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것이 잘 될 때는 잘 되지만 그래도 때에 따라서는 굉장한 위기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망하기도 하는데...
하지만 그게 금융사나 중공업 혹은 대형 전자회사나 그리고 자동차 회사라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뭐 어느 회사나 그렇지 않겠습니까마는... 자동차 회사의 경우는 한 나라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으며 특히 다양한 계열사, 협력사, 하청업체를 비롯해 딸린 식구들이 워낙 방대하며, 국가적으로도 지켜야 할 기술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회사들이 어려워 질 때면 국가적으로도 대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자동차 회사가 한 나라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죠. 단순히 이율 창출 집단으로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채워진 구성원들 모두가 한 나라의 경제 구성원임을 감안한다면 중요성은 더욱 증가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비의 주체이자 세수원이고, 경제를 굴러가게 만드는 작은 힘이니까요.
스웨덴이 사브와 볼보가 넘어졌을 때 정부차원에서 끝까지 방어를 하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죠. 볼보는 이제 소유권이 중국으로 넘어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스웨덴 공장을 유지하려고 하고 고용인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은 한 순간에 경제 구성원들이 길바닥에 나 앉아 국민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물며...단일 브랜드도 이런데... 여러 개의 브랜드를 동시에 소유하고 한 때 한 국가 GDP의 4%를 차지했던 회사라면 이야기가 더 심각하죠.
피아트 이야기입니다. 피아트는 한 때 이탈리아 경제의 4~5% 가량을 책임지던 거대 자동차 회사였습니다. 거기에 지금은 크라이슬러까지 떠 안으면서 FCA 그룹으로 묶여 있죠.
이들이 책임져야 하는 브랜드는 피아트, 크라이슬러, 페라리, 마세라티, 란치아, 아바르트, 알파로메오 거기에 이제는 과거 크라이슬러 산하에 있던 브랜드들인 지프, 닷지까지 끌고 가야하며, 여기에 유럽 초대형 자동차 기술 및 부품 개발, 공급사인 마넬리 마네티까지 포함되어 있으니....(이 외에도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중요한 회사들이 몇 개 더 있음)
그야말로 범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아주아주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주 당혹스러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GM님...쌈 싸왔어요. 아~~~아세요~
바로 그룹의 인수 합병을 제안했다가 속된말로 '까인'것이죠. 피아트 그룹의 총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제너럴 모터스에게 자신들과 합병해줄 것을 제안했다가 단 한문장의 답변도 듣지 못하고, 공식적인 소식통에 의해 '관심없음'이라는 이야기만 전해 들은 것입니다.
사실 피아트 그룹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수많은 브랜드를 떠안으면서 경영이 방만해진 것이 그 시작이라고 보는데, 쓰러져가는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들을 차례로 떠 안으면서 문제를 키울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피아트 그룹 내 이탈리아 브랜드는 피아트, 페라리, 마세라티, 알파 로메오, 란치아 총 다섯 개인데 이 중에서 실제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브랜드는 페라리와 마세라티 정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판매 대수로 따지면 피아트 브랜드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대당 판매 수익이 워낙 높은 차종들이라 그렇죠.
대중적인 모델을 생산하는 피아트에서 주력하는 모델들은 500과 트리몬토가 가장 잘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실제 유럽에서는 판타와 푼토가 가장 잘 알려진 모델이며, 여기에 상용차 부분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2015년 2월 판매 대수는 약 49,000대로 알려져 있는데, 이게 유럽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5%입니다. 위에 거론된 모델 중에서 500, 500L과 판타를 제외하면 나머지의 판매 실적은 대부분 미미한 상태입니다.
거기에 란치아와 알파로메오는.... 이야기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판매 실적이 너무 저조합니다. 란치아가 약 6,000대 인데, 현재 판매되고 있는 차종은 입실론과 크라이슬러 보이져의 리뱃지 버전인 보이져. 물론 전년 동시기 대비 소폭 매출이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 유럽을 상대로 판매하고 마케팅하는데 월 6,000대는 문제가 있죠. 게다가 유지하는 차종도 2모델 뿐이라는 건...
알파로메오는 사정이 좀 더 좋지 않습니다. 4C의 등장으로 활력을 받은 것 같지만 보유하고 있는 모델 전부를 합해 2월 한달 판매 대수는 4,500대입니다. 스포츠카 전문도 아니고 다른 모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는 것은 문제가 좀 심각하죠. 오히려 란치아보다 더 못팔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알파에서 주력하는 모델은 4C, 미토, 줄리에타와 더불어 콰트리폴리오 베르데에서 진행하는 메이커 튠 카인데, 미토나 줄리에타의 경우는 해치백이어서 유럽에서는 상당히 잘 팔릴만한 모델이지만
그럼에도 판매 실적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모델 체인지를 하지 못한 탓은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당장 이를 대체할 차종이 개발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아서....
몇 해 전, 전 VW 회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알파 로메오 브랜드에 관심을 보였던 적이 있지만
그 당시 마르치오네는 어림도 없는 소리이며,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팔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바 있습니다.만... 이렇게 휘청거릴 거였으면 차라리 매각을 해서 현금 유동성이라도 높이는 것이 좋지 않았나 싶군요.
페라리는 온전히 자신들의 브랜드라고 하기도 이제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미 현금 확보를 위해 지분 일부를 매각했고, 여차하면 더 매각할 의사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럭셔리 브랜드들이 대당 판매 수익율이 높다고는 해도 한달에 페라리, 마세라티 합산해서 500대가 안팔리는데 (유럽 기준이며 북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남미를 합하면 상당폭 증가할 듯) 그걸 다른 브랜드들과 비교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피아트 그룹은 작년 한해 유럽 기준으로 약 480,000대의 생산을 달성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특정 브랜드를 제외하면 북미를 포함한 타 대륙의 판매량은 제한적이어서 큰 폭의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렇게 다양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중 상당수는 매출 부진을 겪고 있으며, 그들이 안고 있는 크라이슬러, 지프, 닷지 역시 미국 시장에서 여전히 다른 미국 브랜드에 가려져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피아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준 브랜드이기도 하죠.
실제 피아트의 자본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크라이슬러의 인수 합병 때문입니다. 인수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현금을 끌어다 썼지만, 그에 따른 수익보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알파 로메오 부활을 위해 스폰서십부터 마케팅 활동까지 많은 돈을 썼으나.... 이 역시 괄목할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이죠.
그래서 수익 대비 지출이 커지고, 회수 기간이 길어지는...전형적으로 협착된 상태에 들어가면서 결국 이 상태로는 그룹과 브랜드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 최근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 자산 상태가 좋아졌으며, 글로벌 시장에 대한 욕심이 있어 보이는 GM에 구애를 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미국 경기 회복세로 GM을 비롯해 포드 등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현금 보유고가 늘어가고 있으니까, 거기가 제일 좋겠다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마르치오네는 이번에 GM이 FCA를 인수 합병하면 VW과 다임러 그룹까지 넘어서는 글로벌 1위 기업이 될 수 있다며 달콤한 그림도 그려서 보내줬다고 합니다.
현재 GM이 보유한 브랜드는 쉐보레, 오펠, 뷰익, 캐딜락, GMC, 홀덴, 복스홀인데, 사실 이것만해도 엄청난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 아시아를 너머 유럽까지 발을 뻗어 있는 상태죠. 거기에 크라이슬러, 란치아, 알파로메오, 피아트, 지프, 닷지, 페라리, 마세라티까지 가져가면 단순한 수치상으로도 VW을 훌쩍 뛰어넘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공룡이 되는 셈이죠.
제국을 꿈꾸는 황제형 CEO와 그를 둘러싼 이사회라면 이 그림을 그리며 만족에 도취된 표정으로 샴페인을 마시며 그들의 발에 키스하는 마르치오네를 내려다 봤겠지만...
아주 현실적인 GM에서는 아무런 답도 없이,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정도로 끝난 상태입니다. 하기는 GM도 이제 겨우 회사가 리먼 쇼크로 공적자금 투입된 후 겨우 정상화 단계로 가고 있는데, 빚더미에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더미이고, 특히 언제 자빠질지 모를 크라이슬러까지 떠 안는 건... 말도 안되는 짓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자사주 매입을 하면서 자기 자본 비율을 늘여 건전성을 높이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결국 '까'인 FCA는 아예 자동차 회사 이외의 회사에게도 그룹을 매각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습니다. 애플이건 구글이건 뭐가 되었건 좋으니 '추워요. ㅠㅠ 안아 주세요....ㅠㅠ'가 됐습니다. 심지어 PSA 푸조 시트로엥 그룹에게 까지 구애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만.. 그들도 코가 석자라...
현재까지 추가로 들려오는 소식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피아트 그룹이 대단히 위기 상황에 봉착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불안한 조짐은 이미 이전에도 있었죠. 페라리 분리하고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힘겨루기를 하던 페라리 터줏대감 루카 디 몬테제몰로를 밀어내기 하면서 굳이 저렇게까지....라는 이야기도 잠시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페라리의 경영 방식이 획기적으로 개선이 되었느냐?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몬티 회장 재임시절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페라리를 분사하고 피아트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 진통이 있었던 것 같다는 추측이 나돌기에 이르렀죠.
이탈리아 정부가 그들을 구제할 방법도 있기는 하겠습니다마는... 지금 이탈리아도 나라 상태가 말도 아니어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마르치오네가 무능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도 그가 있었기에 이렇게 빠르게 그룹 회생을 위한 전략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그 전에도 한번 피아트 그룹을 GM에 매각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때도 GM은 (그들도 그 당시에는 상황이 어려워서) 거절했었죠. 실적이 부진했다는 것이 이유인데요. (뭐 그럼 실적이 좋은 회사가 왜 매물로 나오겠어.풉!)
그가 등장하면서 과감한 구조조정과 전략적인 대처등을 보여주면서 일시적으로나마 상황을 개선하는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크라이슬러를 인수했을 때, 북미 시장에서 거대한 인프라를 확보했다고 자신했으며, 그것을 통해 피아트 그룹의 다양한 모델들이 미국에 진출해 더 많은 실적을 올릴 것이라 확신했죠.
하지만 이전부터 고질적으로 자리하던 모델 다각화의 실패와 부실한 브랜드의 지속으로 인한 손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거기에 크라이슬러에서 판매한 자동차에서 불이 나면서 어린아이가 사망하는 사고로 인해 이미지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죠.
결국....그룹과 브랜드를 살리려면 차라리 인수 합병이 낫겠다고 판단하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브랜드 중...정말 탐나는 것들은 정작 몇 개 없는 상황.
앞으로 FCA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만약 공중분해라도 된다면....그 때 가서야 VW그룹이 은행을 찾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먹잇감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독수리 처럼...말이죠. 현재 FCA의 주가는 이 상황 발표 이후 10%나 급락했다고 하는군요...
아마 지금쯤.... 푹신한 의자에 앉아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피에히는... '그러게 그 때 알파라도 팔지 그랬어? 아둔한 라틴놈들...ㅉㅉ'이라며 혀를 차고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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