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김동진 기자] 자동차에 이어 선박에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운항 기술이 확산하고 있다. 선박에 설치된 센서와 항해장비로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AI가 다른 선박과의 충돌 위험을 분석해 항로 변경 또는 선박의 방향과 속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시험 운항을 통해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실제 해운사가 운용하는 상선에 관련 시스템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자율운항 솔루션은 여러 해운사의 공급 계약으로 이어졌고, 실제 선박에 시스템 설치를 마친 사례도 등장했다. 육상에서 선박의 운항 상태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원격운용센터도 구축됐다. 다만 AI가 항해를 보조하거나 선박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과 선원의 개입 없이 모든 상황에 대응하는 완전자율운항은 다르다.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현재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주변 선박 인식하고 항로 조절…자동차 자율주행과 닮은 원리
자율운항선박의 기본 원리는 자동차 자율주행과 유사하다.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 상황을 판단한 뒤, 필요한 경우 선박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선박에는 레이더와 카메라, 위성항법장치(GNSS),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등 다양한 항해장비가 사용된다. 레이더는 주변 물체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활용되며, AIS는 해당 장치를 사용하는 다른 선박의 위치와 속도, 항해 정보 등을 제공한다. 카메라는 주변 선박과 장애물을 영상으로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AI 기반 자율운항시스템은 이러한 정보를 종합해 다른 선박과의 충돌 가능성을 분석한다. 위험이 예상되면 항로 변경을 제안하거나, 자동조타장치와 연동해 선박의 진행 방향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일부 시스템은 엔진 회전수(RPM)를 제어해 운항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갖췄다.
다만 바다는 도로와 운항 환경이 다르다. 자동차는 차선과 신호등 등 정해진 교통체계에 따라 움직이지만, 선박은 주변 선박의 움직임과 기상, 해류, 수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대형 선박은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줄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선박 간 통항 관계를 규정한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COLREG)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장애물을 피해 이동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항로를 유지하고, 언제 방향이나 속도를 바꿔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양 횡단 실증 넘어 실제 상선에 도입…아비커스 상용화 확대
국내에서는 HD현대의 자율운항 전문기업 ‘아비커스’가 관련 기술의 상용화를 추진한다.
아비커스는 2022년 LNG 운반선 '프리즘 커리지(PRISM COURAGE)'에 자율운항시스템 '하이나스 2.0(HiNAS 2.0)'을 적용, 대양 횡단 실증을 진행했다. 장거리 항해 중 주변 선박을 인식하고 충돌 위험을 판단하며 항로를 제어하는 기능을 검증한 사례다.이후 자율운항 기술은 실제 선박을 대상으로 한 공급 계약으로 이어졌다. 아비커스의 대형 상선용 솔루션 '하이나스 컨트롤(HiNAS Control)'은 각종 항해장비에서 수집한 정보를 AI로 분석해 주변 선박과 장애물을 인식하고 충돌 위험을 판단한다. 자동조타장치와 연동해 침로를 조정하거나 엔진 회전수를 제어하는 기능도 지원한다. 항해사의 판단을 보조하는 데서 나아가 실제 선박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국내외 해운사들의 도입도 이어지고 있다. 고려해운(KMTC)은 2025년 컨테이너선 10척에 하이나스 컨트롤을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026년 7월에는 3척을 추가하는 계약을 체결해 초기 실증선까지 포함한 적용 대상이 총 14척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HMM은 2026년 1월 운항 중인 컨테이너선 40척에 해당 시스템을 공급받기로 했다. 해외에서는 홍콩 선사 시도쉬핑이 건조 중인 자동차운반선 20척에 하이나스 컨트롤을 적용하는 계약도 체결됐다. 해당 선박들은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실제 시스템 배치를 마친 사례도 있다. 아비커스는 2025년 7월 글로벌 선박 소유·운영사 시스팬(Seaspan)의 컨테이너선 25척에 '하이나스 내비게이션(HiNAS Navigation)'과 '하이나스 SVM', '하이나스 클라우드'의 배치를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시스템은 선박에 탑승한 항해사의 상황 인식과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육상에서도 운항 정보를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대글로비스, 한 척 실증에서 신조선 도입으로 확대
현대글로비스의 사례는 자율운항 기술이 실제 해운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글로비스는 2024년 자동차운반선 1척에 아비커스의 하이나스 컨트롤을 시범 적용했다. 아비커스에 따르면, 당시 실증에서는 최대 3.9%의 연료 절감 효과가 확인됐다. 이는 특정 선박과 운항 조건에서 측정한 최대치로, 모든 선박에서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대글로비스는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2025년 운항 중인 선박 7척으로 적용 범위를 넓혔다. 이어 2026년 9월에는 새로 건조하는 자동차운반선 10척에 하이나스 컨트롤을 추가 공급받기로 했다.
신규 계약 대상은 1만800CEU급 자동차운반선으로, 일부는 이미 인도됐으며 나머지는 2028년까지 인도될 예정이다. 아비커스는 해당 선박에 하이나스 컨트롤과 함께 주변 상황을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서라운드뷰 모니터링(SVM) 시스템도 공급한다.
삼성중공업, 태평양 횡단 실증…육상 원격운용 기술도 개발
자율운항 기술의 발전은 선박 내부의 자동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육상에서 선박의 상태를 확인하고 운항을 지원하는 원격운용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25년 대만 해운사 에버그린의 1만5000TEU급 컨테이너선에 자체 개발한 자율운항시스템 'SAS(Samsung Autonomous Ship)'를 탑재해 태평양 횡단 실증을 진행했다.
미국 오클랜드에서 대만 가오슝까지 약 1만km 구간을 항해하며 AI 기반 항해 최적화와 자동 제어 기능을 검증했다.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당시 SAS는 기상 상황을 주기적으로 분석해 최적 운항을 안내하고, 실제 선박의 운항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대만 타이베이의 에버그린 본사에 '삼성원격운용센터(SROC)'를 개소했다. 이곳에서는 선박의 운항 정보와 주요 장비 상태를 육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박에 탑승하지 않은 인력도 장비 상태를 파악하고 점검과 유지보수를 지원할 수 있도록 마련한 시설이다. 이러한 원격운용 기술은 육상에서 선박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비상 상황에 대응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AI가 항로를 조절해도 선장은 필요…자율운항과 무인운항의 차이
자율운항 기술이 실제 선박에 도입되고 있지만 AI가 항해를 돕는다는 사실만으로 선장이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다.
현재 상용화가 진행되는 자율운항 솔루션은 항해사의 판단을 지원하거나, 정해진 조건에서 선박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자동차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처럼 일부 조작을 자동화하더라도 사람이 운항을 감독하고 필요한 상황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자율운항과 무인운항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자율운항은 시스템이 운항에 필요한 기능을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반면 무인운항은 선박에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운용 형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선원이 탑승한 선박도 자율운항 기술을 활용할 수 있으며, 선원이 없는 선박이라도 육상에서 사람이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선박(MASS)을 사람의 개입 없이 다양한 수준에서 독립적으로 운항할 수 있는 선박으로 정의한다. 다만 자동화 기능을 탑재했다고 해서 곧바로 MASS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IMO의 MASS Code는 자율·원격운항 기능에 대한 별도의 승인 절차와 MASS 안전증서 체계를 제시하고 있지만, 현재는 비강제 규범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IMO는 자율운항선박에서도 선장이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선장이 반드시 선박에 탑승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자동화 수준이 높아지더라도 운항 책임과 감독 체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대형 상선에 도입되는 기술은 사람이 운항을 감독하는 방식이 중심이다. 주변 선박을 인식하고 항로를 조정하는 기능이 상용화됐더라도 선원의 개입 없이 모든 상황에 대응하는 완전자율운항이 실현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완전자율운항의 핵심은 데이터…정부도 AI 학습 기반 구축
자율운항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려면 다양한 해상 상황에서 확보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선박은 날씨가 좋고 주변에 다른 선박이 거의 없는 해역뿐 아니라 안개가 짙거나 선박이 밀집한 항만에서도 운항해야 한다. 다른 선박의 움직임을 잘못 예측하거나, 장애물을 제때 인식하지 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AI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려면, 실제 운항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례를 학습하고, 개발한 기능이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반복해서 검증해야 한다. 특히 드물게 발생하는 위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데이터의 양뿐만 아니라 다양성과 정확성도 중요하다. 정부가 자율운항선박용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나선 배경이다.
산업통상부와 해양수산부는 2026년 5월 '자율운항선박 AI 데이터플랫폼 사업'을 출범했다. 발표된 사업계획에 따르면 2026년부터 2029년까지 총 346억600만원을 투입해 자율운항 AI 개발에 필요한 실제 운항 데이터를 수집하고 표준화할 계획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데이터 수집 대상은 항해·조종, 엔진·기관, 해상교통, 기상 등 8개 핵심 분야의 100여 종이다. 이를 바탕으로 충돌 회피와 항로 최적화, 선박 설비의 고장 예측 등에 활용할 AI 모델 개발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데이터플랫폼은 개별 기업이 확보한 운항 데이터를 넘어 다양한 환경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데이터가 축적되는 것만으로 AI의 안전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수집한 정보의 품질을 관리하고 실제 운항 환경에서 성능을 검증하는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국제 안전기준 마련…완전자율운항까지 남은 과제
기술이 실제 해운 현장에 적용되면서 국제적인 안전기준도 마련되기 시작했다.
IMO는 2026년 5월 자율운항선박의 안전을 위한 국제규범인 'MASS Code'를 채택했다. 같은 해 7월 1일부터 시행된 이 규범은 자율운항선박의 설계와 승인, 운항뿐 아니라 통신과 사이버보안, 육상 원격운용센터 등에 관한 안전요건을 다룬다.
다만 현재 MASS Code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비강제 규범이다. 회원국이 이를 적용하며 경험을 축적하고, 향후 의무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단계다. IMO는 2030년 7월까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MASS Code를 채택하고, 2032년 1월 발효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완전자율운항이 보편화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통신이 끊겼을 때 선박이 어떻게 대응할지, 복잡한 항만 환경에서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을지, 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주체가 책임을 질지 등이 대표적이다. AI 시스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나 장비 고장에 대비한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특정 항로에서 자율운항에 성공한 사례와 다양한 해역에서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능력은 구분해야 한다. 실제 상용화 범위가 넓어질수록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이미 실증 단계를 넘어 대형 상선과 레저 보트, 소형선박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AI가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선박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능도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선원의 개입 없이 모든 운항 상황을 처리하는 완전자율운항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단계가 남아 있다. 앞으로 실제 운항 데이터의 축적과 기술 검증, 국제 안전기준의 정비가 자율운항선박의 상용화 범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