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오디오 수입사 케이원에이브이 시청실에서 낯선 스피커 브랜드 론칭 시연회가 열렸다. Qln이라는 스웨덴 브랜드였다. 스웨덴? 아바와 스포티파이, 볼보와 이케아, 그리고 말괄량이 삐삐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나라가 아닌가? 오디오 브랜드로는 프라이메어, 마르텐, 요르마, 블라델리우스가 있는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그런데 1977년에 설립된 이 스웨덴 오디오 브랜드가 왜 국내에 지금 소개됐을까. 또 저 윌슨 오디오의 와트(WATT)를 닮은 디자인은 오리지널일까, 아니면 트렌드에 올라탄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연 스피커였던 프레스티지 파이브(Prestige Five)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말도 안 되게 소리가 좋았다. 무엇보다 무대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넓고 깊게 펼쳐졌다. 음의 곱고 빽빽한 입자감에서는 언뜻 명품의 향기마저 스쳐갔다.

이번에는 시그니처(Signature)다. 론칭 시연회 당시 그 가격표에 놀랐지만 소리는 직접 들어볼 수 없었는데,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온전히 보고 살피고 들어볼 수 있었다. 과연 Qln의 플래그십이라 할 만했다. 소리도 좋았지만, 진동 감쇄를 위한 Q 보드, 정재파와 회절을 줄이기 위한 피라미드 인클로저, 타임 얼라인먼트를 위한 경사면 배플 등 스피커 곳곳에 베풀어진 창의가 대단했다.
Qln과 Signature 계보


Qln은 1977년에 설립된 스웨덴 스피커 제작사다. 사명은 설립자 라스 큐비클룬드(Lars Qvicklund)의 L과 Q, 닐스 릴예로스(Nils Liljeroth)의 N과 L을 합쳐 Qln으로 지었다. 현 수석 엔지니어이자 오너는 매츠 안데르센(Mats Andersen). 그는 1982년부터 Qln에 근무하다 2003년에 퇴사, 이후 10년 동안 스피커 컨설턴트로 일했고 2013년에 다시 복귀해 Qln을 100% 인수했다.

초창기 Qln을 빛낸 스피커는 1981년에 나온 스탠드마운트 Qln One이었다. 2웨이, 2유닛,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로, 유닛 구성은 물론 사각 인클로저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스타일에 전면 배플까지 뒤로 경사가 진 모습이 현행 시그니처 스피커와 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그니처 스피커의 뿌리가 오리지널 Oln One에 있기 때문이다.
Qln One을 계승한 첫 스피커는 1986년에 나온 Signature였다. 시그니처 계보로 따지면 Qln One이 1세대, 1986년에 나온 이 시그니처가 2세대다. 처음으로 케블라 콘 우퍼를 채택했고 덩치와 무게도 늘어났다. 주파수응답특성상 저역 하한 역시 -3dB 55Hz에서 42Hz로 낮아졌다. 무엇보다 Qln의 시그니처인 Q 보드로 인클로저를 제작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회절을 줄이기 위해 트위터 둘레에 펠트를 붙인 것도 이 2세대 시그니처부터다.

3세대 시그니처인 Classic Signature는 1989년에 등장했다. 덴마크 스캔스픽(ScanSpeak)의 케블라 콘 우퍼를 커스텀 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이 3세대 시그니처부터인데, 우퍼 서라운드 재질(고무, 폼)과 더스트 캡 디자인(불규칙, 볼록, 오목) 등을 바꿔가며 2003년까지 롱런했다.

이처럼 3세대까지 이어진 시그니처의 빛나는 전통은 2003년에 Qln이 다른 회사에 팔리면서 일단 막을 내렸다. 그러다가 매츠 안데르센이 복귀해 “Qln One과 시그니처의 빛나는 헤리티지를 계승하겠다”라며 2015년에 내놓은 스피커가 4세대 시그니처 모델인 Signature 3였다. 소프트 돔 트위터, 케블라 콘 우퍼 구성에 피라미드 인클로저, 경사면 배플, Q 보드 등 시그니처 스피커의 거의 모든 것이 10여 년 만에 부활했다.

그리고 2022년, 시그니처 5세대 모델이자 Qln 브랜드의 플래그십으로 출시된 스피커가 바로 이번 시청기인 Signature다. Qln에서도 이 스피커를 5세대(5th generation) 시그니처라고 부르는데, 4세대 Signature 3에 비해 우퍼 사이즈가 늘어났고, 볼록했던 더스트캡은 오목하게 성형되었으며, 덩치와 무게도 대폭 늘어났다. 주파수응답특성상 저역 하한 역시 -3dB 기준 38Hz까지 떨어졌다.
지금까지 언급한 Qln One 및 Signature 시리즈, 그리고 현행 Qln의 Prestige 시리즈 스피커의 출시 연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981 Qln One : 1세대
- 1986 Signature : 2세대
- 1989 Classic Signature : 3세대
- 2015 Signature 3 : 4세대
- 2018 Prestige Three
- 2019 Qln One 40th Anniversary
- 2020 Prestige Five
- 2021 Prestige One
- 2022 Signature : 5세대

한편 2023년 11월 현재 Qln 라인업은 시그니처(Signature) 시리즈와 프레스티지(Prestige) 시리즈로 나뉜다. 시그니처는 스탠드마운트 Signature 단독 구성이고, 프레스티지는 플로어스탠딩 Prestige Five, Prestige Three, 스탠드마운트 Prestige One으로 구성됐다.
Qln Signature 본격 탐구
5세대 시그니처, Signature는 한 덩치, 한 무게 하는 스탠드마운트 스피커다. 가로폭이 280mm, 높이가 448mm, 안길이가 480mm에 달하고 무게는 개당 31kg이나 나간다. 프레스티지 시리즈의 Prestige One 역시 스탠드마운트이지만 덩치(W 265mm, H 390mm, D 372mm)와 무게(14kg)에서 비교가 안된다.

Signature 스피커는 기본적으로 2웨이, 2유닛,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다. 전용 스탠드에 올라탄 이 스피커가 외모에서 풍기는 포스부터 장난이 아니다. 경사진 배플에는 1인치(25mm) 소프트 돔 트위터와 7.5인치(184mm) 케블라 콘 우퍼가 장착됐고, 역시 경사진 후면에는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와 WBT Nextgen 은도금 구리 싱글와이어링 커넥터가 달려있다.
스펙을 보면 공칭 임피던스는 8옴, 감도는 87dB, 주파수응답특성은 -3dB 기준 38Hz~30kHz를 보이며 핸들링 앰프 파워는 50~250W다.
참고로 2015년에 나왔던 4세대 시그니처 Signature 3는 7인치(177mm) 케블라 우퍼에 가로폭 265mm, 높이 370mm, 안길이 365mm, 무게 12.5kg이었으며 주파수응답특성은 -3dB 기준 42Hz~30kHz였다. 현행 스탠드마운트 Prestige One 역시 7인치(177mm) 케블라 우퍼에 Signature 3와 동일한 주파수응답특성을 보인다.

트위터는 스캔스픽의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 소프트 돔 트위터를 커스텀 해서 쓴다. Qln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후면에 꽃잎처럼 달린 6개의 네오디뮴 마그넷과 스펙 등을 감안하면 일루미네이터 D3004/660000 모델로 짐작된다. 이 트위터는 넓은 롤 타입 서라운드와 대칭 형태의 모터 시스템, 다이캐스트 알루미늄 플레이트가 특징이다.

케블라 콘 우퍼 역시 스캔스픽 유닛을 커스텀 해서 만들었다. 고순도 동선으로 이뤄진 보이스 코일이 어떤 경우에도 마그넷 갭(magnet gap) 안에 있는 언더헝(underhung) 구조가 특징. 이렇게 되면 보이스 코일과 포머, 진동판이 리니어하게 움직이는 이득이 생긴다. 여기에 구리 링(copper ring)을 마그넷 사이에 끼어 넣어 보이스 코일의 인덕턴스를 낮추는데도 성공했다. 이렇게 되면 보이스 코일이 훨씬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어 결과적으로 중역대의 다이내믹스가 좋아진다.

다음은 인클로저. 어쩌면 지금부터가 Qln과 Qln Signature 스피커의 핵심이다. 인클로저 전후와 좌우를 모두 피라미드 형태로 짠 것은 짐작하셨겠지만 인클로저의 마주 보는 면을 비대칭으로 설계함으로써 내부 정재파를 줄이고 이를 통해 중저역 재생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심지어 상판도 뒤로 경사진 설계다.
이러한 피라미드 타입의 인클로저는 유닛이 장착된 전면 배플 입장에서 보면 트위터가 낸 고음이 배플을 맞고 생기는 회절을 줄이는 이득도 있다. 회절은 배플이 좁을수록 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라미드 인클로저는 플로어스탠딩 두 모델(Prestige Three, Five)의 트위터 부근에도 베풀어졌다.

배플은 또한 옆에서 보면 뒤로 경사가 졌는데, 이는 유닛간 타임 얼라인먼트(time alignment)를 위해서다. 트위터와 우퍼에서 소리가 출발하는 지점을 동일하게 함으로써 크로스오버 주파수에서 두 유닛이 낸 소리가 사람 귀에 동시에 들리도록 한 것이다. 만약 옆에서 봤을 때 트위터와 우퍼를 똑바로 수직 정렬하면 실제로는 트위터 진동판이 우퍼 진동판보다 앞에 있어 같은 주파수라도 트위터 소리가 먼저 들리게 된다.
매츠 안데르센은 이와 관련, 과거 인터뷰에서 스피커를 오케스트라와 비교하며 타잉 얼라인먼트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오케스트라 각 악기 연주자들이 정확히 동시에 연주하지 않으면 다이내믹스라든가 포커싱, 이런 모든 것이 망가지듯 스피커 역시 각 유닛이 동시에 소리를 내지 않으면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라는 내용이다.


끝으로 지금까지 몇 차례 언급했던 Q 보드(Q-Board)다. 1984년에 개발된 Q 보드는 두꺼운 HDF 패널 2장을 점탄성 접착제(viscoelastic glue)로 붙인 것인데, Qln이 공개한 그래프를 보면 이 멀티 레이어 패널의 진동 및 공진 저감 효과가 상당하다. 보드에 가해진 진동 에너지가 점탄성 접착제를 통해 열에너지로 변환됨으로써 진동과 공진이 소멸되는 원리다. 에너지는 변환될 뿐 소멸되지 않기에 스파이크 정도로는 진동을 없앨 수 없다는 게 매츠 안데르센의 설명이다.
청음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진행한 Qln Signature 스피커 시청에는 dCS Lina 네트워크 DAC과 Lina 마스터클럭, 나그라 Classic PREAMP와 Classic AMP를 동원했다. Classic AMP는 2대를 동원, 모노 브릿지로 구성했으며 이 경우 4옴에서 200W를 낸다. 음원은 룬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아티스트 Sarah McLachlan
곡 Angel
앨범 Surfacing
보컬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무대 가운데에 또렷이 맺히는 이미지가 단번에 눈에 띈다. 내부 정재파와 회절을 대폭 줄인 당연한 전리품이다. 악기들의 입체적인 앞뒤 레이어와 무대의 깊은 공간감은 확실히 스탠드마운트 스피커의 특권. 전체적으로 전에 들었던 플로어스탠딩 Prestige Five와는 결이 다른, 단정하고 고졸한 맛이 느껴진다.
이 밖에 2개 유닛뿐인데도 음수가 부족하다거나 무대가 비었다는 느낌이 없는데 이는 두 유닛의 물성과 넉넉한 인클로저 볼륨 덕분일 것이다. 녹음 공간에서 일어난 미세한 잔향까지 들리는 것은 아무래도 Q 보드 덕분. “스피커에서는 유닛만 소리를 내야 한다"라는 매츠 안데르센의 말은 백번 옳다.
지휘자 Andris Nelsons
오케스트라 Boston Symphony Orchestra
곡 Shostakovich: Symphony No. 10 in E Minor, Op. 93
앨범 Shostakovich Under Stalin's Shadow - Symphony No. 10
무대 안쪽 깊숙한 곳에 오케스트라가 자리한 뒤 곧바로 스피커가 사라진다. Prestige Five 때도 느낀 것이지만 Qln 스피커 사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스케일 큰 무대가 펼쳐진다는 것, 음수가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입자가 무척이나 곱고 빽빽하다는 것이다.
이번 Signature에서는 호방하고 시원시원하게 음들이 나오면서도 음끝이 지저분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팀파니 연타의 탄력감과 파워 역시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3개 유닛 이상의 멀티 유닛 피커에 비해서는 음들이 다소 뭉쳐있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럼에도 이 곡의 격한 패시지에서도 폼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는 플래그십의 품격 같은 것이 전해졌다.
아티스트 Megadeth
곡 Symphony Of Destruction
앨범 Countdown To Extinction
좀 더 기어를 올렸다. 메가데스의 헤비메탈 곡이다. 일렉 베이스와 기타, 드럼이 그야말로 시청실을 찢어놓는다. 무대 가운데에서 마치 용암처럼 음들이 솟구치는데도 두 스피커는 자지러지지 않는 것은 물론 미동도 않는다.
전체적인 사운드 스테이지의 무게중심이 가슴이 벅찰 만큼 무척 낮다. 록을 이 정도로 제대로 재생하는 능력이야말로 이 스피커의 크나큰 장점이다.
아티스트 Janine Jansen
곡 Violin Concerto No.3 In F Major, RV 293 - L'autunno
앨범 Vivaldi: The Four Seasons
이번에는 재닌 얀센이 연주한 비발디 사계 가을 편이다. 바이올린이 카랑카랑 현의 질감을 잘 살려내며 깨끗한 고음을 토해냈다. 반주 오케스트라가 바이올린을 포근하게 감싸는 정위감 역시 발군.
이러한 현악 협주곡을 들어보면 Signature는 기본적으로 SN비가 높고 무대 앞을 투명하게 만들 줄 아는 스피커다. 힐러리 한의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2번에서는 빙판을 활강하는 듯한 기분 좋은 속도감과 리듬감을 만끽했다.
아티스트 Sonny Rollins
곡 I’m An Old Cowhand
앨범 Way Out West
오른쪽의 드럼과 베이스, 왼쪽의 색소폰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 Qln 스피커는 소릿결이나 음색도 솔깃하지만 이 같은 이미지나 스테이지 메이킹도 발군이다.
이 곡에서는 특히 드럼 연주가 대박이었는데, 강력하고 탄력적인 데다 깨끗하고 맑고 개운한 것이 그야말로 리얼 드러밍이라 할 만했다. 챨스 밍거스의 ‘Goodbye Pork Pie Hat’에서는 양 사이드 색소폰에서 뜨거운 입김이 훅 불어오는 것 같았다.
총평
Qln Signature는 스피커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음질 향상 특효약이 동원된 것 같다. 피라미드 인클로저와 경사면 배플이 음을 깨끗하고 풍부하게 들려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는 것이지만 Oln Signature는 이를 더욱 극한으로 몰고 갔다. 그냥 처음 듣자마자 “이게 뭔 일이야?”라고 느꼈을 정도로 그 레벨이 달랐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낸 것은 전적으로 Q 보드라고 생각한다. Qln Signature가 음악을 재생하는 동안 인클로저를 만져봤는데, 우퍼가 온 힘을 다해 열 일을 할 때에도 잔 떨림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매츠 안데르센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잔 떨림을 없애기 위해 크로스오버 부품 고정에도 큰 신경을 썼다고 한다. 맞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법이다. 스웨덴에서 건너온 이 각별한 스피커를 진지하게 청음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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