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여신전생에 학원물이라는 매력적인 요소를 추가한 페르소나 시리즈는 원작이 가진 매니악 함을 부드럽게 중화시키면서도 더욱 다채로운 플레이를 즐길 수 있어 많은 게이머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 비록 한 편에서는 ‘진 여신전생 시리즈답지 못하다’는 말도 듣고 있지만, 색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나 보다 대중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이 상당하며, 그 덕분에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에서 출발했음에도 지금은 당당히 독립된 시리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의 페르소나를 만나다 |
하지만 페르소나 시리즈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국내의 경우 PS2로 제작된 3편부터 정식 발매가 이루어졌고, 얼마 전 발매된 4편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수준의 한글화를 거쳤기 때문에 이러한 최근의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지만, PS로 발매된 페르소나 1, 2편의 경우 하드웨어의 차이만큼이나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어찌 보면 개념만 비슷할 뿐 서로 다른 별개의 시리즈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 PS2 버전의 페르소나는 정감 어리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부드러운 인상의 캐릭터와 비주얼이 특징이지만, 과거의 페르소나는 그보다는 초창기 진 여신전생의 느낌과 흡사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페르소나 시리즈 자체가 진 여신전생을 ‘완화시킨’ 형태의 게임인 만큼 차별적인 부분은 존재하지만, ‘페르소나다운’ 게임이라기 보다는 진 여신전생의 틀에 학원물을 적당히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 만으로도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최근의 페르소나 시리즈만을 경험한 게이머에게 익숙한 커뮤 시스템이나 준 연애물의 느낌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고 게임 진행 방식도 많이 달랐다. 기종의 차이만큼 비주얼 퀄리티 또한 좋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정식 발매작만을 플레이 해 본 사람이라면 어색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플레이 하는 느낌은 제법 나쁘지 않다. 비주얼에도 아쉬운 모습이 느껴지고 시스템에도 부족한 부분이 존재하지만 완벽한 ‘학원 연애 악마 게임(?)’으로 변해버린 현재의 페르소나에 비해 진 여신전생 다운 모습이 남아 있기도 하고 게임 스타일이 다른 만큼 즐기는 느낌도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과거 여신이문록을 좋아했던 올드 게이머들에게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번 작품이 PS 시절의 1편을 리메이크 한 정도에 머무르고 있기는 해도, 이를 즐겼던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어느 정도의 메리트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여신이문록은 이런 게임이다 |
그렇다면 과연 이 게임은 최근의 시리즈와 비교해 얼마나 다른 것일까. 원작 자체가 1996년도에 발매된 만큼 제법 게임 경력이 오래 된 올드 게이머가 아닌 이상 이를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게임 자체에 대한 궁금증도 제법 있을 테고 말이다.
최근의 작품들이 어드벤처 형식에 RPG를 섞어 놓은 듯한 분위기라면 여신이문록은 순수한 RPG의 느낌이 강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리 저리 이동을 하면서 스토리를 진행시켜 나가는 전형적인 스타일. 물론 약간 독특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비 개념이 존재하는 등 다양한 부분에서 지금과는 다른 형태를 느낄 수 있다.
전투 역시 지금처럼 프레스 턴 형태의 액티브 한 배틀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SRPG 요소와 커맨드 배틀을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형태를 보여준다. 전열과 후열이 존재하고 사거리에 따라 공격 범위가 달라지며, 전투 자체도 인카운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이동 또한 1인칭 스타일을 사용해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그런가 하면 (최근의 페르소나 시리즈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진 여신전생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악마와의 대화 같은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어 확실히 진 여신전생 시즈에와 가깝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현재와 흡사한 시스템들도 있다.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악마 합체나 페르소나의 속성에 따른 각종 시스템들도 건재하고, 이골이나 벨벳 룸 같은 친숙한 요소들 또한 만날 수 있다.
비주얼에도 거리가 있고 시스템에도 제법 차이가 있다 보니 확실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여신이문록을 통해 지금의 페르소나를 떠올릴 만한 부분들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과도기 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만큼 자신만의 색깔이 엷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보기에도 그리 나쁘지 않은 퀄리티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PSP 버전에서 달라진 점 |
그렇다면 PSP 버전은 여신이문록 원작과 어떠한 점이 다를까. 제법 시간이 흐른 만큼 모든 요소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면 바로 게임의 로딩 타임. 로딩 시간이 대폭 감소해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해졌으며, 전투 자체의 스피드가 상승한 것은 물론이고 스킵을 통해 더욱 빠른 전투를 즐길 수 있다.
와이드 액정에 맞추어 게임 화면이 확대된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기존의 화면을 잡아 늘린 것이 아니라 화면 자체를 새로 구성했고, 게임에 삽입된 동영상도 어느 정도 ‘현대적인 스타일’로 수정이 이루어졌다(덕분에 동영상의 이미지와 일반 일러스트 컷 사이에 대단한 괴리감이 느껴진다). 여기에 새로운 동영상도 추가되었고, 원작에서 구별이 힘들었던 마을 맵 또한 보기 편한 형태로 변화되었다.
새로운 던전의 등장은 물론 게임 시작 시부터 난이도 선택이 가능해 자신의 실력에 맞는 난이도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노멀 선택 시 원작보다 조금 쉬운 수준이라고 생각된다)는 점 또한 반갑다. 중단 세이브 기능도 새로 추가되고 게임의 전반적인 밸런싱에도 수정이 이루어져 보다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던전에서의 이동 속도도 상당히 빨라져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큰 변화는 없지만 신경을 쓴 흔적은 제법 엿보인다. 반면 원작과 마찬가지로 대사에 음성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조금 실망스럽다. 또 BGM을 원곡이 아니라 최근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으로 어레인지 한 버전을 사용해 다소 분위기에 안 맞는다는 느낌도 주고 있고 말이다.
PS2 버전에 익숙한 게이머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기 위해 어레인지를 시도한 것은 좋지만 칙칙한 분위기에 경쾌한 스타일의 곡을 넣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라리 옵션에서 이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별 차이 없는 리메이크는 지겹다 |
PS 시절의 여신이문록을 기억하는 올드 게이머에게 과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직까지 이를 접해보지 못한 페르소나 팬들에게 시리즈의 원류에 해당하는 작품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볼 때나 가능한 말이고, 실제로는 최근의 페르소나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 아닐까 싶다. 상당한 차이가 느껴지는 비주얼에 시스템도 많이 다르다. 진 여신전생 시리즈 자체를 좋아하면서 페르소나도 좋아하는 게이머가 아니라면 실망할 만한 부분이 많다.
올드 게이머들 역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단 이 경우에는 비단 이 게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최근 물밀듯이 등장하고 있는 ‘리메이크 게임’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신경을 쓰기는 했찌만 만족스럽다고 말하기에는 일말의 부족함이 느껴지는, 그런 리메이크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명작을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비슷하거나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는 정도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게이머들에게 다시 한번 즐거움을 주고 싶다면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추가적인 즐길 거리를 대폭 늘린다던지, 비주얼을 보강하는 등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