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의 지옥에 내몰린 대한민국의 수많은 초등학생들에게 있어 한 모금의 미네랄워터와도 같은 게임이 있다. 성인들이 「리니지」, 「뮤」 등을 거쳐 최근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나 「아이온」 등등에 연착륙하는 동안, 7년이 넘도록 꾸준히 우리 어린이들의 지지를 받아온 세대를 아우르는 게임, 적어도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온라인RPG의 전설이라 일컬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걸작(?)의 반열의 게임, 바로 「메이플스토리」다.
「메이플스토리」하면 당연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바로 ‘초딩게임’이라는 비아냥. 「메이플스토리」 이야기만 나와도 유치하다며 호들갑을 떠는 이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호들갑의 대부분이 즐겨보지도 않은 채 내지르는 선입견에 가득 찬 감정의 배설일 뿐이라는 점. 이건 부당하다. 어떤 게임이든 간에, 정당한 평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즐겨봐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게임의 재미와 가치를 운운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언어도단이다.
그 동안 속된 말로 ‘쪽’이 팔린다는 이유로 「메이플스토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미뤄왔던 우리 성인들을 위해서인지 아닌지, 대한민국 1등 개발사 넥슨이 일 하나 제대로 저질렀다. 「메이플스토리」가 2010년 4월 드디어 닌텐도DS용으로 등장한 것. 자, 이제는 고레벨 어린이들에게 자존심 구겨가며 「메이플스토리」의 ABC를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 주변의 니가 애냐라는 비아냥이 두려워 「메이플스토리」를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말 그대로 정정당당하게 「메이플스토리DS」의 점수를 매겨보는 거다. 비난을 하더라도 제대로 알고 나서 비난을 하자. 그게 어른의 아동들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게임문화에 대한 예의다.
「메이플스토리DS」의 첫인상은 낯설지 않은, 오히려 뭔가 친숙한 느낌에 다름 아니다. 이는 「메이플스토리DS」가 대중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인지도만큼은 국산게임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메이플스토리」 브랜드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일 듯. 실제로, 「메이플스토리DS」의 등장캐릭터들과 몬스터들은 PC판 오리지널에서 고스란히 옮겨온 듯 하며 기본 게임 시스템, 레벨 구성 등 또한 오리지널과 상당히 흡사하다. 다만 멀티플레이의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철저한 싱글게임이라는 것이 도드라진 차이라면 차이. 와이파이를 지원하는 닌텐도DS의 특성상, 멀티플레이가 배제된 점은 일견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래픽과 사운드는 그리 돋보이는 편이 아니다. 아니, 좀 더 냉정히 말해 닌텐도DS의 성능을 감안하더라도 비교적 떨어지는 축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뭐, 오리지널 자체가 화려함이 장기인 게임은 아니지만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다. 그나마 오리지널의 느낌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휴대용기기로 재현해낸 점은 칭찬해줄 만하다. 오프닝과 게임 중간에 삽입된 동영상의 퀄리티 또한 휴대용임을 고려했을 때 꽤 훌륭한 수준. 다만 기술적인 퀄리티에 비해 내용의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처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게임은 전형적인 횡스크롤 형태의 액션RPG다. 과거 팔구십 년대에 유행하던 평면적인 화면에서의 점프와 칼부림액션의 조합형이다. 좋게 말해 레트로 스타일이고, 나쁘게 말해 너무나도 낡고 단조로운 시스템. 그나마 대쉬, 스킬, 콤보 및 연계기 등의 현대적인 조작요소들을 통해 자칫 지나치게 단조로워질 수 있는 플레이감을 피했다. 물론 이처럼 낡은 시스템을 채택한 이유는 「메이플스토리DS」의 주 타겟 대상이 저연령층이라는 점을 고려한, 일면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듯. 현대의 추세인 전후좌우의 입체적인 공간감 속에서 벌어지는 현란한 액션의 난이도는 분명 저연령층에게 있어 상당히 높은 진입장벽인 것이 사실이니까.
닌텐도DS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상단(일반 화면)과 하단(터치스크린)으로 구성된 더블스크린이다. 아쉽게도 「메이플스토리DS」는 닌텐도DS 특유의 더블스크린의 장점을 제대로 살려내지는 못했다. 일단 상단은 메인게임화면, 하단은 미니맵 및 스킬이라는 매우 형식적인 화면분할이 눈에 거슬린다. 그나마도 미니맵의 구조는 성의가 없고 목적지 등에 대한 안내는 매우 부실하다.
스킬 또한 현재 장착 중인 스킬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용도 이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터치 등의 대응을 통해 꽤 재미있는 스킬연계가 가능했을 것도 같은데 스킬은 물론 그 이외의 용도로서도 터치스크린이 거의 활용되지를 않는다. 기껏 스타트와 셀렉트 버튼을 터치스크린 내에 삽입한 정도로 구색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 수준. 이처럼 닌텐도DS의 더블스크린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성의 없는 유저인터페이스는 플랫폼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피할 수 없는 반증일 것이다.
「메이플스토리DS」에서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는 모두 네 종류(전사, 도적, 궁수, 마법사)다. 각 캐릭터 별로 공격패턴과 스킬 등이 제각각 다르다. 각각의 주인공마다 고유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으며, 캐릭터 4인 모두를 클리어해야만 게임의 모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메이플스토리DS」는 2회차, 3회차 플레이에서의 반복의 느낌이 매우 적다.
보통 국산 싱글RPG(국내 시장의 특수성상 대다수가 휴대폰용 RPG게임들이다)들은 플레이타임을 늘리기 위해 사냥과 아이템수집 등의 노가다성 요소들로 콘텐츠를 부풀리곤 한다. 반면 「메이플스토리DS」는 그런 억지스러운 요소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각 캐릭터 별로 제공된 시나리오를 착실히 플레이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플레이타임을 보장하고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많은 수의 국산 게임들이 그래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건 굉장한 미덕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형편 없는 수준의 시나리오 완성도. 캐릭터 성격 구축의 기본도 안된 들쭉날쭉한 등장인물들의 태도들과 그로 인해 비롯된 설득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중구난방식의 플롯전개가 플레이어의 감정이입은커녕, 지독한 짜증만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다. 냉정히 말해, 이 정도 수준의 시나리오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요모조모를 살펴 본 「메이플스토리DS」는 결코 훌륭한 게임이 아니다. 대다수의 요소들은 좋게 말해 평이한 수준이며 그 중 몇몇의 것들은 함량미달이라는 판단이 더 어울리기도 한다. 게다가 닌텐도DS라는 독창적인 플랫폼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은 솔직히 비난 받아 마땅하다. 사실 이런 수준의 게임에서 혁신적이고도 신선한 게임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그렇다면 「메이플스토리DS」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이나 갈취하는 삼류게임인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메이플스토리DS」는 전적으로 어린이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제작한 철저한 눈높이 게임이다. 게임의 전반적인 난이도는 비교적 수월하며 플레이어의 근성과 노력이 필요한 노가다의 요소는 최대한 배제했다.
초반의 상당히 친절한 튜토리얼은 나이 어린 유저들에 대한 자상한 배려. 귀엽고 깜찍한 스타일의 배경과 캐릭터 또한 어린이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게임상의 스토리라인은 솔직히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을 만큼 유치하고 수준이 낮지만, 적어도 어렵고 난해하지는 않은 점 정도는 인정해 줄만 하다.
그 외의 전반적인 게임 요소들 또한 뛰어나지는 않지만 무난하기는 하다. 이 정도면, 아이들의 열광을 이끌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자, 그럼 이것으로 「메이플스토리DS」는 코 묻은 돈이나 털어내는 삼류게임의 혐의를 벗어 던진 것일까. 그건 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이처럼 철저히 아동용 게임임을 내세우고 있는 「메이플스토리DS」,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노골적인 상술의 냄새다. 「메이플스토리DS」는 게임진행 내내 온라인용 「메이플스토리」를 위한 현금결제를 교묘하게 유도한다. 물론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쿠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뒤, 그것을 온라인 상에서 사용하려 했을 때 그제서야 현금결제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아,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게 아이들 데리고 무슨 짓인가. 선물이라는 달콤한 말로 사람을 현혹하는 얄팍한 상술이, 과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배워야 할 건전한 상도덕인 것인가. 나아가, 게임상에서조차 공정한 실력의 경쟁이 아닌, 돈에 의한 경쟁의 우위를 이렇듯 치졸하게 강요하는 것이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과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게임은 놀이다. 아무리 아동들을 대상으로 할지언정 놀이가 교육적이어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도덕적일 필요는 분명 있다. 왜냐는 바보 같은 질문에는 굳이 언급이 필요 없으리라. 그러므로, 묻겠다. 이른바 아동을 대상으로 한 도를 넘은 ‘현질’유도가 도덕적인가, 도덕적이지 못한가?
미디어잇 리뷰어/ 까치발 편집: 미디어잇 김형원 기자 akikim@it.co.kr 상품전문 뉴스 채널 <미디어잇(www.i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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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게임의 가면 속에 숨겨진 얄팍한 상술: '메이플스토리DS' 리뷰
2010.06.21. 1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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