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26년 첫 번째 시간여행자의 증언이다. 그는 11년 만에 다시 출시된 캪틴큐를 마셨고 미래 여행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날 숙취가 없는 술이라고 해서 이걸 마셨다가 다다음 날에 불시착했으며, 통과해 버린 어제를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직 달력을 볼 정도의 정신이 돌아오진 않았다.
그래, 호기심에 이걸 마시고 말았다.
캪틴큐. 1980년대에 한국에 나폴레온과 함께 국산양주란 무엇인가를 만들어준 녀석. 값싸고 독한 도수에 많은 젊은이들의 도전을 이겨낸 녀석. 단종된 지가 꽤 되었는데도 아직도 어딘가에 팔리고 있으며, 이걸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전설의 한국 술이다.
나 또한 동네 치킨집 선반에 올려져 있는 캪틴큐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나, 치킨이 물려서 포기하던 찰나에 이 소식을 들었다. ‘전설의 양주 캪틴큐 11년 만에 재출시’. 심장이 떨리지 않는가? 사실 부정맥일 수도 있으니 건강검진을 받기를 권한다.
캪틴큐의 보물상자. 음료 전문 에디터인 나에게는 이게 원피스고, 만기 된 통장이고, 역사가 나에게 선물해 준 위대한 타임캡슐이다.
19,800원의 가격에 캪틴큐 2병, 스댕컵(스테인리스라고 하면 맛이 떨어진다), 캪틴큐 기념주화가 들어있다. 초 한정판이라는 1.5돈짜리 은화가 나와서 럭키비키 품의 사표를 드디어 꺼낼 때가 되었나 싶었는데. 은 1돈은 팔면 만원 정도라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오늘따라 술이 달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설의 술 캪틴큐가 있다. 과거에 럼향만 첨가했던 시절과 달리 파나마산 럼원액이 99% 들어있다. 우리 선장님이 유학을 다녀오신 거다.
잘은 몰라도 럼의 세계에서 너는 어디 출신이냐, 원액이 얼마나 들었냐, 마지막으로 어떤 오크통에서 숙성되었냐가 술쟁이들 사이에서는 면접 단골질문처럼 나오는데. 선장님은 유학은 물론 버번 오크통, PX 셰리와인 오크통까지 수료(숙성) 하시고 돌아왔다. 경력과 학벌세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력서를 잘 썼다고 맛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선조들이 이 술을 마시고 수많은 미래 여행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가. 나는 조심스럽게 잔에 캪틴큐를 따르고, 향을 맡고, 한 모금 살짝 마셔보았다. 잘 있어라 세상아.
의외로 괜찮다. 이 한 몸 알콜램프가 되겠다는 각오로 마셨는데, 시원 상큼한 과일 같은 향도 나고, 마시면 달달하고 부드러운 향이 입안에 감돈다. 삼키고 목구멍부터 따땃하기로는 겨울철 전기장판 못지않다. 이래서 럼을 마시는 친구들이 캐스크(오크통), 캐스크 거리는구나를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제조과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맛이 난다. 신입생 환영회 술 취한 선배가 품 안에서 꺼낸 뭔가 신기한 술의 맛이고. 쌀쌀한 밤 캠프파이어를 하며 한 잔 마시는 노곤한 느낌이 담겨있다. 이게 한국의 양주구나.
그렇다고 이 캪틴큐가 조니워커 저리 가라, 발렌타인 게섰거라는 말은 아니다. ‘저렴한 가격에 준수한 맛’을 냈다. 이 말이 무엇이냐. 바로 지갑도 미각도 만족시키는 섞어마시기의 술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가까이 냉장고를 열었다. 펩시 제로 라임과 섞어서도 마셔보고, 제티와도 섞어서 마셔보고, 무알콜 맥주에도 섞어서 마셔보았다. 뭘 섞어도 이게 알콜과 향이 받쳐주니까 맛있다, 맛있다 했는데 그때 멈췄어야 했다.
캪틴큐의 본체는 디자인도, 맛도 아닌, 무절제한 음주가 만들어주는 숙취다.
선조들이 그리 경고했거늘, 싸고 좋다고 마시다가 역사는 반복되고 말았구나. 비록 잃어버린 어제를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시간과 맞바꿀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아니 경험하지 못한 90년대 00년대 감성을 마셔본 것만으로도 나는 미래로도, 과거로도 시간여행을 한 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캪틴큐는 월말에는 제품만 9,900원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따뜻한 소식 찾기 어려운 2026년 연말의 분위기 속에서 캪틴큐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나누며, 맛을 즐기며 보내는 따뜻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너무 많이 마시면 2027년에 불시착할 수도 있으니. 조금씩 천천히 즐겨라.
<제공 : 마시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