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필자는 스트리밍 및 유선 디지털 음원을 듣기 위해 3가지 기기를 동원하고 있다. 외부 서버에서 스트리밍 음원을 가져오는 네트워크 트랜스포트로 솜의 sMS-200 Ultra, 스트리밍 및 유선 디지털 음원을 업샘플링해 주는 DDC로 코드의 M Scaler, 이러한 디지털 음원을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DAC로 마이텍의 Manhattan II DAC을 쓰고 있다. 사운드와 인터페이스 모두 만족스럽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음악 한 번 듣자고 이렇게 소스기기를 주렁주렁 달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이들 기기 사이사이에 들어간 케이블 값이 얼마야? 하물며 요즘 유행하는 앨범 재킷 디스플레이 기능도 없잖아? 만약 필자가 스포티파이를 쓰고 있다면 이러한 의구심과 불만은 더욱 커질 뻔했다. 현재 시스템은 스포티파이 커넥트는 냄새조차 맡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던 차에 최근 프랑스 아톨(Atoll)의 스트리머 ST200 Signature를 접했다. 안에 24비트/192kHz, DSD128 사양의 DAC가 내장된 스트리머로 아날로그 입력도 된다. 전면 패널에서는 컬러풀한 앨범 재킷을 볼 수 있고, 당연히 룬(Roon)과 UPnP/DLNA, 블루투스도 된다. 스포티파이 커넥트는 물론 타이달 커넥트까지 지원하는 점도 솔깃하다.
결정적으로는 소리까지 마음에 들었다. 몇 개월 전 아톨의 엔트리 스트리머 MS120을 리뷰하면서 그 착착 감기는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ST200 Signature는 확실히 그 상급기다운 면모를 곳곳에서 풍겼다. 입자감이나 SN비, 다이내믹스 등이 동생과는 달랐던 것이다.
아톨과 스트리머


아톨은 1997년 스테판 뒤브뢰유(Stephane Dubreuil), 엠마뉴엘 뒤브뢰유(Emmanuel Dubreuil) 두 형제가 프랑스 노르망디의 브레쎄에 설립했다. 설립 초기부터 ‘예산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오디오파일’을 겨냥, 가성비가 돋보이는 CD플레이어와 인티앰프, DAC으로 주목을 받았다. 제품 후면에 박힌 ‘메이드 인 프랑스'(Fabrique En France)도 이들의 자랑이다.
이들이 스트리머, 즉 네트워크 플레이어에 뛰어든 것은 2012년의 일이다. 이 해 ST100과 ST200이 출시된 것이다. ST100은 PCM1796, ST200은 PCM1792 DAC 칩을 썼고, 두 제품 모두 유선 랜과 무선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 라디오와 NAS 등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어 2016년에는 미니 스트리머로서 MS100이 등장했다.

스트리밍 음원 재생이 대세가 된 2019년에는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응하는 시그니처(Signature) 버전이 나왔다. 이번 시청기인 ST200 Signature도 이때 나왔고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룬 레디(Roon Ready) 인증도 받았다. 이어 2021년에는 상급기로서 ST300 Signature와 MS100의 업그레이드 모델 MS120이 선을 보였다.
현행 아톨 스트리머 3종을 간략히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ST300 Signature : 더블 PCM1792 DAC, 다이내믹 레인지 132dB, SN비 132dB, 69,000iuF
- ST200 Signature : 싱글 PCM1792 DAC, 다이내믹 레인지 129dB, SN비 129dB, 27,000uF
- MS120 : 싱글 PCM1796 DAC, 다이내믹 레인지 123dB, SN비 123dB, 5,435uF
ST200 Signature 본격 탐구

ST200 Signature는 기본적으로 DAC을 내장한 스트리머이자 아날로그 입력단과 볼륨단, 아날로그 버퍼단을 갖춘 프리앰프다. 유선 랜과 무선 와이파이, 블루투스 지원은 물론이고 유선 디지털 입출력 단자도 갖췄다. 전면에는 5인치 TFT LED 디스플레이가 있어서 컬러 앨범 재킷이나 각종 텍스트 정보를 볼 수 있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실물을 접한 ST200 Signature는 외관부터 MS120와 달랐다. 디스플레이 크기는 동일하지만 섀시 자체가 하프 사이즈의 MS120에 비해 훨씬 늘어나서 보는 맛이 시원시원하다. 무게도 당연히 더 나간다. 크기(WHD)는 440mm, 95mm, 284mm, 무게는 6kg.

전면 알루미늄 패널 두께도 다르다. MS120이 4mm, ST200 Signature와 ST300 Signature가 8mm다. 전면 패널이 두꺼우면 그만큼 섀시 진동관리에서 훨씬 유리하다. 전면 패널에는 LED 디스플레이가 가운데에, 각종 메뉴 컨트롤 버튼과 USB 메모리 재생용 USB A 입력단자가 왼쪽에, 볼륨 업다운 버튼과 3.5mm 헤드폰 잭, 전원 온오프 버튼이 오른쪽에 있다.

후면을 보면 ST200 Signature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왼쪽부터 RCA 라인 출력단자 1조, RCA 라인 입력단자 2조, 디지털 출력단자 2개(광, 동축), 디지털 입력단자 4개(광 2, 동축 2), 유선 랜 케이블 연결용 RJ45 단자, USB 메모리 재생용 USB A 입력단자, 와이파이 및 블루투스 안테나 잭, 전원 입력단자, 온오프 스위치 순이다.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라인 입력단자 2조인데, 이렇게 되면 ST200 Signature를 디지털 스트리머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프리앰프로도 쓸 수 있다. 볼륨은 저항 조합을 통한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 아날로그 버퍼단 역시 디스크리트 구성에 클래스A 증폭 설계를 취했고 네거티브 피드백은 일체 걸지 않았다.

참고로, ST200 Signature 후면에 없는 것은 PC 연결 등을 위한 USB-B 입력단자, TV 연결을 위한 HDMI ARC 단자, 그리고 XLR 밸런스 입출력 단자 등이다. 참고로 상급기 ST300 Signature에는 XLR 출력단자가 있다.
ST200 Signature의 네트워크 기능은 이렇다.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는 기본이고, 스포티파이 커넥트와 타이달 커넥트, 룬을 지원한다. 인터넷 라디오(Airable)도 된다. 아톨 시그니처(Atoll Signature) 앱을 통해 타이달, 코부즈, 스포티파이, 디저 등을 즐길 수 있고, 버블유피앤피나 엠커넥트 같은 범용 앱을 이용하면 국내 멜론이나 벅스도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물론 ST200 Signature가 UPnP/DLNA 프로토콜을 지원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디지털 음원 재생 스펙은 TI(버브라운) PCM1792 DAC 칩을 써서 PCM은 24비트, 192kHz까지, DSD는 DSD64, DSD128을 재생할 수 있다. PCM1792는 벨칸토 EX DAC, 네임 NDX2, 바쿤 DAC-9730 등에도 투입된 대표적인 델타시그마 DAC 칩 중 하나다. 참고로 상급 ST300 Signature에서는 이 칩을 채널당 1개씩 써서 다이내믹 레인지와 SN비를 높였다.
전원부의 경우 리니어 타입으로, 기본 30VA 전원 트랜스 외에 10VA 전원 트랜스를 오디오용으로 따로 마련했다. 파워 커패시터의 정전용량은 2만7000uF. 참고로 MS120은 오디오용 전원 트랜스 용량이 4.6VA, ST300 Signature는 10VA 트랜스를 채널별로 1개씩 투입했다. 정전용량은 MS120이 5435uF, ST300 Signature가 6만9000uF이다.
시청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진행한 ST200 Signature 시청에는 아톨의 인티앰프 IN200 Signature와 피에가의 스피커 Coax 311 LTD를 동원했다. 볼륨은 ST200 Signature를 고정 출력해놓고 IN200 Signature로 조절했다. 음원은 룬으로 코부즈와 타이달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아티스트 Katie Melua
곡 Wonderful Life
앨범 Wonderful Life
첫인상은 타이밍 감각이 좋고 음이 따뜻하며 음수가 많다는 것. 아톨에서 내장 클럭 사양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DAC을 내장한 스트리머로서 이러한 타이밍 감각은 일종의 축복이다. 입자가 곱고 SN비가 높은 것도 특징.
다시 한번 더 시청을 해보면 배음이 많아서 목소리나 악기의 음색이 리얼하게 전해진다. 이는 기본적으로 클래스A, 디스크리트 설계의 아날로그 버퍼단과 리니어 전원부 덕분이다. 이 지점들이 허접해서는 결코 좋은 소리가 나올 수가 없다. 무대 가운데에 맺힌 또렷한 이미지나, 들을수록 묵직하게 다가오는 저음의 촉감이나 밀도감도 만족스럽다.
아티스트 Sonny Rollins
곡 I’m An Old Cowhand
앨범 Way Out West
오른쪽의 드럼과 베이스, 왼쪽의 색소폰이 학익진 모양으로 날개를 편 모습이 명확하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잡힌다. 소스기기 단 한 대로 이러한 무대감과 공간감을 만끽할 수 있는 점이 개인적으로 배 아프다. 필자의 현재 스트리밍 소스기기 시스템과 비교하면 입자감이나 다이내믹 레인지 등에서만 밀릴 뿐이다.
전에 리뷰했던 엔트리 MS120과 비교해 보면, 헤드룸이나 음의 중량감, SN비에서 앞선다. 더 단정하고 더 곱다. 결정적으로는 DAC 파트의 체감상 해상력이 높아서 음들을 보다 잘게 쪼개 컨버팅하고 있다는 인상. 덕분에 하이햇 소리를 비롯해 각 악기 소리가 더 찰지게 그리고 더 선명하게 들린다.
지휘자 Andris Nelsons
오케스트라 Boston Symphony Orchestra
곡 Shostakovich: Symphony No. 10 in E Minor, Op. 93 - II. Allegro
앨범 Shostakovich Under Stalin's Shadow - Symphony No. 10
인티앰프의 볼륨을 높여서 맘껏 들어봤다. 선명하고 깨끗하고 투명하다. 이 악장 특유의 발 빠른 긴장감도 잘 전해지고, 무엇보다 소리가 아주 말쑥하고 개운한 점이 마음에 든다. 텁텁하거나 굼뜨거나 둔하지 않은 것이다. 순간 쾅쾅 치고 빠져나가는 스피드도 발군. 그야말로 번개처럼 빠르다.
소스기기 한 대가 이 곡을 이 정도로 스케일 크게 재현한 점이 놀랍다. 사운드스테이지는 견고하고, 전체적인 음의 촉감 역시 거칠거나 어둡지 않다. 특히 3분 5초 무렵에서 팡팡 터지는 팀파니의 탄력감과 응집력, 그리고 그 에너지가 놀랍다. 맞다. ST200 Signature는 자신에게 들어온 스트리밍 음원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할 줄 아는 스트리머다.
아티스트 Olafur Arnalds, Alice Sara Ott
곡 Nocturne in C sharp minor
앨범 The Chopin Project
피아노의 타건이 강력하고 분명하다. 반대로 말하면 음이 단순하거나 싱겁지 않다. 24초 무렵에 등장한 바이올린의 촉감도 기대 이상. 현재 필자 소스기기 시스템에 비하면 무대 배경이 상대적으로 덜 적막하지만, 이 정도면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음악을 들을수록 전면 패널에 보이는 앨범 재킷마저 부럽다.
이 밖에도 많은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메가데스의 ‘Symphony of Destruction’은 둔탁한 일렉트릭 사운드가 시청실을 가득 메웠는데, 특히 드럼의 파워풀한 에너지감은 그야말로 신들린 수준이었다. 모비의 ‘Heroes’는 이 소스기가가 전해준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음을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재현하는 소스기기다. 콜레기움 보칼레의 ‘Cum Sancto Spiritu’는 남녀 합창단이 얼마나 아름다운 음과 무대를 선사할 수 있는지 감탄, 또 감탄했다.
총평
스트리머 겸 프리앰프로서 아톨 ST200 Signature의 포지션은 분명하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스트리밍 음원을 포함한 디지털/아날로그 음원을 ‘제대로’ 재생한다, 바로 이것이다. 개인적으로는 PCM1792 DAC 칩 특유의 따뜻하고 찰진 질감이 인상적이었고, 해상력과 다이내믹 레인지, 입자감, SN비는 기대 이상이었다. 공개된 DAC이나 아날로그 버퍼단, 전원부 외에 네트워크 입력단이라든가 CPU, 클럭 등도 제 몫을 다했음이 틀림없다. 가성비 스트리머를 찾는 분들에게 진지한 청음을 권해드린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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