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영국 여행의 기대감을 안고 런던으로 향했다. 매력적인 비행을 선사한 버진애틀랜틱부터 두 발로 걸으며 마주한 런던의 여름, 그리고 기자가 추천하는 공간들까지. 낯선 도시에 첫발을 내딛는 여행자를 위해 꾹꾹 눌러 담은 작은 안내서다.
여정의 조각이 되는 비행, 버진애틀랜틱
2026년 3월 29일, 인천과 런던을 잇는 하늘길에 새 얼굴이 등장했다. 강렬한 붉은색 꼬리날개와 유니폼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버진애틀랜틱이다. 낯선 이름일 수 있는데, 대한항공이 한국의 ‘프리미엄 국적기’이듯 버진애틀랜틱도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프리미엄 FSC(풀서비스) 항공사다.
현재 인천-런던 노선을 매일 1회 운항하며 여행자를 런던으로 안내하고 있다. 게다가 스카이팀(SkyTeam) 소속이라 대한항공 코드셰어를 이용하면 하루 2편의 선택지가 생긴다. 마일리지 적립의 폭도 넓다. 버진애틀랜틱의 자체 프로그램인 ‘플라잉 클럽(Flying Club)’은 물론, 대한항공이나 델타항공 등 다른 항공사의 마일리지로도 적립(항공권 예약 등급에 따라 적립률 상이)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플라잉 클럽의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제도다. 수요에 따라 필요 마일리지가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운과 타이밍이 따라준다면 놀라운 가성비로 런던행 항공권을 거머쥘 수 있다.
본격적인 런던행 비행에 올랐다. 한국 노선에 투입되는 기종은 장거리 비행에 최적화된 B787-9 드림라이너다. 이번 여정에서는 이코노미와 어퍼 클래스(비즈니스석) 사이에 있는 ‘프리미엄(Premium)’ 클래스를 선택했다. 키 180cm 이상의 성인이 앉아도 다리 공간이 남을 만큼 넉넉한 여유로움을 자랑한다.
여기서 기억해 두면 좋은 실전 팁 하나. 프리미엄 클래스의 맨 뒷좌석인 25열을 선점하면, 뒷사람을 의식할 필요 없이 등받이를 끝까지 젖힐 수 있어 비행의 만족도가 더욱 상승한다. 또 항공기의 뛰어난 공기 순환 시스템 덕분에 건조함이 덜한 데다 프리미엄 좌석은 탑승 인원이 적어 14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비행도 거뜬하다.
비행의 즐거움, 기내식 역시 기대 이상이다. 한국 노선을 위해 준비한 한식 메뉴들이 돋보인다. 담당 승무원은 매콤한 낙지덮밥을 추천했지만, 내외국인 할 것 없이 가장 인기가 좋다는 ‘김치볶음밥과 치킨’을 골랐다. 결과는 성공. 식당 못지않은 감칠맛이 훌륭했고, 사이드로 제공된 열무 샐러드는 레스토랑에서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퀄리티가 높았다. 한국인 탑승객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공을 들였는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승무원들의 소통 방식이었다. 고객을 깍듯하게 모시는 정중한 서비스 못지않게, 버진애틀랜틱 특유의 친근한 다가옴은 장거리 비행의 소소한 즐거움이 돼 줬다. 마치 비행기 안에서부터 이미 첫 번째 영국을 만난 듯한 기분이랄까. 자유롭게 간식을 즐길 수 있는 기내 스낵 바 ‘원더월(Wonderwall)’에서 승무원과 가벼운 스몰톡을 나누며 유용한 현지 여행 정보를 얻고,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식 영어와는 또 다른 오리지널 영어 발음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남은 시간은 기내 엔터테인먼트나 미리 스마트 기기에 담아온 영상을 보며 채우면 그만이다. 이때 원더월에서 가져온 짭조름한 감자칩과 주류를 곁들이면 하늘 위 영화관이 완성된다. 버진애틀랜틱의 로고가 새겨진 새콤한 ‘블러디 매리(Bloody Mary) 믹스’와 감자칩의 조합이 1순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Exploring London with Virgin
의외로 화창한 런던의 여름
비행기를 벗어나 마주한 런던, 가장 먼저 걷기 좋은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흔히 영국의 날씨 하면 우중충한 잿빛 하늘과 잦은 비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런던의 여름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의 찜통더위에 비해 훨씬 시원하고 쾌적했다. 7월 초에도 맑고 화창한 날들이 이어졌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템스강변을 걷고, 좁은 골목길 사이 숨겨진 로컬 펍(Pub)과 공원을 발견하는 재미를 한껏 누렸다. 참, 무더위가 꺾이고 선선한 가을 날씨로 변하는 9~10월도 런던 여행의 적기로 꼽힌다.
랜드마크 따라잡기, 빅 벤~버킹엄궁전 코스
임뱅크먼트(Embankment)역에서 런던의 아침을 연다. 여기서부터 넉넉잡아 2~3시간이면 런던을 상징하는 것들을 두루 눈에 담을 수 있다. 먼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템스강,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런던 아이와 첫인사를 나누게 된다. 발걸음을 조금 더 옮기면 빅 벤(공식 명칭은 엘리자베스 타워)이 자태를 드러낸다. 1859년에 완성된 거대한 시계탑은 15분마다 종소리를 울려 퍼뜨린다. 귓가를 맴도는 종소리와 함께 웨스트민스터궁(Palace of Westminster)을 보고,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처칠 조각상과 눈을 맞추면 영국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랜드마크가 밀집한 거리를 지나 세인트 제임스 공원(St James's Park)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펠리칸, 오리 등 동물 친구들이 반겨주고, 포근한 햇빛 아래 멍하니 앉아 있으면 런던의 일상을 만끽할 수 있다. 푸른 공원을 벗어나 이윽고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에 닿는다. 궁전의 파사드만 눈에 담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영국 왕실의 오랜 위엄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기념사진을 남기다 보면 어느덧 오전 10시 30분, 산책의 하이라이트인 근위대 교대식이 다가온다. 이때 여행자는 즐거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 붉은 제복을 입은 근위대와 버킹엄 궁전을 한 프레임에 담고 싶다면 궁전 앞에서 계속 기다려야 하고, 행진의 시작점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포착하고 싶다면 세인트 제임스궁(St James's Palace)에서 기다리는 편이 낫다.
선선한 바람 타고 저녁 산책, 타워 브리지~세인트폴 대성당
쾌적한 런던의 여름밤을 즐기는 완벽한 방법이 있다. 타워 브리지(Tower Bridge)가 한눈에 담기는 버틀러스 워프(Butler's Wharf)에서 여유롭게 식사하고, 템스강변을 따라 걷는 산책 코스다. 시원한 강바람과 짙푸른 하늘까지 더해지면 몇만 보쯤은 거뜬히 걸을 수 있다.
타워 브리지는 런던의 시간을 관통하는 낭만이다. 19세기 후반 이스트엔드의 상업 팽창과 런던항의 선박 통행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1894년 거대한 도개교로 탄생했다. 개통 당시 인근 런던 탑과 조화를 이루는 초콜릿 브라운의 옷을 입었던 다리는 청량한 블루와 화이트로 옷을 갈아입으며 도시의 빛나는 상징이 됐다. 장엄한 고딕풍 외관을 가로지르는 하이 레벨 워크웨이는 한때 사람들의 잰걸음이 오가던 통로였다. 이제는 템스강의 낭만을 발아래로 두는 전망대가 되어 여행자의 마음을 흔든다.
강변을 따라 즐겁게 걷다 보면 어느새 런던교(London Bridge)에 다다른다. 이곳에 멈춰 서서 마주한 템스강과 타워 브리지의 모습도 머릿속에 각인된다. 발걸음을 재촉하면 세인트폴 대성당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런던 대화재 이후 재건된 이곳은 거대한 돔을 얹고 있어 도심에 성스러운 무게감을 더한다. 런던의 밤바람에 좀 더 기대고 싶다면 웨스트민스터 지역으로 넘어가면 된다. 금빛으로 물든 빅 벤과 웨스트민스터궁이 하루를 끝내는 찬란한 마침표가 돼 준다.
Editor’s Pick
고혹적인 식료품 가게, 헤로즈
런던의 부촌 나이츠브리지(Knightsbridge)에 자리한 헤로즈(Harrods)는 고급 백화점의 대명사다. 동시에 미식가들의 성지다. 화려한 타일과 샹들리에로 장식된 ‘푸드 홀(The Food Halls)’은 프레시 마켓 홀, 초콜릿 홀, 로스터리 & 베이크 홀 등으로 나뉘어 있으며, 전 세계의 고급 식료품, 프리미엄 디저트, 차, 신선식품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파인다이닝급 요리를 우아한 분위기에서 맛볼 수 있는 다이닝 홀이 더해져 고혹적인 미식 세계를 완성한다.
버진의 색감을 담은 히든 그루브
런던의 힙한 거리를 꼽는다면 쇼디치(Shoreditch)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 버진의 도발적인 감각과 매혹적인 색채가 깃든 버진 호텔이 있있으며, 그 내부에는 힙스터들의 아지트 히든 그루브(Hidden Grooves)가 자리한다. 은밀한 리듬이 흐르는 바에서는 1970년대 전설적인 앨범들에 영감을 받은 시그니처 칵테일을 맛볼 수 있다.
영국식 매콤함, 디슘
굽고, 튀기는 요리가 물릴 때쯤, 강렬한 향신료의 품으로 뛰어든다. 디슘(Dishoom)은 뭄바이의 길거리 음식부터 가정식까지, 인도 요리의 DNA를 영국으로 옮겨 심었다. 스모키한 그릴 요리와 매콤한 커리, 새콤한 라씨 등 다채로운 맛을 온종일 즐길 수 있다. 런던에도 여러 곳이 있는데, 기자가 추천하는 곳은 재즈 바 분위기의 켄싱턴(Kensington) 지점이고, 치킨 루비(치킨 커리)와 마살라 프론(새우구이)는 한 번쯤 맛봐야 할 메뉴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