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모터스(GM)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연례 기술 행사 ‘GM 포워드’를 열고 4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공개했다. 중앙 집중형 컴퓨팅 아키텍처와 자체 AI 비서 ‘온스타 AI’도 함께 선보였다.
개별 기술은 이미 일부 공개된 내용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배터리 원가 절감부터 차량 소프트웨어, AI까지 GM의 차세대 전략을 하나의 그림으로 보여줬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개발 방식을 바꾸고 테슬라와 중국 브랜드, 포드에 맞서겠다는 방향도 드러났다.
새 플랫폼은 각형 LMR(리튬망간리치) 배터리 셀을 차체 구조에 통합한다. GM은 LMR이 하이니켈 배터리 수준의 에너지 밀도를 확보하면서 가격은 LFP(리튬인산철)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잭 워커 GM 글로벌 EV 아키텍처 총괄은 전기차 원가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배터리 셀을 꼽았다. 마크 루스 GM 사장도 4세대 플랫폼을 LMR 전용으로 개발한다고 밝혔다.
GM이 제시한 개선 목표는 차량 중량 15% 감소, 효율 20% 향상이다. 같은 주행거리에 필요한 배터리 용량은 20% 줄이고 공력 성능은 25% 개선한다. 모터와 전력전자 부품 수도 40% 줄일 계획이다.
LMR 셀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사 얼티엄셀즈가 미국 테네시주 스프링힐 공장에서 생산한다. 첫 탑재 차량은 2028년 출시 예정이다. 판매량이 많은 크로스오버를 우선 공략하며, 현행 캐딜락 리릭과 쉐보레 이쿼녹스 EV의 후속 모델이 후보로 거론된다.
기존 얼티엄 플랫폼이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고가 대형 전기차에 집중했다면, 4세대는 배터리 용량을 줄이면서 효율과 주행거리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배터리를 덜 쓰면 차량 무게와 원가를 함께 낮출 수 있다.
다만 LMR은 수명과 충·방전 과정에서의 전압 저하가 약점으로 지적돼왔다. GM도 필요한 데이터의 60~70%를 확보한 시점에서 개발 결정을 내렸다고 인정했다. 약 30만 개 셀 설계를 가상 검증했지만, 실제 도로에서의 장기 내구성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GM의 전략은 포드의 유니버설 EV 플랫폼(UEV)과 목표가 비슷하다. 두 회사 모두 차량을 가볍게 만들고 효율을 높여 전기차 가격을 낮추려 한다. 차이는 배터리 선택과 제조 공정에 있다.
포드는 처음부터 LFP 배터리를 기준으로 UEV를 설계했다. 대형 일체형 알루미늄 주조로 부품 수를 20% 줄이고, 12V 대신 48V 전장 시스템과 존 컨트롤러를 도입해 차체와 조립 공정의 효율을 높인다.
UEV 첫 모델인 중형 전기 픽업 ‘피섬’은 시작 가격이 2만8350달러다. 2027년 켄터키주 루이빌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가격과 생산 일정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포드가 한발 앞서 있다.
GM은 상대적으로 검증이 덜 된 LMR의 가능성에 투자했다. 목표한 성능과 수명을 확보한다면 LFP와 비슷한 원가로 더 긴 주행거리를 구현할 수 있다. 크로스오버 시장에서 상품성을 높일 기회다.
중국 배터리 공급망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다. 중국 업체들은 저렴한 LFP 배터리의 생산과 공급에서 강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GM의 LMR 전략은 중국산 LFP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원가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을 함께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4세대 전기차에는 중앙 집중형 전장 아키텍처가 적용된다. 핵심은 중앙 컴퓨팅 유닛(CCU)이다. 기존에 개별 제어기가 담당하던 인지, 파워트레인, 능동 안전, 섀시 제어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다.
GM은 이를 통해 배선 길이를 30% 줄이고 연산 능력을 40배 높일 계획이다. 셀룰러 통신 속도도 50% 개선한다.
새 아키텍처는 2028년형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에 처음 적용한 뒤 대형 SUV와 픽업트럭, 3열 크로스오버로 확대한다. 전기차뿐 아니라 내연기관차에도 적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테슬라 출신인 스털링 앤더슨 GM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새 하드웨어를 탑재한 시험차가 이미 주행 중이라고 밝혔다. 자율주행과 차내 AI 서비스를 구현하려면 충분한 연산 능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GM은 에스컬레이드 IQ에 내년 고속도로 자율주행 기능을 도입할 계획이다.
중앙 집중형 구조에서 GM은 선도 업체보다 늦게 움직이고 있다. 테슬라는 일찍부터 관련 구조를 적용했고, 리비안도 2세대 R1에 존 아키텍처를 도입해 제어기 수를 줄였다.
현대차그룹 역시 고성능 차량 컴퓨터(HPVC)와 존 컨트롤러 구조를 준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브랜드 ‘플레오스’를 중심으로 관련 기술을 통합하는 전략이다.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레오스 커넥트’는 지난 5월 그랜저에 처음 적용됐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약 2000만 대에 관련 시스템을 적용한다는 목표다.
GM의 강점은 생산 규모다. 전기차는 물론 픽업트럭과 대형 SUV에도 같은 구조를 적용해 기술 투자 효과를 여러 차종에서 확보할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다.
GM은 지난해 자체 AI 비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온스타 AI’라는 이름과 적용 일정을 공개했다. 수개월 내 2027년형 캐딜락 리릭에 OTA 방식으로 먼저 적용하고, 이후 다른 차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GM 신차에는 올해 초부터 구글 제미나이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앤더슨 CPO는 온스타 AI가 차량과의 상호작용에 더 특화돼 있다고 강조했다. 범용 대규모 언어 모델(LLM)만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기능을 차량과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GM이 제시한 활용 사례는 운전자의 일정 관리까지 확장된다. 아이의 축구 연습 픽업에 늦을 상황이 생기면 온스타 AI가 지각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배우자에게 경기장 경로를 안내하거나 운전자에게 장보기를 제안한다.
내년에는 새 온스타 앱을 출시해 브랜드별 앱을 대체할 계획이다. 차량 카메라를 활용한 감시 기능도 추가한다. 테슬라 센트리 모드와 유사한 방식이다.
차량용 AI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테슬라는 그록을 도입했고, 리비안은 자체 AI 서비스인 ‘리비안 어시스턴트’를 선보였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도 차량용 음성 비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온스타 AI가 넘어야 할 과제는 신뢰다. 차량 정보를 안내하는 챗봇과 가족의 위치, 일정, 이동 경로까지 관리하는 비서는 책임의 범위가 다르다. GM은 과거 운전 데이터 공유 문제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조치를 받은 이력이 있다. AI 기능을 앞세우기 전에 데이터 수집과 활용, 개인정보 보호 원칙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에서도 GM과 포드의 차이가 드러난다. GM은 전기차에서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제외하고 자체 소프트웨어 환경을 강화한다. 반면 포드 피섬은 두 서비스를 기본 지원한다. GM은 자체 생태계에, 포드는 기존 모바일 환경과의 연결성에 무게를 둔 셈이다.
GM은 AI 도구와 동시 개발 방식을 활용해 신차 개발 기간을 통상 4~5년에서 2년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LMR 배터리 팩은 초기 콘셉트에서 정식 승인까지 한 달이 걸렸다고 밝혔다.
2년이라는 개발 주기는 중국 업체들이 이미 보여준 속도다. GM이 목표를 달성해도 개발 속도에서 중국 업체들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는 셈이다. 관건은 개발 기간 단축을 품질과 가격 경쟁력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수년째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통합과 OTA 업데이트에서는 신생 전기차 업체들이 앞선 부분이 많다. GM 역시 쉐보레 블레이저 EV의 초기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판매를 중단한 경험이 있다. 개발 속도와 함께 제품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GM 포워드 2026은 배터리 원가 절감, 차량 구조의 효율화, 소프트웨어와 AI 중심의 개발 전략을 하나로 연결해 보여줬다. 방향은 분명하지만 LMR의 실제 내구성과 중앙 컴퓨팅 아키텍처의 적용 범위, 온스타 AI의 완성도는 아직 검증이 필요하다.
GM의 계획이 경쟁력으로 이어질지는 2028년부터 확인할 수 있다. 발표된 수치가 양산차의 가격과 효율, 품질로 이어져야 시장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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