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단 한 곳만을 여행해야 한다면 나는 이곳이다.

●기이할 만큼 유혹적인

지난해 6월, 싱가포르의 한 호텔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6·12 북미정상회담 전날 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느닷없이 이곳을 방문해 싱가포르 야경을 구경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치 못한 행보는 ‘김정은의 싱가포르 야간시티투어’라는 식으로 전 세계에 송출됐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고 나선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다. 남북 정상이 방문했고, 데이비드 베컴이 호텔의 홍보영상에 등장하는 이곳은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호텔’이다.

이 호텔은 일반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인기의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지상 200m, 57층 꼭대기에 위치한 인피니티 풀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화려한 마천루와 150m에 달하는 거대한 인피니티 풀이 어우러지며 SNS용 사진을 남기기 딱 좋은 곳, 다시 말해 내가 얼마나 특별한 곳에 왔는지 사진 한 장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사진에 담긴 마리나 베이 샌즈는 기이할 만큼 유혹적인 모습이다.

언제였을까, 나 역시 이곳의 사진을 보고 매혹되었던 적이 있다. 맞은편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쪽에서 백색의 아트사이언스 뮤지엄과 마리나 베이 샌즈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3동의 고층빌딩 꼭대기엔 거대하지만 날렵한 비행선이 내려앉아 있었고, 두 장의 카드가 그 무게를 견디듯 빌딩이 휘어 있었다. 비행선도, 활처럼 휜 빌딩도 믿을 수 없으리만치 낯선 미래의 풍경이었다.

그저 한 장의 광고 사진이라기엔 ‘내가 싱가포르에서 단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여기에 가고 싶다’라는 꿈을 꾸게 만든 사진이었다. 그 자태는 겸손이나 공손 같은 말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만만하거나 오만하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을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리나 베이 샌즈의 마법

지난 1월의 어느 날,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프런트였다. 미국 출신 화가, 솔 르윗(Sol LeWitt)의 무지개 같은 그림이 가장 먼저 반긴다. 무려 17m에 달하는 그림이다. 곡선은 유연하고 컬러는 경쾌하다. <호와 원>이란 제목처럼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 넘치는 그림을 바라보며 4,682호, 46층의 ‘프리미어 킹 하버뷰 룸’으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고대하던 순간이다. 지난 며칠 여기에 묵는다는 사실만으로 들떠 있던 건, 사실 별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단 여기는 너무 비싸다. 프로모션이니 이벤트니 이리저리 궁리해 가장 저렴한 날짜를 골라도 하룻밤에 40~50만원은 기본이다. 놀랍게도 40~50만원을 내도 조식은 불포함이다. 조식이 포함되면 바로 70~80만원, 때로는 그 이상으로 뛰어 버린다.

“100%, 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호텔 직원에게 오늘 방이 얼마나 찼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곳의 객실 수는 100개, 200개가 아니다. 장장 2,561개다. ‘하룻밤 숙박비가 40~50만원이 기본이고 방이 2,561개나 있는데 만실이라고?’ 좀체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기 전까진.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여행객들의 욕망을 충실히 충족시켜 준다.

마리나 베이 샌즈를 아는 당신이 꿈꾸는 수영장은 새벽 6시, 수영장이 오픈하고 딱 5분간만 느낄 수 있는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는 자신을 제외하고도 무려 5,000여 명이 묵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카지노에 가려고 묵는 이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수영장을 위해 묵는다. 가장 붐빌 시간에는 마치 목욕탕에 온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도 마리나 베이 샌즈는 여전히 근사하다. 57층에서 자라는 야자수 아래 선베드에서 누워만 있어도, 여기가 어디인가 싶어 짜릿해진다. 아무리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도 인피니티 풀에서 내려다보는 싱가포르 전경은 최고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마리나 베이 샌즈의 마법이다.

●럭셔리 또는 캐주얼

마리나 베이 샌즈에 묵는 한국 여행객들은 종종 룸 컨디션에 대해 불만을 털어 놓는다고 한다. 금색과 황갈색 사이, 고급스런 가구 정도로는 ‘럭셔리’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나 보다. 절반은 수긍한다. 룸 컨디션만 보면 마리나 베이를 ‘럭셔리 호텔’로 칭할 순 없다.

하지만 사실 마리나 베이 샌즈를 보고 6성급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신화’에 가깝다. 정작 호텔 측에선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싸다곤 해도 호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럭셔리보단 캐주얼에 가까웠다. 나도 뜻밖이었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는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몇 개의 식당이 있다. 이를테면 1층의 라이즈(RISE)는 가장 크고 다양한 인터내셔널 뷔페를 제공한다. 타워2, 57층에 위치한 스파고(SPAGO)는 음식 가짓수는 적지만 세계적인 스타 셰프, 볼프강 퍽(Wolfgang Puck)의 레스토랑이며 탁 트인 하버 뷰를 제공한다.

식당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건 싫다며, 그것도 조식 개시 시간인 7시에 맞춰 스파고로 향했지만 입구에는 이미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60~70만원을 내고도 줄 서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이런 모습만 보면 마리나 베이 샌즈는 캐주얼해도 너무 캐주얼하다. 사람에 따라선 그래서 더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인종도, 나이도, 분위기도 각양각색이다. 마치 싱가포르 안에 작은 미국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다들 편안해 보이며,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는 것. 그리고 대개 이곳에서 묵는 날이, 싱가포르에 내려앉은 우주선에서 헤엄치는 이 날이 특별한 보통의 여행객들이라는 것이다.

●동경 혹은 욕망

어두운 원목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창이라 좋았고, 방문을 열 때마다 자동으로 열리는 커튼 밖 싱가포르 하버의 이국적인 풍광과 마주치는 게 즐거웠다. 46층, 룸에서 밖을 바라보면 앞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의 꼭대기 같은 곳에서 수영하는 것도 좋았지만 55층 반얀트리 피트니스 클럽에서 마천루를 바라보며 잠깐이나마 땀을 흘리는 것도 좋았다. 홍콩, 뉴욕과는 다른 샌즈만의 특별한 풍경이다. 아무래도 별세계(別世界)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동안 한 걸음도 호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250개 브랜드 매장, 스타 셰프 레스토랑 등 그 안에 모든 게 다 있으니 나갈 일이 없었다. 타워1 로비 천장에 걸려 있는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드리프트(Drift)>라는 작품처럼 마리나 베이 샌즈의 화려한 퍼블릭 아트 컬렉션을 둘러보는 것도 유익했다. 작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겨를조차 없는 거대한 스케일, 크기에 한 번, 슬쩍 들은 작품의 가격에 두 번 압도된다.

호텔이 마치 미술관 같다. 샌즈라는 ‘돈의 제국’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예술과 돈은 이렇게 연결된다. 마리나 베이 샌즈를 건설하는 데 무려 7조원이 들었다고 한다. 최초의 계획과 달리 추가로 2조원이 들었지만 샌즈 그룹은 마리나 베이 샌즈 오픈 3년 후 투자금을 전부 회수했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겨우 3%를 차지하고 있는 카지노의 위력 덕분이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일하는 직원은 9,700명, 그중 절반이 카지노에서 일한다. 이 또한 별세계다. 마리나 베이 샌즈는 단순한 호텔이 아니라 마카오에 이어 싱가포르에 세워진 화려하고 유혹적인 ‘샌즈 제국’이다.

체크아웃을 하고서야 마리나 베이 샌즈 주변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호텔을 나와 머라이언 파크를 지나 퓰러턴 호텔까지 걷는 동안 마리니 베이 샌즈를 보고 또 보았다. 이젠 좀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었는데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정면에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측면에서 보니 기울기가 엄청나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부근에 이르니 바다를 사이에 두고 왼편에는 마리나 베이 샌즈가, 오른편에는 빼곡히 늘어선 빌딩 숲이 보인다.

그런데 홀로 서 있는 마리나 베이 샌즈의 기운이 맞은편의 수많은 빌딩보다 더 강렬하다. 내가 저곳에서 이틀을 지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마리나 베이 샌즈가 서 있는 땅이 바다를 매립하고 만든 인공의 땅이란 걸 떠올리면 더더욱 미래 세계의 풍경 같기 때문이다. 50~60만원의 가치, 인간의 욕망을 운운하며 근사한 돈의 세계에 머물렀던 하룻밤의 기억은 강렬하고 근사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한참 시간이 흘렀어도 마리나 베이가 종종 떠오른다. 때로는 동경의 대상이고, 때로는 현기증을 동반하는 욕망의 세계다. 엉뚱하게도 나는 꿈을 꾼다. 아무도 없는 마리나 베이 샌즈 로비에서 나 홀로 서 있는 순간을. 마리나 베이 샌즈라는 세계로 처음 들어왔을 때 나를 맞아 준 무지개색 그림을 나 홀로 바라보는 순간을.

글·사진 박준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