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들어있지 않지만
문배나무 향이 나는 술
장인이 만든 술에는 특별한 마법이 있다. 위스키에서 느껴지는 바닐라향, 와인에서 나는 다양한 향이 그렇다. 한국에도 이런 술이 있다. 배를 넣지 않았지만 ‘문배나무’의 향이 난다는 문배주다.

새콤한 배향과 깔끔한 마무리, 문배주에는 맛뿐만 아니라, 이 술을 빚는 방법 즉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대를 이은 노력이 담겨있다. 그 비밀을 찾아 김포를 향했다.
평양 최대의 양조장 서울에 내려오다

문배주는 원래 평안도 지역에서 전해 내려 오는 술이다. 독특하게도 쌀이 아닌 ‘메조’와 ‘수수’를 사용하는 술이다. 술을 빚고, 그 위에 또 술을 더하는 방식을 여러 번 반복하여 맛과 향을 깊게 하고, 증류를 하여 높은 도수로 만들고 또 최소 1년은 숙성하는… 그야말로 장인만이 만들 수 있는 술이다.

문배주는 많은 전통주들의 제조방법이 사라졌던 일제강점기에도 그 명맥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바라고 바라던 해방 이후 문배주는 평양에서 가장 잘 나가는 양조장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말이다.
양조장을 닫을 것이냐, 문배주를 잃을 것이냐

당시 문배주를 만드는 이는 ‘이경찬’ 선생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다시 한번 문배주 양조장을 세우고 술을 빚으려 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다. 1965년 박정희 정부의 ‘양곡관리법’으로 인하여 곡식으로 만드는 술이 전면 금지가 된 것이다.

증류주를 만들 수 있는 문배주 양조장은 일반 희석식 소주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경찬 선생은 “희석식 소주는 술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양조장의 문을 닫는다.
그리고 문배주를 빚는 방법을 아들에게 전수한다.
5대를 이어가는 무형유산의 의미

시간이 지나 1986년 경주교동법주, 면천두견주, 문배주가 역사와 우수성을 인정받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극한다. 재미있는 점은 의외의 공간에서 이 술을 반겼다는 것. 바로 1990년 남북총리회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만찬주가 되었는데. 북한의 인사들이 문배주를 반가워하고 맛있게 마신 것이다.
그들은 평양 쪽에서도 사라진 전통술이 이곳에서 이어진다는 것을 신기해하였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대를 이어가며 문배주를 발전시키는 것. 이경찬 선생(3대)이 빚던 문배주는 아들 이기춘 명인(4대)에게 그리고 현재의 이승용 대표(5대)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이승용 대표도 아들에게 문배주 빚는 방법을 전수하고 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맛과 향이 깊어지는 문배주. 오늘은 평범한 술이 아닌 이야기와 향기가 가득한 문배주를 마시며 시대에서 시대로 전달되는 것들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공 :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