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라 했던가. 수만 개의 봉우리가 만들어 낸 수묵화 같은 풍경과 유유히 흐르는 이강은 구이린의 오랜 매혹이다. 또한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 민족의 다채로운 문화, 미각을 즐겁게 하는 지역 음식도 여정을 풍성하게 채워 준다.
천하제일의 산수가 일상이 된 도시
중국 광시좡족자치구에 속한 구이린(계림, 桂林)은 수려한 자연과 오랜 역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여행지다. 아열대 계절풍 기후의 영향으로 사계절 내내 비교적 푸른 풍경을 만날 수 있고, 특히 봄부터 가을까지는 짙은 녹음과 물안개가 어우러져 구이린다운 산수화를 완성한다. 도시를 병풍처럼 감싼 수많은 봉우리와 시내를 유유히 관통하는 이강(漓江)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선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기분마저 든다.
구이린의 풍경은 자연에만 머물지 않는다. 광시는 좡족을 비롯해 야오족, 먀오족, 둥족 등 여러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지역으로, 저마다 다른 의상과 노래, 춤, 생활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약 1,957만 명의 좡족은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소수민족으로 노래를 주고받는 문화가 발달했고, 야오족은 긴 머리와 붉은빛 전통 복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먀오족의 화려한 은장식과 자수, 둥족의 다층 목조 건축과 합창 문화도 구이린과 주변 지역을 여행하며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이다.
구이린의 진짜 매력은 이런 자연과 문화가 일상의 영역에 바짝 맞닿아 있다는 데 있다. 이강 크루즈나 노적암처럼 시내 밖으로 이동하는 코스도 있지만, 도심 안에서도 상비산, 정강왕부, 독수봉, 첩채산, 이강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 정도 규모의 산과 봉우리가 빌딩과 도로, 주거지 사이로 불쑥 솟아 있다는 사실이 꽤 놀랍다.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 곧 구이린의 산수가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굳이 먼 곳까지 나가지 않아도 실감하게 되는 이유다.
구이린 제1의 랜드마크는 상비산이다. 이강과 타오화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약 3억6,000만 년 전의 바위산으로, 거대한 코끼리가 강물에 코를 담근 모습과 닮아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 해발 약 200m의 정상까지 이어지는 초입의 가파른 계단만 이겨 내면 구이린 도심과 수많은 봉우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정상에는 칼자루를 닮은 보현탑이 서 있고, 바위 중턱에는 산을 관통하는 코끼리 눈 동굴도 있다. 산 아래에서 먀오족 전통 의상을 빌려 사진을 찍거나 작은 보트를 타고 코끼리 코 바위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다.
발걸음을 도심 한가운데로 옮기면 정강왕부와 독수봉이 기다린다. 정강왕부는 명나라 왕자들의 거처로 사용된 곳으로, 당시 왕부 건축의 질서와 위엄을 비교적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중심축을 따라 단례문, 승운문, 승운전 등이 이어지는데, 무엇보다 푸른 하늘을 떠받친 기둥처럼 보이는 독수봉이 중요하다.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봉우리는 약 10~15분이면 정복할 수 있다. 그렇게 꼭대기에 오르면 느긋이 흐르는 이강과 도심, 상비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구이린은 자연과 도시가 얼마나 가까이에서 호흡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빛을 더하다
구이린은 자연이 만든 풍경 위에 형형색색의 빛을 더해 전혀 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노적암(芦笛岩)이다. 구이린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노적암은 물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석회동굴이다.
약 240m 길이의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종유석과 석주, 기암괴석 위로 붉고 푸른 조명이 번갈아 내려앉는다. 자연 그대로의 동굴을 기대했다면 다소 화려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과감한 색채 덕분에 노적암만의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완성된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수정궁이다. 짙은 파란빛 아래 거대한 종유석이 동굴 속 연못에 비치면, 수면 위아래의 경계가 흐려지며 깊은 바닷속이나 다른 행성에 들어선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푸른빛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가는 기분마저 든다.
동굴 곳곳에는 사자와 금붕어, 숲을 닮았다고 이름 붙인 바위들이 이어진다. 설명을 듣는 순간 곧바로 형태가 보이는 것도 있지만, 몇몇은 제법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또한 노적암을 즐기는 작은 방법이다.
밤의 구이린은 양강사호 유람선을 활용하면 좋다. 시내를 흐르는 두 개의 강과 네 개의 호수를 연결한 물길을 따라가며 일월쌍탑을 비롯한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다. 저녁이 되면 다리와 탑, 호숫가 건물에 조명이 들어오고, 일부 구간에서는 가마우지를 활용한 전통 어업 장면이나 중국 무용 같은 짧은 공연도 곁들여진다. 노적암이 동굴 속 빛의 세계라면, 양강사호는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는 밤이다.
양숴, 봉우리 사이를 유영하다
구이린 중심부를 떠나 2시간 30분 정도 이강을 따라 흘러가면 양숴(양삭, 阳朔)에 닿는다. 이강과 위룽허 주변으로 기묘한 봉우리가 빽빽하게 솟은 작은 도시로, 과거에는 독특한 풍광과 저렴한 물가 덕분에 서양인 배낭여행객들의 아지트로 이름을 알렸다. 1,4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서가(西街)를 중심으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기념품점이 늘어나며 국제적인 여행지로 성장했고, 오늘날에는 중국인 여행객까지 몰려드는 대표 휴양지로 변모했다.
양숴의 매력은 도시보다 그 주변에 넓게 퍼져 있다. 위룽허에서는 대나무 뗏목을 타고 한층 잔잔한 산수를 누릴 수 있고, 싱핑고진 인근에서는 중국 20위안 지폐의 배경으로 알려진 이강 풍경을 만난다. 봉우리 사이를 달리는 십리화랑(十里畵廊)과 은자암 동굴, 밤의 산수를 무대로 펼쳐지는 인상유삼저도 대표적인 볼거리다. 그중 문힐은 산허리를 둥글게 관통한 천연 구멍이, 보는 각도에 따라 초승달에서 보름달처럼 달라서 붙은 이름이다. 높이 약 380m의 바위산으로, 십리화랑을 대표하는 경치다.
케이블카를 타고 여의봉(루이펑)으로 향하는 길에도 양숴의 봉우리들은 쉼 없이 모습을 바꾼다. 구이린에서 이미 수많은 봉우리를 보았건만, 양숴에서는 또 다른 밀도와 생김새에 새삼 놀라게 된다. 짧은 감탄을 뒤로하자 긴장감이 몰려온다. 국내 산악 케이블카는 대개 아래가 숲으로 빽빽해 안정감을 주지만, 이곳에서는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선로 아래로 땅과 골짜기가 훤히 드러난다. 약 2km를 이동하며 241m의 높이를 오르는 동안 케이블카 자체가 하나의 놀이기구처럼 느껴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봉우리 위에 만든 다양한 길이 기다린다. 길이 약 142m의 여의삭교는 계곡 바닥에서 58m 높이에 걸린 출렁다리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리며 스릴을 더한다. 이어 뱀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스카이워크가 봉우리 사이를 잇는다. 정상의 여의운정 전망대에 서면 사방이 활짝 열리고, 끝을 가늠하기 힘든 봉우리들이 겹겹이 펼쳐진다. ‘구이린에는 3만6,000개의 봉우리가 있다’라는 표현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순간이다.
하산길의 백미는 절벽을 따라 조성한 길이 약 138m의 유리잔도다. 투명한 바닥 아래로 비탈이 훤히 보여 아찔하지만, 몇 걸음 지나면 공중을 걷는 듯한 재미가 두려움을 앞선다. 빠르게 둘러보면 1시간 남짓, 전망대마다 사진을 남기며 천천히 걷는다면 1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알맞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는 양숴의 로컬 음식 피지우위로 허기를 달랜다. 민물고기를 맥주와 고추, 향신료에 자작하게 조린 요리로, 부드러운 생선살에 짭조름하고 매콤한 양념이 깊게 배어 있다. 이어 서가재래시장의 활기를 구경하고, 해가 지면 인상유삼저 공연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용의 등뼈를 따라 만난 또 다른 구이린
구이린에서 차로 약 2시간 달리고, S자 산길까지 오르면 거대한 계단식 논이 펼쳐진다. 룽성각족자치현 룽지진 일대에 자리한 용척제전(龙脊梯田)이다. 계단식 논은 해발 약 300~1,100m의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펼쳐지는데, 산등성이를 따라 휘어지는 논두렁이 마치 용의 등뼈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용척제전에서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 다르다. 5월 말부터 6월 무렵에는 논에 물을 채우면서 하늘과 산이 수면에 비치고, 모내기가 끝난 여름에는 산비탈 전체가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물든다. 9월 말부터 10월에는 벼가 익으며 황금빛 물결이 일렁인다. 기후와 농사 일정에 따라 시기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체로 6월부터 10월 사이라면 어느 때 찾아도 충분히 멋지다.
최근에는 수익성이 높은 과일과 다른 작물을 심는 농가도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벼농사가 풍경의 중심을 지킨다. 운이 좋다면 전통 방식으로 논을 가꾸는 주민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깊은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손으로 흙을 다듬고 농기구를 옮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전망대에서 풍경을 감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정취를 남긴다. 정상에서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 멀리 보이던 지붕과 골목이 차츰 가까워지고, 거대한 계단식 논은 어느새 사람들의 생활 터전으로 바뀐다.
룽지진에서 또 다른 볼거리는 황뤄야오자이(황뤄 요족 마을)다. 붉은색 계열의 전통 복식을 입는 홍야오족이 살아가는 마을로, 여성들이 머리를 길게 기르는 풍습 때문에 ‘장발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쌀뜨물을 발효시켜 만든 천연 샴푸를 이용해 머리를 관리하는 전통도 이어진다.
여성들이 머리를 묶는 방식에는 삶의 이력이 담긴다. 전통적으로 머리를 틀어 감은 뒤 검은색 두건으로 머리 전체를 감싼 형태는 미혼 여성을, 단정하게 둥글려 틀어 올린 모습은 자녀가 없는 기혼 여성을, 이마 앞쪽에 혹 모양을 만들어 얹은 형태는 자녀가 있는 여성을 나타낸다. 마을에서 선보이는 공연도 인상적이다. 홍야오족 여성들이 긴 머리를 풀어 빗고 다시 올리는 과정과 과거 성인식에서 머리를 자르던 풍습 등을 노래와 춤으로 풀어낸다. 관광객을 위한 퍼포먼스이지만, 머리카락에 신분과 생애, 공동체의 기억을 담아 온 문화를 보여 준다.
■7 Things to Know Before Visiting Guilin
여행 전 알아 두면 좋은 7가지
01 뜻밖의 낭만, 이강의 오후
해방교(解放桥) 위에 서서 이강을 내려다보니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강물에 몸을 담근 채 이야기를 나누고, 천천히 헤엄치며 오후를 보내는 현지인들이 보였다. 햇살이 맑고 수면도 잔잔한 날씨라면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다만 비가 내리거나 강물이 불어난 날에는 입수를 피해야 한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구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충분히 구이린의 색다른 낭만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02 트립닷컴 Trip.Best
중국 여행은 다른 여행지보다 난도가 높은 편이다. 구글 지도의 활용도가 떨어져 정보 접근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국행 항공편부터 호텔, 액티비티, 중국 본토 기차까지 예약할 수 있는 트립닷컴(Trip.com) 앱, 그리고 ‘트립 베스트(Trip.Best)’가 있으니 말이다. 트립 베스트는 전 세계 트립닷컴 사용자들의 리뷰와 검색, 예약 데이터를 분석해 각 지역의 숙소와 관광지, 레스토랑 등을 평가한 랭킹 리스트다. 1억 건이 넘는 사용자들의 솔직한 평가와 연중 판매도, 인기도 등을 고려한 만큼 꽤 믿을 만한 자료다. 특히, 이강 유람선과 용척제전(계단식 논), <인상류삼저> 공연 등 구이린 도심에서 먼 관광지와 액티비티를 경험하고 싶을 때 교통편이 포함된 상품도 앱에서 쉽게 예약할 수 있다.
03 1,000원의 행복, 구이린 쌀국수
구이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쌀국수와 피지우위, 주통판(대나무통 찹쌀밥), 요우차(찻잎, 생강, 마늘 등으로 끓여 낸 차)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로컬들의 일상과 가장 맞닿아 있는 건 쌀국수다. 탄력 있는 면발 위에 간장 소스인 ‘루차이’를 뿌리고, 튀긴 삼겹살, 땅콩, 갓, 고수, 파 등을 고명으로 올린 음식이다. 이대로 비벼 먹어도 되고, 육수를 부어서 국수로 즐길 수도 있다. 추천하는 방식은 먼저 비빔면 형태로 즐기고, 나중에 국물을 더해 두 가지 맛 모두 즐기는 것이다. 심지어 가격도 합리적이다.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5~8위안(약 1,100~1,800원)이면 포만감 있는 식사가 가능하다.
04 효도여행이라면, 이강 유람선
구이린에서 양숴까지 이강에서 제일 멋진 약 83km 구간을 유람하는 투어다. 2시간 30분~3시간 정도 이어지는 유람선에서는 중국 20위안 지폐의 배경인 황포도영(黄布倒影)과, 말 9마리가 보이는 큰 바위인 구마화산(九马画山)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참, 크루즈에서는 간단한 뷔페식 점심이 포함돼 있는데, 간식이나 먹거리를 들고 타도 상관없다.
05 구이린의 걷기 여행길, 용호-삼호
구이린을 관통하는 2개의 강(이강·도화강)과 4개의 호수(삼호·목룡호·계호·용호)를 일컬어 양강사호(兩江四湖)라 부른다. 양강사호는 단순히 지역과 호흡하는 물길에 그치지 않고, 매력적인 여행 콘텐츠가 돼 준다. 도심에서는 용호(榕湖)에서 삼호(杉湖)까지 이어지는 도보 코스가 특히 매력적이다. 용호 호텔(Ronghu Lake Hotel) 뒤편에서 출발해 삼호에 우뚝 솟은 일월쌍탑(日月雙塔)까지 이어지는 약 1.5~2km 거리의 평지 길인데, 곳곳에 사진 찍을 요소들이 많은 것도 장점이다.
06 압도적인 규모와 배경, 인상유삼저
양숴의 밤을 수놓는 <인상유삼저>는 중국의 거장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대형 야외 공연이다. 노래를 잘하던 유씨 집안의 셋째 딸 유삼저를 길잡이 삼아 좡족과 야오족, 묘족, 둥족의 노래와 풍습, 어민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그림처럼 펼쳐 낸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무대다. 실제 이강의 수면과 겹겹이 솟은 봉우리가 배경이 되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불빛과 노래가 산수 전체를 거대한 공연장으로 바꾼다. 수백 명의 출연자가 대나무 뗏목과 횃불, 빨간 천, 은빛 의상으로 만들어내는 군무는 그 자체로 장관이다. 줄거리보다 색과 빛, 움직임으로 감상하는 공연으로, 구이린의 자연과 소수 민족 문화를 극적인 방식으로 즐기는 콘텐츠다.
07 색다른 사진 포인트, 소수 민족 의상
상비산과 산호 등 주요 관광지 주변에서는 좡족, 묘족, 야오족의 전통 의상을 빌려 입고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의상과 장신구, 촬영 포함 여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니 대여 전 구성과 요금을 꼼꼼히 확인하는 게 좋다.
*이성균 기자의 M-SG
당신의 여행에 감칠맛을 더해 줄 MSG 제작소. 관광지, 호텔, F&B 공간, 액티비티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탐합니다. 여기에 M(밀레니얼)세대, 뱀띠 기자의 취향 한 스푼 더할게요.
글·사진 이성균 기자 sage@trav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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