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윈, 가상현실 및 주행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과거 4~5년이 필요했던 신차 개발 기간을 평균 2년 이내로 줄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기앙쿠르의 르노 테크노센터는 겉으로 내부 규모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외부 시선으로부터 신차와 프로토타입을 보호하기 위해 건물과 수로, 출입구를 성처럼 설계했기 때문이다.
최근 방문한 테크노센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거대한 시설보다 신차를 개발하는 방식이었다. 르노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품질, 구매 및 시제품 제작 조직을 한곳에 모으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윈, 주행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신차 개발 기간을 평균 2년 이내로 줄이고 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테크노센터 건립 구상은 1980년대 일본 자동차 업체의 유럽 진출에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 업체들은 유럽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차량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유럽 제조사보다 짧은 기간에 신차를 개발했다.
르노 역시 대응에 나섰다. 당시 파리 일대 약 40개 사업장에 흩어져 있던 차량 개발 인력을 하나의 공간에 모아 비용과 의사결정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1989년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1991년 착공한 테크노센터는 1998년 공식 개관했다.
1998년 설립된 르노 테크노센터는 150헥타르 규모의 부지와 42만 5000㎡의 건물 면적을 갖춘 유럽 최대 수준의 자동차 연구개발 거점이다(르노)
현장 관계자는 "하나의 차량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조직을 한곳에 모아 비용과 개발 기간을 줄이는 것이 핵심 구상이었다"며 "이후 신차 개발 기간은 약 40개월에서 36개월, 다시 24개월 수준으로 단축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테크노센터는 150헥타르 부지와 42만 5000㎡ 규모의 건물에 67개 국적의 임직원 약 9100명이 근무하는 르노그룹의 핵심 연구개발 거점이다. 르노와 다치아, 알핀의 디자인부터 엔지니어링, 품질, 생산 준비 및 프로토타입 검증까지 담당한다.
차량 개발 과정에 맞춰 건물을 구분한 점도 특징이다. 초기 디자인과 시장 조사, 상품 기획은 '아방세'에서 시작된다. 디자인과 연구, 상품 조직이 함께 차량의 콘셉트를 결정하면 프로젝트는 엔지니어링 중심의 '라뤼쉐'로 이동한다.
라뤼쉐에서는 프로젝트 책임자와 엔지니어, 구매, 품질 및 생산기획 담당자가 차종별 조직을 구성한다. 기술 전문가와 프로젝트팀이 가까운 공간에서 근무하면서 문제 발생 시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테크노센터에 설치된 초대형 주행 시뮬레이터 'ROADS'는 르노의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개발 마지막 단계는 소규모 공장 역할을 하는 프로토타입 제작센터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최초의 실물 시험차를 제작하고 조립 가능성과 제조 공정을 검증한다. 해외 공장 직원들이 신차 양산 기술을 익히는 교육 거점으로도 활용된다.
하지만 실제 차량을 만들기 전 상당수 개발 작업은 이미 디지털 환경에서 마무리된다. 테크노센터의 대형 실물 크기 디지털 스크린에서는 차량을 회전하거나 단면을 잘라 내부 구조를 확인하고, 도어와 적재공간 등 세부 요소를 실제 크기로 검토할 수 있다.
르노는 차체 구조와 전장 시스템, 공기역학 및 주행 데이터를 가상 공간에 구현한 디지털 트윈도 활용한다. 프로젝트의 주요 특성을 확정하는 '콘셉트 프리즈' 단계에서는 실물 프로토타입 제작 전 개발 내용의 약 90%가 결정된다.
초대형 주행 시뮬레이터 'ROADS'는 디지털 차량을 실제 운전 감각으로 연결한다. 7m 높이 돔 안에 실물 형태의 조종석을 설치하고 360도 영상과 6축 모션 시스템을 통해 가속과 제동, 코너링 및 노면 진동을 구현한다.
르노가 추진하는 '퓨처레디' 전략은 앞으로 출시할 모든 차량을 2년 이내에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전체 무게가 약 90톤에 이르는 ROADS는 각 방향으로 최대 1G의 가속도를 재현한다. 타이어와 차체 움직임,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을 가상 환경에서 반복 검증해 실물 시제품 제작 횟수와 시험 기간을 줄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이 실차 시험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 오류와 설계 문제를 가상 환경에서 최대한 제거한 뒤 실제 차량을 통해 승차감과 제동 반응 등 사람이 느끼는 부분을 최종 조율한다. 시뮬레이션과 실차 시험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테크노센터의 설립 배경이 일본 업체와의 개발 속도 경쟁이었다면 현재의 상대는 중국 자동차 업체다. 중국 업체들이 AI와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약 2년 만에 신차를 출시하면서 유럽 제조사의 기존 4~5년 개발 체계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반 세갈 르노 브랜드 글로벌 영업·운영 총괄 수석부사장도 파리모터쇼에서 중국 업체의 기술과 개발 방식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르노는 중국 개발 조직과 협력한 신형 '트윙고'의 개발을 2년 미만에 완료했으며 관련 방식을 다른 차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르노는 '퓨처레디' 전략에 따라 앞으로 출시할 모든 차량의 개발 기간을 2년 이내로 줄이고, AI와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2030년까지 생산에 필요한 부품 수도 30% 감축한다는 목표다(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르노는 '퓨처레디' 전략에 따라 앞으로 출시할 모든 차량의 개발 기간을 2년 이내로 줄이고, AI와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2030년까지 생산에 필요한 부품 수도 30% 감축한다는 목표다.
1980년대 일본 업체의 공세는 흩어져 있던 르노의 개발 조직을 테크노센터로 모으는 계기가 됐다. 약 40년이 지난 현재 중국 업체가 다시 높인 개발 속도는 이 거대한 연구소를 AI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디지털 개발 거점으로 바꾸고 있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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