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렘 쿠쿠카슬란
하이엔드 오디오의 대표나 엔지니어들을 보면 가끔 왜 이 분야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는지 의아한 경우가 있다. 주로 정밀 공학 분야나 우주항공, 군사, 의료 관련 분야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또 어떤 경우는 엔지니어로서 커다란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오디오를 만들곤 한다. 더 커다란 첨단 분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은퇴 후 자신이 취미로 좋아하던 오디오를 직업으로 맞이해 제2의 인생을 사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하이엔드 오디오가 번성하던 초창기엔 최고 수준의 수재들이 이 분야로 들어오기도 했다.
압솔라레의 창립자인 케렘 쿠쿠카슬란(Kerem Kucukaslan)도 그런 의외의 인물 중 하나다. 마치 대기업 이사나 상무처럼 생긴 외모에 정장을 주로 입고 있는데 진공관 앰프를 설계해 판매하고 있다. 게다가 국적은 이 분야에서 흔치 않은 터키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듀폰 그리고 자동차 회사에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진지한 오디오파일이며 한때 하이파이 소사이어티의 대표를 맡았을 정도다. 그가 만드는 앰프는 다름 아닌 압솔라레(Absolare)라는 브랜드 제품이다.
최근 몇 년간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압솔라레를 처음 들었던 것은 아마 YG 어쿠스틱스 스피커와 매칭이었던 것으로 떠오른다. 당시 하이엔드 오디오 쇼에서 카멜 스피커와 매칭해 들었던 압솔라레 앰프는 곱고 예쁜 고역에 단단하고 탄력적인 저역 등 모든 면에서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확실한 건 기존의 전통적인 영, 미권 앰프들과 결이 다른 소리를 들려주었다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내부 선재에 있었는데 에콜(Echole)이라는 금, 은, 팔라듐 합금 케이블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아주 작은 부분이 전체 시스템을 지배하기도 한다.
에콜
사실 에콜은 케렘 쿠쿠카슬란이 압솔라레를 설립하기 이전에 처음 하이엔드 오디오의 발을 디디게 된 이유다. 2006년 설립했는데 그는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그에게 케이블은 단순히 기기를 연결하는 액세서리가 아니었다. 신호를 연결 짓는 가장 최소 단위의 경로 중 하나로서 케이블은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결국 케이블이라는 가장 기본을 확립한 이후 앰프 설계에 나서 이후 압솔라레는 훨훨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에콜 케이블을 알아보고 경험하는 것은 압솔라레로 귀결된 쿠쿠카슬란의 음악과 음향의 세계를 탐구하는 입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에콜 사운드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독보적인 하이브리드 합금에 있다. 2008년 처음 소개된 옵세션만 해도 그렇다. 에콜에선 현재 엔트리 급이지만 에콜의 솔리드 코어 기본 토폴로지로 전매특허 도체인 실버/골드/팔라듐 합금을 사용하고 있다.
이 케이블이 소개된 이후 RMAF, CES, 뮌헨 등 전 세계 대표적인 하이엔드 오디오 쇼에서 스테레오파일 등 여러 리뷰어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하이엔드 케이블 세계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이 외에도 상위로 시그니처, 오리우스, 옴니아, 리미티드 에디션, 인피니티 등 상위 모델들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다. 그 이면엔 금/은/팔라듐의 성공적인 합금 도체가 자리하고 있으며 오야이데 팔라듐 단자 등 최고급 소재 및 지오메트리 등이 자리한다. 케이블이란 미시세계에서 공대 출신의 성공적인 삶은 산 엔지니어가 만들어낸 세계는 무척이나 음악적이었다.
리미티드 에디션 Model 2
에콜이 준비한 재료는 금/은/팔라듐으로 이들은 이 재료를 가지고 총 여섯 가지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그중 이번에 리뷰를 진행한 리미티드 에디션은 이전에 출시한 옴니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2013년에 출시한 옴니아는 에콜이 추구하는 과학적이고도 유기적인 사운드, 음악적 감성을 극대화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히트작이었다. 이 케이블을 출시한 후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는데 2세대 버전을 출시했을 만큼 탁월한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리미티드 에디션은 모든 면에서 확실히 한 단계 상위 모델임이 확실하다. 옴니아의 경우 1.55mm 구경의 솔리드 코어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 리미티드 에디션의 경우 1.75mm 구경의 좀 더 굵은 도체를 사용한다. 터미네이션도 마찬가지로 차이가 있다. 옴니아의 경우엔 오야이데 실버 단자에 팔라듐 도금한 것을 사용하며 리미티드 에디션의 경우 후루텍 단자에 로듐 도금한 것을 사용한다. 종단 처리에서 차이가 있고 이는 전기적 특성과 음질에 꽤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흥미로운 것은 왜 팔라듐이냐는 것이다. 은과 금은 이미 여러 메이커에서 케이블에 사용하고 있지만 팔라듐은 단자의 도금 등에만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외관상 광택이 뛰어나고 부식과 마모에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커넥터나 스위치, 릴레이 등의 접점 도금에 쓰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럼 에콜이 굳이 금과 은, 구리 등 다양한 물질 사이에서 금/은/팔라듐을 조합한 합금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콜을 알아갈수록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이번에 리뷰를 통해 만나본 에콜의 리미티드 에디션은 그 두 번째 버전이다. 케이블로 인한 미묘한 변화는 평소 익숙한 필자의 시스템에서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좋을 듯해 대여를 받았다. 배달되어온 박스는 꽤 커다란 나무 박스로서 케이블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잠금장치를 풀고 박스를 여니 가죽 파우치 안에 검고 묵직한 인터케이블 하나가 똬리를 틀고 있다.
케이블의 모습은 전통적인 인터케이블의 모습이지만 자세히 보면 일종의 댐퍼 역할을 하는 금속 구조물이 채널당 세 개씩 장착되어 있다. 중간에 모델명을 써놓은 큰 댐퍼 그리고 양쪽 종단에 가깝게 장착한 일종의 스플리터가 두 개씩이다. 후루텍 카본 단자는 내부 핀을 보면 예쁘게 반짝이며 로듐 단자임을 알려준다.
셋업 & 청음
이번 시청은 자택에서 이뤄졌다. 최근 인테이블을 여럿 테스트해 보던 차라서 이 케이블의 특색은 더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종종 이런 독특한 도체와 설계의 하이엔드 케이블이 시스템에 들어오면 상당히 놀라곤 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케이블이 전체 사운드의 음악적 아우라를 바꿔버리는 탓에 한동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참고로 앰프는 코드 CPM3350 그리고 스피커는 베리티오디오 Rienzi 등을 활용했다. 소스 기기는 웨이버사 Wcore 및 마이트너 DAC 등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Feist - So sorry
The Reminder
팔라듐이 들어가서 그런 것일까? 가끔은 소리라는 것은 해당 기기의 소재 영향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갖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공감각적 감상은 마치 이 케이블이 내는 소리와 연관되어 설명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파이스트의 ‘So sorry’를 들어보면 마치 팔라듐 도금의 그 단단하며 매끈하며 빛나는 광채가 그 소리 표면에서 연상된다. 그녀의 보컬은 표면에 어떤 작은 굴곡이나 거친 마감도 없이 깨끗하고 미려하다. 더불어 흥미로운 건 낮은 현의 베이스 기타가 더욱 선명하고 골격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Busch Trio
Dvorak: Piano Trios OP.65 & 90 ‘Dumky’
이런 현악 재생에 있어서 놀라운 특성은 실마리가 되어 여타 음악들에서도 좀 더 집중해 듣게 만드는 면들이 있었다. 각 악기의 대역폭, 그중 고역의 끝단과 저역의 끝단에 대한 부분들이다.
이 케이블은 대역폭이 굉장히 넓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고역만 해도 부시 트리오의 드보르작 피아노 삼중주 ‘Dumky’에서 아주 명쾌하면서도 빛나는 빛깔을 낸다. 특유의 빛깔을 가지자만 그리 어색한 컬러가 아니며 되레 아름다웠다.
Supertramp - Even in the quietest moments
Even in the Quietest Moments...
이런 빛깔은 다른 여러 녹음에서도 발견되었다. 또한 그로 인해 매끈한 광채는 더욱 넓고 깊게 빛을 발했다. 이는 치밀한 디테일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예를 들어 슈퍼트램프의 ‘Even in the quietest moments’에서 초반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너무 세밀하고 선명하게 들려 놀라웠다. 더불어 본격적으로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지만 이 소리가 계속해서 음악 안에 겹쳐 있다는 것까지 새롭게 발견했다. 소스 기기로부터 받은 음악 정보를 조금도 남김없이 앰프로 전달해 주는 케이블이다.
Alice Sara Ott
Edvard Grieg: Piano Concerto
피아노 소리는 마치 피요르드 얼음 협곡을 뚫고 나오는 듯 싱싱했다. 이런 이가 시릴 정도의 피아노 타건은 오랜만이다. 예를 들어 엘리스 사라 오트가 연주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시작과 동시에 치고 나오는 강력한 피아노 타건이 스피커 사이를 번개처럼 가로지르면 광채를 뿌렸다.
청감상 해상력이 최고조며 케이블로 인해 추가되는 기저잡음이 거의 사라진 사운드. 덕분에 후방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연주 사이에 깊고 세부적인 레이어링이 만들어졌다. 음악은 더욱 강력하고 짜릿했으며 그와 동시에 탁월한 코히어런스를 획득하고 있었다.
총평
고백하자면 이번 리뷰를 진행하기 전까지 압솔라레 인티앰프 등에서 에콜 케이블을 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에콜과 연결점에서 어떤 특성을 공유했는 열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케렘 쿠쿠카슬란은 에콜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한 후 압솔라레를 런칭했다. 시간순으로도 그렇고 케렘 쿠쿠카슬란의 공학 전공, 엔지니어링에 관한 폭넓은 커리어를 볼 때 신호의 입구부터 출국까지 아날로그 신호의 뿌리부터 차곡차곡 준비해 여기까지 온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압솔라레의 그 특유의 음색엔 에콜 사운드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케렘 쿠쿠카슬란의 음질적 근간은 결국 에콜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매우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무척 매력적인 사운드임은 분명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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