM 한국사업장이 이미 갖춘 판매망과 전국 115개 이상의 서비스 네트워크를 그대로 활용한다. 새 딜러망을 따로 꾸리지 않고도 쉐보레와 뷰익, GMC, 캐딜락으로 이어지는 가격 사다리를 완성한 것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뷰익도 GMC도 해외에서 들여오는 차여서 국내 공장 가동률에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 노조가 국내에서 생산할 신차를 배정해 달라고 거듭 요구하는 이유다. 1월에 먼저 들어온 GMC 아카디아와 캐니언 역시 아직 판매 실적에서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숙제는 역시 인지도다. 1938년 세계 최초의 콘셉트카로 꼽히는 와이-잡(Y-Job)을 내놓은 역사는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소비자의 계약서로 옮겨 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원산지를 바라보는 시선도 무시하기 어렵다. 테슬라와 BYD, 볼보가 중국에서 만든 차를 들여와 팔면서 거부감은 예전보다 많이 옅어졌다. 올해 1~8월 국내에서 팔린 중국산 전기차는 1년 전보다 153.5%나 늘었다. 그래도 '미국 프리미엄 브랜드가 중국에서 만든 SUV'는 국내 소비자에게 처음 보는 조합이다.
가격에 대한 설득도 남아 있다. 퀸 베드와 무중력 시트가 경쟁차와의 가격 차이를 메울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옵션 목록이 길어진다고 저절로 프리미엄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E7의 상품성은 세계 최대 전동화 시장인 중국에서 이미 한 차례 검증을 거쳤다. 뷰익은 한국에서 자동차를 처음 파는 브랜드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동차를 처음 만드는 브랜드는 아니다. 오랫동안 한국 공장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수출되던 이름이 이제야 한국 소비자에게 돌아왔다. 그만큼 이번 진출은 신차 출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뷰익의 역사에 대한 설명보다 한국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현재의 가치다. E7이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느냐가 한국에서 뷰익의 다음 10년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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