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김예지 기자] 번역을 마쳤다고 해외 출판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연재본을 해외 독자가 구매하는 단행본·전자책 형태로 다시 만들고, 현지 독자에게 맞는 표지와 소개문을 준비하고, 플랫폼에 맞는 파일을 제작해 유통한 뒤, 판매 내역을 모아 권리자에게 정산해야 한다. 이 과정이 작품마다 반복되면서 출판사에는 번역비와 별개로 상당한 운영 부담이 생긴다.
지난 1편에서는 번역비 장벽과 AI 번역을 다뤘다. 2편에서는 번역 이후 이어지는 출간·유통·정산 공정의 실태를 살펴보고, 글로벌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오로라(Aurorah)’를 개발 중인 ‘하이브마인드(HiveMind)’가 이 과정을 어떻게 풀어가려 하는지 짚어본다.
해외 진출을 뒷받침할 조직과 운영 기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일본에서도 제기된다. 일본 활자문화 글로벌 전개협의회가 2026년 6월 발표한 ‘활자문화의 글로벌 전개 전략 2026’은 서적의 해외 매출을 늘리기 위한 과제로 문예번역가와 해외 판매 인력의 부족, 해외 출판 정보 기반의 미비 등을 꼽았다.
그러나 한일 양국 시장 모두 수많은 스토리 지식재산권(IP)을 해외 독자가 소비할 수 있는 상품으로 지속 전환하고, 발생한 판매 데이터와 수익을 권리자 및 창작자에게 원활히 환원하는 산업적 중간층이 부실하다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는 이융희 작가와 임허규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협회장이 응했다. 이융희 작가는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으로 데뷔해 20여 년간 창작 활동을 이어왔으며, 현재 목포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거 웹툰·웹소설 제작사에서 근무하며 해외 번역·유통 실무를 경험했다. 출판사 대표를 겸하고 있는 임허규 협회장이 이끄는 협회는 웹소설 및 스토리 작가의 권익 보호와 창작 환경 개선을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가 설립을 허가한 사단법인이다.
번역비 해결해도…작품마다 반복되는 출간·유통·정산
임허규 협회장은 출판사 입장에서 “번역 장벽을 넘는다 해도 끝이 아니”라고 짚었다. 출판사는 국내 원작자와 해외 수출 판권 계약을 맺고, 현지 플랫폼 및 유통사와 계약을 체결한 뒤, 현지화 작업을 진행한다. 이어 윤문과 교정·교열, 표지 및 소개글 등 현지 맞춤형 마케팅 자산 제작, 플랫폼 입점과 프로모션, 정산 및 데이터 수합 등을 순차 진행한다. 번역은 전체 출판 공정 중 한 단계에 불과한 셈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공정들은 작품마다 반복돼 출판사에는 행정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그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단계로 번역과 현지화와 함께 현지 플랫폼 특성에 맞춘 마케팅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 독자들의 피드백을 모니터링하고, 플랫폼 정책에 맞춘 프로모션이 기획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표지와 소개문구 역시 현지 문화와 취향에 맞춰 재창작되어야 한다. 정산 구조는 더욱 까다롭다. 그는 “해외 플랫폼, 현지 에이전시, 국내 출판사를 연달아 거치는 유통 구조상 데이터 수합과 정산 집행 사이에 긴 시차가 발생하며, 국가별 시장 특성과 제도가 달라 일률적인 적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임허규 협회장은 번역의 효율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하는 시스템과 더불어 “현지 플랫폼과의 직접적이고 강력한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유통 단계의 수만이 아니라, 각 단계의 역할과 수익 배분 기준이 명확하고 판매·정산 정보가 권리자에게 전달되는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다. 작가와 협회 차원에서는 불법 텍스트본 유출이나 무단 번역 같은 저작권 침해 대응, 투명한 권리 보장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리자의 초기 비용 부담 낮추고 해외 출판 공정 통합
김동욱 하이브마인드 대표는 번역을 마친 출판사들이 정작 유통과 정산 단계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플랫폼마다 정산서 양식이 달라 이를 모으는 일부터 만만치 않은데, 해외 시장으로 나가면 환율 변동과 현지 법인 설립 여부 등 변수가 더해진다. 이에 하이브마인드는 번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수, 파일 제작, 유통, 정산까지 이어지는 공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김동욱 대표는 “결국 콘텐츠 감수, 플랫폼별 포맷 변환, 유통 및 정산까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번역만으로 해외 판매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이브마인드는 번역과 감수, EPUB 제작 기능을 구현해 내부 현지화 공정에 활용하고 있으며, 올해 안에 정산 베타 서비스를 공개하고 기존 서비스의 고도화도 이어갈 계획이다. 일본 전자책 시장에서는 현지화한 웹소설을 직접 출간하며 번역부터 파일 제작, 유통까지의 운영 경험을 쌓고 있다. 또한 아마존 등 글로벌 주요 전자책 플랫폼에 공급자 자격으로 작품을 공급할 수 있는 경로를 단계적으로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출판사는 국내에서 스토리 IP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해외 진출에 필요한 현지화와 유통 준비는 하이브마인드에 맡길 수 있는 모델을 지향한다. 국내 출판사가 국내 독자에게 책을 내듯 해외 시장에도 손쉽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돕는 ‘글로벌 중개자(Aggregator)’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구상이다.
비즈니스 모델은 권리자의 초기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하이브마인드는 권리자의 초기 현지화 비용 부담을 낮추는 수익공유형 협업 모델을 운영한다. 해당 모델에서는 하이브마인드가 현지화와 해외 출판을 맡고, 계약에 따른 해외 판매수익을 권리자와 공유한다.
롱테일 도전, 투명한 정산이 뒷받침한다
김동욱 대표는 창작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투명한 정산 시스템을 꼽았다. 그는 “선별과 편집, 문화적 판단, 권리 결정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며, 권리자가 라이선스 아웃, 공동 출판, 직접 유통 중 작품에 맞는 방식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국경을 넘는 것만으로는 완성이 아니다. 해외 유통에서 발생한 매출과 독자 반응 데이터, 권리 이용 정보가 투명하게 축적되고 창작자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음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하이브마인드는 플랫폼·작품별 판매 내역을 권리자와 작가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방향으로 정산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 임허규 협회장은 “번역과 유통 장벽을 낮추면 긍정적인 기회가 열린다. 과거에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국내에서 100% 검증된 메가 히트작만 선별해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면, 초기 비용이 낮아지고 작가의 인지도와 브랜딩이 형성되면 다양한 장르 및 소재의 작품을 가볍게 런칭해 현지 반응을 테스트하는 ‘롱테일(Long-tail)’ 전략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작가들도 해외 수출 판권 계약 이후 런칭까지의 기다림이 길어 중간 유통 과정의 투명성을 절실히 바란다. 이융희 작가는 “시장의 반응과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작가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정산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라고 짚으며, “해외 플랫폼의 정산 내역과 플랫폼별 데이터가 구체적으로 제공될 때, 작가들이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을 겨냥한 다변화된 창작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번역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려면, 이 중간 공정이 작품마다 반복되는 수작업이 아닌 인프라로 정착해야 한다. 김동욱 대표는 “하이브마인드는 번역과 감수, 출간, 유통을 하나의 공정으로 묶고, 현지 플랫폼과의 연동과 데이터 축적까지 단계적으로 갖춰 K-웹소설이 해외 독자를 만나는 길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IT동아 김예지 기자 (y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