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의 활기와 나카메구로의 감각적인 분위기 사이, 조금 더 차분한 도쿄를 만나고 싶다면 에비스(EBISU)가 있다. 오래된 맥주의 역사부터 사진미술관, 나폴리 피자와 클래식 호텔까지. 유명 관광지를 격파하듯 도는 대신 천천히 걷고 먹으며 하루를 보내기 좋은 동네다.
에비스는 어디?
시부야에서 JR 야마노테선으로 단 한 정거장. 에비스(恵比寿)를 이해하는 가장 재미있는 키워드는 의외로 ‘맥주’다. 현재의 에비스 일대에는 1887년 맥주 공장이 들어섰고, 1890년 ‘에비스 맥주’가 탄생했다.
이후 맥주를 출하하기 위한 전용 화물역 ‘에비스 정차장’이 만들어졌고, 그 이름이 역명으로 자리 잡은 뒤 1928년에는 정식 지명에도 사용됐다. 보통 지역 이름을 딴 상품이 만들어지지만, 에비스는 반대로 맥주 이름이 동네 이름이 된 드문 사례다.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가 들어서 있고, 맥주의 역사는 여전히 동네 곳곳에 남아 있다.
■에비스를 압축해 놓은 곳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에비스를 처음 찾았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곳은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다. 1994년 문을 연 약 8만3,000㎡ 규모의 복합시설로, 오피스와 호텔은 물론 레스토랑, 쇼핑, 영화와 미술관까지 한데 모여 있다.
중심의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타워 38~39층에는 ‘TOP of YEBISU’ 레스토랑가가 있고, 38층 SKY LOUNGE에서는 도쿄타워와 레인보우브리지 방향의 전망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에비스라는 동네의 출발점인 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YEBISU BREWERY TOKYO에는 브랜드 역사를 보여주는 뮤지엄과 실제 양조 설비, 갓 만든 맥주를 맛보는 탭룸이 함께 있다. 과거 에비스 공장에서 사용했던 효모를 되살려 만든 이곳 한정 ‘에비스 인피니티’도 준비돼 있다.
쇼핑은 일상적인 장보기부터 꽤 고급스러운 식재료 쇼핑까지 폭이 넓다. 센터 플라자 지하 2층의 센트럴 스퀘어는 일본 슈퍼마켓 라이프(LIFE)가 ‘Central Square Life’를 운영하며 일반 식료품과 즉석식품은 물론 자연과 건강 지향 PB인 ‘BIO-RAL’, 프리미엄 라인까지 갖췄다. 바로 옆에는 수입식품과 엄선한 식재료에 강한 메이지야(Meidi-ya) 에비스 스토어도 있어 일본 슈퍼마켓 구경을 좋아한다면 꽤 재미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광장 끝에서 시선을 잡아 끄는 프랑스풍 성채 같은 건물은 샤토 레스토랑 조엘 로부숑이다. 내부에는 가스트로노미 조엘 로부숑과 라 타블 드 조엘 로부숑 등이 자리하며,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의 유럽풍 풍경을 완성하는 상징적인 건축물 역할을 한다.
조금 옆길로 빠지면 분위기는 또 달라진다. BRICK END(브릭 엔드)는 붉은 벽돌을 따라 작은 가게들이 이어지는 아담한 공간이다.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의 넓은 광장과 웅장한 건물 사이에서 잠시 숨은 골목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준다.
카레 전문점부터 사케 바와 와인 바, 음악을 들으며 술을 즐기는 뮤직 바까지 개성 있는 5곳이 모여 있다. 특히,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면 붉은 벽돌과 작은 간판이 어우러져 낮보다 한층 낭만적인 분위기가 난다.
■사진으로 보는 지금의 세계
도쿄도 사진미술관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안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만드는 공간이 도쿄도 사진미술관(TOP Museum)이다. 1995년 설립된 사진 & 영상 전문 미술관으로, 일본과 해외의 사진 작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하며 소장품전과 국내외 작가 기획전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사진을 좋아한다면 에비스 여행의 목적지로 삼아도 충분한 곳이다.
2026년 9월 17일 현재 3층에서는 음식을 매개로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소장품전 ‘TOP Collection: Tomorrow’s Table(明日の食卓)’, 2층에서는 일본의 선구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이데미쓰 마코를 다룬 ‘여성의 작품―한 영상작가의 자전(おんなのさくひん)’이 9월 21일까지 열린다. 지하 1층에서는 ‘복제되는 감성―모리야마 다이도(複製される感性-森山大道)’가 10월 18일까지 이어진다.
특히 모리야마 다이도 전시는 조금 더 눈여겨볼 만하다. 거친 입자와 강한 콘트라스트, 흔들리고 초점이 벗어난 듯한 이른바 ‘아레·부레·보케’의 사진으로 일본 사진계에 큰 영향을 준 모리야마는 거리의 순간을 본능적으로 포착해 온 일본 대표 사진가다.
이번 전시는 기존 회고전과 달리 나라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도쿄도 사진미술관 소장품에서 직접 작품을 고르고 재구성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약 140점의 사진을 통해 젊은 세대가 모리야마의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고,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진이 새로운 표현으로 확장되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실물 작품과 디지털 아카이브를 결합했으며, 온라인에서는 3D 도시 모델 속에서 모리야마가 사진을 찍었던 장소와 현재의 도시 풍경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도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나폴리에서 건너온 진짜 마르게리타
L'Antica Pizzeria da Michele Ebisu
에비스에서 한 끼를 고른다면 나폴리 피자 한 판도 좋은 선택이다. L'Antica Pizzeria da Michele는 1870년 나폴리에서 시작된 피자 전문점이다. 콘두로 가문이 5대에 걸쳐 전통적인 피자 제조법을 이어왔으며, 나폴리 본점은 1930년 지금의 비아 체사레 세르살레로 이전한 뒤 오랫동안 ‘피자의 성지’로 불려왔다. 에비스점은 2012년 문을 연 다 미켈레의 일본 1호점이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피자만 먹어도 되지만, 전채 모둠, 카르파초(유럽식 회무침), 이탈리안 햄 등과 음료를 즐기는 것이 좋다. 이후에 맛볼 메뉴는 역시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 나폴리 본점이 오랫동안 이 두 종류를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온 만큼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에서도 본고장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밀가루와 토마토, 치즈, 오일은 물론 피자 화덕까지 나폴리에서 들여오며, 피자는 지름 약 35cm로 큼직하게 나온다. 마르게리타는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의 익숙한 조합이지만 얇고 부드러운 도우가 일반 피자와는 확실히 다른 맛을 선보인다.
■에비스에서 시작하는 도쿄 여행
The Westin Tokyo
하루 구경으로 끝내기 아쉽다면 아예 에비스에 숙소를 잡는 방법도 있다. 웨스틴 도쿄(The Westin Tokyo)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한쪽에 자리한 도쿄의 클래식 호텔이다. 시부야까지 JR로 한 정거장이면서도 호텔 주변은 상대적으로 차분해, 낮에는 도쿄 곳곳을 여행하고 저녁에는 에비스로 돌아와 쉬는 일정과 잘 맞는다.
객실에서는 도쿄타워를 비롯한 도심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전 객실이 2024년 전면 리뉴얼됐다. 디자인은 웨스틴 도쿄가 오래 이어온 유럽풍의 정통적인 분위기에 에비스의 녹지와 자연에서 얻은 요소를 현대적으로 더했다.
아침도 이 호텔에 머물 이유 중 하나다. 조식 뷔페가 열리는 1층 더 테라스(The Terrace)는 에비스의 녹지와 수로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으로, 큰 창 너머의 웨스틴 가든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정원과 초록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을 수 있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