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그래픽카드 시장이 참 재밌습니다. 출중한 성능과 뛰어난 가성비를 갖춘 라데온 RX 9070 시리즈가 출시되면서 하이엔드 그래픽카드 시장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겨났고요. 게이머들은 어떤 그래픽카드를 고를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엔비디아도 배짱 장사를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한편, 9070 이후에 나올 메인스트림 라데온 그래픽카드도 하이엔드 모델처럼 뛰어난 가성비를 보여줄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지요. 제목은 라이젠인데 왜 그래픽카드 이야기만 하냐고요? 이제 CPU 이야기 할 겁니다. 다만 흥미진진한 그래픽카드 시장에 비해 CPU 시장은 참 재미가 없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인텔과 AMD의 양강 구도는 그럭저럭 유지되어 왔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대에 들어서 그 균형이 완전히 깨져버렸지요. 라이젠 9000 시리즈는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성능을 달성하면서 성공적인 업그레이드를 보여준 반면, 인텔 코어 울트라 200 시리즈 데스크탑 프로세서는 제품 브랜드를 바꾸고 핵심 타일을 TSMC 공정으로 생산하고 NPU를 넣고 하이퍼스레딩을 빼는 등, 여러 방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정작 중요한 성능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게임 성능의 경우 라이젠이 아니라 인텔의 전작인 14세대 코어 프로세서보다도 떨어져, 발전이 아닌 퇴보하는 CPU가 되버렸지요. 

그에 비해 AMD 라이젠은 다른 성능은 차치하더라도, 게임에선 인텔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왔습니다. 그 일등 공신은 역시 대용량 캐시를 수직으로 적층한 3D V 캐시지요. 3D V캐시가 달린 X3D 모델은 뛰어난 게임 성능으로 조립 PC 시장에서 항상 높은 인기를 누려왔으며, 그 인기가 너무 높은 나머지 그래픽카드 못지 않게 품귀 현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래서 CPU 시장이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두 회사가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때로는 큰 거 한 방도 날려줘야 흥미진진할텐데 한 쪽만 일반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으니 재미 없다고 해도 너무 심한 말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CPU 시장이 재미가 없는 건 인텔이 잘 못해서 그런거고, 남이사 삽질을 하건 헛발질을 하건 그건 내 알바 아니라는 것 마냥 AMD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AMD는 작년 여름에 젠5 아키텍처의 라이젠 9000 시리즈 프로세서를 출시한데 이어, 11월에는 거기에 3D V 캐시를 적층한 라이젠 7 9800X3D를 출시해 압도적인 게임 성능을 과시했습니다. 11월에 나온 건 9800X3D 하나 뿐이니 이제 남은 건 뭐겠습니까? 더 많은 코어를 지닌 하이엔드 CPU에 3D V 캐시를 넣는 것이죠. 그래서 나온 것이 이제 정식 출시된 16코어 32스레드의 라이젠 9 9950X3D와 12코어 24스레드의 라이젠 9 9900X3D입니다.  

라이젠 9 9950X3D와 라이젠 9 9900X3D의 기본 구성은 라이젠 7 9800X3D와 같습니다. CPU 아키텍처는 젠5를 사용했습니다. AMD 젠5 아키텍처에서 무엇이 바뀌었고, 그 성능이 어떤지는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이제는 AI PC 시대. AMD 2024 테크데이 https://gigglehd.com/gg/16216341

AMD 젠5, 라이젠 9000, 스트릭스 포인트, 칩 레이아웃 등의 딥 다이브 https://gigglehd.com/gg/16265866 

X 시리즈의 본론. 라이젠 9 9950X, 라이젠 9 9900X https://gigglehd.com/gg/16330705

AMD의 큰 그림. 라이젠 7 9700X, 라이젠 5 9600X https://gigglehd.com/gg/16303691

라이젠 9000X3D 시리즈는 젠5 아키텍처의 코어 다이인 CCD 위에가 아니라 그 아래에 대용량 캐시를 깔아두는 2세대 3D V 캐시를 사용합니다. 1세대 3D V 캐시는 CPU 코어 위에 캐시 메모리를 쌓아 용량을 늘렸으나, 코어에서 발생하는 열이 히트스프레더에 바로 전달되지 못해서 클럭을 높이는 데 제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세대 3D V 캐시는 캐시를 코어 다이 아래로 옮겨, 코어의 열을 히트 스프레더에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X3D 프로세서가 게임 성능은 뛰어나도 다른 분야에서는 성능이 떨어졌던 것과 달리, 높은 클럭 덕분에 게임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두루 높은 성능을 냅니다. 

여기까지는 라이젠 7 9800X3D의 성능 테스트에서 이미 소개했던 내용입니다. 

믿고 있었다고 X3D. AMD 라이젠 7 9800X3D https://gigglehd.com/gg/16668422

그러니까 이번에 나온 라이젠 9 9950X3D와 라이젠 9 9900X3D는 젠5 아키텍처를 사용하고, 2세대 3D V 캐시로 게임 성능을 높였으면서도 높은 클럭을 유지할 수 있어 게임 외에 다른 부분의 성능 역시 뛰어나야 한다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더 단순하게 말하면 라이젠 9 9950X3D의 일반 CPU 성능은 라이젠 9 9950X와 같아야 하고, 게임 성능은 라이젠 7 9800X3D 수준이어야 된다는 소리죠. 이쯤 되면 굳이 테스트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실제 성능이 어떨지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테스트에 사용한 CPU입니다. 라이젠 9 9950X3D와 라이젠 9 9900X3D 중 라이젠 9 9950X3D를 테스트했습니다. 

인텔 14세대 코어 프로세서는 이제 구형이고, 코어 울트라 200 시리즈는 게임 성능에서 경쟁력이 전혀 없다고 판단해서 굳이 테스트에 넣지 않았습니다. 정 궁금하시다면 기존에 올렸던 글을 참고하세요. 굳이 라이젠 9 9950X3D까지 등장하지 않아도, 기존 제품 선에서 다 정리가 되니까요.

믿고 있었다고 X3D. AMD 라이젠 7 9800X3D https://gigglehd.com/gg/16668422

만들다 말았나... 인텔 코어 울트라 9 285K https://gigglehd.com/gg/16610237

AMD 라이젠 9 9950X3D 실물 사진 

박스 전면

박스 뒷면

박스 구성. TDP 170W의 고성능 모델이라 번들 쿨러는 없습니다. 

CPU 전면. AM5 소켓 그대로라 기존 제품과 생김새도 똑같습니다. 달라진 건 라이젠 9 9950X3D라는 이름 뿐. 

라이젠 9 9950X3D의 CPU-Z 정보 

테스트 환경

테스트에는 AMD에서 제공한 애즈락 X870E 타이치 메인보드와 DDR5-6000 28-36-36-96 32GB 듀얼채널 메모리, 그래픽카드는 PALIT 지포스 RTX 5080 GAMINGPRO D7 16GB 이엠텍, 수냉 쿨러는 MSI MEG 코어리퀴드 S360, 파워는 MSI MEG Ai1300P PCIE5 80PLUS PLATINUM를 사용했습니다. 또 윈도우 11 24H2는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 PCIe 4.0 M.2 SSD에 설치하고 게임은 SATA 6Gbps SSD에 저장해서 진행했습니다. 

순수 성능은 라이젠 9 9950X 수준이고요

2세대 3D V 캐시 도입 이전까지, X3D 프로세서는 게임 전용 프로세서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게임 성능은 분명 높지만 CCD 위를 덮은 캐시 메모리 때문에 X 시리즈 고성능 프로세서보다 클럭이 낮았고, 그만큼 일반 작업 성능에서는 떨어지는 성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세대 3D V 캐시에서는 캐시 메모리의 적층 위치를 바꿔, X 시리즈 프로세서와 같은 클럭으로 작동이 가능해지면서 더 이상 게임 원툴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 점은 라이젠 9 9950X3D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용량 3D V 캐시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CPU 성능은 라이젠 9 9950X와 동급인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세부적인 테스트를 뜯어보면 그래도 라이젠 9 9950X가 더 높게 나오는 상황이 많긴 하지만, 전 세대 X3D 프로세서처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CPU 성능

게임 성능은 라이젠 7 9800X3D과 같아요

라이젠 9 9950X3D의 게임 성능은 라이젠 7 9800X3D와 발을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3D V 캐시가 없는 프로세서와의 성능 격차를 보면 역시 X3D 시리즈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세부적인 항목을 따져보면 두 프로세서의 차이가 드러나는데요. 많은 코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게임에서는 라이젠 7 9800X3D가 조금 더 높은 성능을 보여주고, 속칭 'CPU 코어빨'을 많이 타는 게임에서는 16개에 달하는 코어에 대용량 3D V 캐시까지 추가된 라이젠 9 9950X3D가 더 나은 성능을 뽑아냅니다. 다만 게임을 보고 9800X3D와 9950X3D 중에 맞는 CPU를 고르라는 할 정도로 차이가 크게 나는 건 아니고요. 종합적으로는 뛰어난 게임 성능에 추가로 CPU의 기본 성능까지 앞선 라이젠 9 9950X3D가 당연히 더 나은 선택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게임 성능

전력과 온도 모두 착해

2세대 3D V 캐시를 도입하면서 클럭을 높였고, 라이젠 9 9950X3D의 TDP는 라이젠 9 9950X와 같은 170W입니다. 다만 실제 전력 사용량은 라이젠 9 9950X가 더 높게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라이젠 9000X 시리즈가 더 높은 성능을 내도록 튜닝된 제품이다보니, 전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다 쓰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온도 역시 높게 나왔다고 보여집니다. 바꿔 말하면 라이젠 9 9950X에 못지 않은 성능을 더 낮은 전력과 더 낮은 온도로 쓸 수 있는 CPU가 라이젠 9 9950X3D라는 말 되겠습니다. 

전력 사용량/온도

AMD 라이젠 9 9950X3D

라이젠 9 9950X3D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성능을 보여 주었습니다. 젠5 아키텍처의 16코어 32스레드 구성은 라이젠 9 9950X처럼 뛰어난 연산 성능을 보여주며, 여기에 탑재된 2세대 3D V 캐시는 라이젠 7 9800X3D에 필적하는 현 세대 최고의 게임 성능을 제공합니다. 그 댓가는 가격입니다. AMD 라이젠 프로세서 중에서 가장 비싼 699달러거든요. 하지만 플래그쉽 제품이 비싼 건 당연합니다. 플래그쉽 그래픽카드는 이보다 훨씬 비싼 몇 백만원에 팔리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것 하나면 어떤 분야에서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살 수 있는 가격은 아니지만, 최고란 원래 그런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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