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린데만의 신작을 본다. 아니, 여러 사정으로 최신작을 요즘 만나게 된 것이다. 예전에 800 시리즈 제품들은 여럿 접한 바 있으나, 그보다 더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로 나온 제품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음을 들어보면 확실한 진보가 느껴진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독일 뮌헨 인근의 크라일링이란 곳에 소재한 린데만은, 우리에게 소스기 메이커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그 본령이 앰프에 있다. 1993년도에 발표한 처녀작 AMP1이 큰 히트를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2, 3, 4 하는 식으로 업버전 작들이 나왔다. 동시에 Box 1이라는 스피커를 발매한 바. 이 또한 큰 주목을 받았다. 정작 소스기 제조는 1999년에 와서야 이뤄진다. 그 처녀작이 바로 CD1이다.
한데 이 CD1이 높은 평가를 받자, 린데만은 2002년도에 과감하게 SACD 플레이어까지 발표한다. D680이란 모델이다. 이것은 독일에서 처음 발표된 SACD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이 모델은 이후 2004년도에 820으로 진화하면서 본격적인 디지털 소스기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 후, USB-DDC라는 신개념의 컨셉을 내놓으면, 이 분야에 선두 주자로 달리다가, 이번에 뮤직 북 시리즈로 찾아오게 된 것이다.
사실 린데만은 앰프, 스피커뿐 아니라 소스기까지 커버하기 때문에 제품 종수가 많고, 그 진행 과정이 좀 복잡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만들면서 얻은 노하우는 무시할 수 없으니,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정교한 계측 기술의 개발이다. 아무튼 린데만이 갖고 있는 독자적인 측정에 의해 제품의 가능성과 가치가 파악되고, 그것은 정밀한 파인 튜닝으로 연결된다. 여러 컴포넌트를 계측하면서 얻어진 지식은 린데만의 엄청난 자산인 셈이다.
둘째는 다양한 시너지의 추구다. 이를테면 케이블이나 스피커의 위치 선정, 전원 장치의 도입 등, 시스템 컴포넌트에 여러 액세서리나 고안이 투입되면서, 전체 퀄리티를 향상하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이것은 종합 오디오 메이커만이 가능한 경험치가 아닐까 싶다. 이런 여러 노하우가 이 작은 몸체의 제품에 톡톡히 발휘되었음은 물론이다.
현행 뮤직 북의 라인 업은 크게 USB-DAC, 네트웍 플레이어 그리고 파워 앰프로 나뉜다. 여기서 앞선 두 개의 카테고리는 기본적으로 소스기에다 프리앰프가 더한 컨셉인 만큼, 이렇게 세 번째 카테고리의 별도의 파워를 물리면 완벽한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범용성과 편의성을 중요시하는 독일 메이커들의 전통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에 만난 제품은 10과 15라는 모델로, USB-DAC에 속한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USB-DDC의 연장선상에 있는 제품이라 파악할 듯싶다. 그러나 단순한 답습이 아니라, 보다 더 기술적인 개발과 음질상의 메리트가 더해져,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퀄리티를 실현시킨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럼 10과 15의 차이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한다면, CD 드라이브가 있느냐 없느냐다. 10에는 없고, 15에는 있는 것이다. 그 나머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이번에 집중적으로 모니터한 15의 기술적 내용이나 시청 소감은 대부분 10에도 유효하다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또 이렇게 제품군을 나눈 것은 여러모로 현명하다고 본다. 요즘 상황에 비춰보면, CD를 “디지털 바이널”이라 부를 만큼 희귀종이 되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스트리밍 뮤직쪽으로 완전히 전환한 분들에게 CD 드라이브를 억지로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게다가 가격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많은 CD를 소장하고 있기에 15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선 10이나 15나 그 핵심에 있어서는 DAC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제일 중요하리라 본다. 그런데 그 내용이 역시 합리적이고, 충분히 납득이 간다. 사실 요즘 디지털 소스를 보면, 전통적인 CD 포맷뿐 아니라 고음질 파일, MP3, DSD 파일 등, 거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여기서 린데만은 소스 자체를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눈다.
1) CD를 기준으로 삼거나 혹은 그 이하.
2) 88.2KHz 내지는 그 이상의 고해상도 파일
3) DSD 파일.
우선 1항부터 설명하면, 일차로 24bit/88.2KHz로 업스케일링부터 한다. 이렇게 양질의 스펙을 갖춰놓고, 프로세싱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럼 1항의 파일들은 2항에 해당하는 내용을 이룩한 가운데, 본격적인 컨버팅이 이뤄진다. 사실 95%에 달하는 디지털 파일이 1항에 해당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일단 2의 스펙으로 이뤄진 파일을 갖고 컨버팅이 이뤄진다. 우선 시그널 프로세싱에 동원된 것은 애너그램의 소닉2 DSP 시스템이다. 여기서 과도 특성을 일정하게 만들고, 위상에 대한 부분도 정교하게 컨트롤한다. 특히 지터 관리에 신경써서, 0.25 피코 세컨드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트린다. 당연히 수준급의 마스터 클락이 동원되었다.
이후 영국의 울프슨에서 만든 WM8742 칩을 사용해서 컨버팅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듀얼 모노럴 구성으로 진행되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여기서 얻어진 아날로그 신호는 풀 밸런스 회로로 만들어진 아날로그 아웃풋단을 거쳐 프리앰프로 연결된다. 그 흐름이 무척 자연스럽고 일목요연한 것이다.
한편 3항의 경우, 오로지 DSD 파일을 보존해서 컨버팅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DSD 파일을 작업할 땐 아예 PCM쪽 컨버터를 꺼버리는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DSD를 PCM 신호로 변환해서 출력하는, 거의 무늬만 DSD 파일을 읽는 내용임을 생각하면, 이 부분 또한 무척 획기적이다. 즉, PCM과 DSD에 별도의 컨버터를 동원하고 있다고 보면 좋은 것이다.
처음 린데만을 소개할 때, 앰프 메이커로 널리 알려졌다고 쓴 바가 있다. 바로 그런 내공이 이렇게 아날로그 아웃풋된 신호를 정리하는 프리앰프에 톡톡히 발휘되고 있다. 그래서 디지털 소스기임에도 불구하고, 2개의 아날로그 입력단이 제공되는 점은 매우 독특하다. 이를테면 포노나 테잎 등을 들을 때 유용한 것이다. 한편 아날로그 출력도 2개가 제공되는데, 동등한 게인을 갖는다. 그래서 하나는 파워 앰프에 또 하나는 서브우퍼에 연결하는 식의 편의성이 확보된다.
한편 CD 드라이브에 관한 것인데, 그 매커니즘은 슬롯 인 방식의 티악제가 쓰였다. 수준급의 모델을 사용해서 내구성을 확보한 점은 15의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거기에 클래스 A 방식으로 설계된 해드폰 앰프까지 제공되니, 그야말로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다.
사실 이 밖에도 쓸 말이 많지만, 지면 관계상 이쯤 하기로 하자. 이 작은 몸체에 그렇게 엄청난 테크놀로지를 심은 것은, 어쨌든 그저 놀랍기만 하고, 음을 들어보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오디오넷의 SAM G2 인티 앰프에 KEF R-300 스피커를 사용했으며,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야니네 얀센(vl)
-드보르작 《In Folk Tone op.73》 막달레나 코제나
-니키 패롯
-소니 롤린스
Janine Jansen - Violin Concerto
Mendelssohn: Violin Concerto
첫 곡을 들으면, 소스기에서 높은 명성을 쌓아온 린데만의 진가가 잘 드러난다. 작은 스피커임에도 빼곡하게 정보량이 들어차 있으며, 스피커 사이의 공간에 많은 음성 신호가 포착된다. 무엇보다 바이올린이나 오케스트라의 질감이나 감촉이 좋고, 다이내믹스가 뛰어나며, 해상력도 어디 뒤지지 않는다. 좀 더 대형 시스템에 걸어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할 제품인 것이다. 빠르게 패시지하면서 기품과 서정성을 아울러 갖춘 얀센의 연주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Magdalena Kozena - In Folk Tone op.73
Dvorak Janacek: Love songs
코제나의 노래는, 거의 숨이 막힐 듯한 리얼함으로 다가온다. 발성이나 뱃심과 같은 요소는 물론이고, 노래 중간의 포즈(pause) 때에 느끼는 기척이나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피아노 하나만의 반주임에도, 무대가 꽉 차고, 압박감도 대단하다. 강약을 적절히 섞으면서 노래 자체의 멜랑콜리함을 살리는 대목에선 눈을 살포시 감게 된다.
Nicki Parrott - Dark Eyes
Nicki Parrott - Black Coffe
더블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니키 패롯은 상당히 이색적인 존재. 그러나 활기차면서도 정감이 넘치는 목소리는 이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느낌이 잘 드러난다. 약간 달콤하면서, 리듬감이 분명해서, 전체적으로 흥겨운 분위기가 일품이다. 중간에 나오는 테너 색스의, 약간 호색적인 분위기도 일종의 애교로 다가올 정도. 약간 녹음이 어수선한데, 여기서는 비교적 잘 짜인 콤비네이션을 즐길 수 있다.
Sonny Rollins - St, Thomas
Sony Rollins - Leel Life
롤린스의 곡은, 익히 알려진 명작으로, 호방하면서 스트레이트한 하드 밥을 즐길 수 있는 쾌작이다. 드럼의 텐션이나 연주자의 신음 소리, 두툼하면서 빠른 더블 베이스 라인 등 기본 요소들이 잘 살아있고, 남성적이며 근육질인 롤린스의 섹소폰은 흡인력이 대단하다. 단, 너무 힘으로만 미는 스타일이 아니라, 적절한 질감을 동반한, 약간 고급스런 재생음이 남다르다. 세부 묘사나 수많은 정보량을 보면, 익히 아는 곡인데도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종학(Johnn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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