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참 많다. 빨갛게 익은 감이나 사과, 책, 낙엽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가을을 대표하는 것들을 가만히 떠올리다 보면, 향기와 관련된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잘 익은 사과 향기, 오래된 책 냄새, 촉촉이 젖은 낙엽 냄새. 특히 가을에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특유의 향기가 있어, 어쩐지 기분을 멜랑꼴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가을에 어울리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커피’다. “얼음 가득!”을 외치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가을이 다가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하고 향기로운 커피 한 모금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직접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는 드립 커피는 과정은 조금 번거로울지 몰라도 가을에 단연 어울리는 커피라고 할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도, 밖에서 사 먹는 커피도 질렸다면 이번 가을에는 향기로운 취미 하나 가져보는 게 어떨까?
■ 핸드 드립이란?
먼저 드립 커피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드립 커피(Drip Coffee)란 필터에 곱게 빻은 커피 원두를 담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드는 커피다. 드립(Drip)이라는 영어 단어가 ‘방울방울 흐른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이름과 퍽 어울리는 셈이다. 기계로 압력을 가해 20~30초 미만의 빠른 속도로 ‘샷’을 뽑아내는 에스프레소와 달리, 핸드 드립은 직접 원두를 갈아 필터에 담고 끓인 물을 천천히 부어가며 커피를 추출해야 한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물을 붓는 방법이나 속도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여러모로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핸드 드립에 빠져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한 번 맛보면 중독될 수밖에 없는 핸드 드립의 매력에 빠져 보자.
■ 핸드 드립 준비하기
1. 커피 필터
드립 커피를 직접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도구들이 필요할까? 드립 커피는 필터를 사용한다는 점 때문에 필터 커피(Filter Coffe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만큼 필터는 핸드 드립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먹는다면 일반적으로 종이 필터, 즉 여과지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커피여과지는 일회용으로, 대중적인 만큼 가장 편리하고 저렴하다. 다만, 너무 저렴한 것은 커피를 내리는 도중 곧잘 찢어지기도 하니 적당히 알려진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종이 필터는 백색과 황색이 있는데, 백색은 표백된 것이고 황색은 표백되지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표백되지 않은 것을 많이 사용하지만, 특유의 ‘종이냄새’ 때문에 백색 여과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만약 사용하고 있는 드립세트가 있다면 해당 브랜드에 맞는 여과지를 사용하도록 하자. 드리퍼의 모양에 따라 여과지가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칼리타 커피 필터는 일본의 대표적인 커피 용품 브랜드 칼리타에서 제조한 것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형태의 종이 필터이다. 이 밖에 주름진 형태의 여과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종이 필터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커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융드립 커피는 융, 즉 천으로 내린 커피다. 종이 필터와 달리 커피의 오일 성분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추출되어 더욱 진하고 향이 풍부하지만, 커피를 내리는 방법이나 필터 보관 및 관리가 까다롭다. 또한, 금속으로 만든 콘 필터는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며 세척이나 관리도 편리하지만, 미세한 가루가 잘 걸러지지 않을 수 있다.
2. 드리퍼 & 서버
드리퍼란 필터를 받쳐주는 도구를 말한다. 언뜻 보면 단순히 커피를 담는 용기로 보이지만, 이 드리퍼의 형태에 따라 커피 맛이 크게 좌우된다. 소재는 주로 플라스틱, 도자기, 동이 사용되는데 플라스틱 드리퍼는 가격이 저렴하고 투명해 물줄기를 조절하기가 편리하지만, 보온성과 내구성이 떨어진다. 도자기, 도기 드리퍼는 보온성이 뛰어나고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지만, 열전도율이 낮아 미리 예열해줘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동 드리퍼는 보온성과 열전도율이 모두 뛰어나지만, 가격이 비싸고 관리하기가 까다롭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되는 드리퍼는 크게 네 가지 종류이다. 구조는 비슷하지만 리브(홈)의 모양과 추출 구멍의 개수 등이 다른데, 먼저 ‘멜리타’는 독일의 멜리타 벤츠가 발명한 드리퍼로 드리퍼의 시초격이다. 굵고 가파른 리브에 추출 구멍은 하나로, 추출 시간이 길어 진한 풍미의 커피를 내릴 수 있다. 멜리타를 본떠 만든 것으로 알려진 ‘칼리타’ 드리퍼는 멜리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리브가 더 완만하고 세 개의 추출 구멍이 일렬로 나 있다. 구멍이 늘어난 만큼 추출 시간이 빠르고 더욱 부드러운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물 빠짐이 일정하고 초보자도 안정적으로 커피를 내릴 수 있어 입문용으로 적절하다.
다음으로 ‘고노’는 멜리타, 칼리타와 달리 원뿔형으로 생긴 드리퍼다. 멜리타처럼 하나의 추출 구멍을 갖고 있지만, 그 크기가 훨씬 크다. 리브는 중앙부터 하단까지 굵게 나 있으며 커피를 내리는 방식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하리오’ 역시 원뿔 형태의 드리퍼다. 고노와 같이 하나의 큰 추출 구멍을 갖고 있는데, 리브의 모양이 회오리처럼 휘어져 있어 추출 시간이 빠르다. 물을 붓는 속도를 통해 커피맛(농도)을 조절할 수 있으며, 대체로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만약 핸드 드립에 막 입문하는 초보자라면 칼리타, 하리오를 추천한다.
다음으로, 드리퍼 밑에서 추출된 커피를 담는 ‘서버’는 보통 드리퍼와 세트로 되어 있다. 드리퍼와 잘 맞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로 구매할 경우 같은 브랜드의 것을 구매하는 것이 가장 수월하지만, 각 제조사마다 디자인이나 입구 및 손잡이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른 제조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따로 구매한다면 사이즈를 잘 보고, 갖고 있는 드리퍼와 호환되는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서버는 유리 소재로 된 것을 주로 사용하며 눈금 표시가 되어 있는 제품이 편리하다.
칼리타 드립세트 102LD는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커피 용품 브랜드 칼리타의 대표적인 드립세트로, 보온이 잘 되는 도자기 드리퍼와 드리퍼 받침대, 500cc 드립서버, 계량스푼, 필터(여과지)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에서 사용하기 적합한 1~4인 용량이며,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해 입문용으로 좋다.
100년 전통의 유리전문업체 하리오에서 만든 V60 드립세트는 투명한 플라스틱 드립퍼와 700mL 드립서버, 계량스푼, 필터(여과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리오 특유의 원추형 필터와 나선형 리브를 통해 융 드립에 버금가는 맛을 낸다고 한다. 브라운과 레드 컬러가 있으며 손잡이에 굴곡이 있어 잡기 쉽다. 칼리타와 함께 입문용으로 좋은 제품.
휴레드의 빈플러스 마이드립 카라페 파인 드립세트는 서버와 드리퍼가 일체형인 제품이다. 마이크로 콘 필터를 사용해 커피의 미분을 최소화했으며, 오일 성분을 흡수하지 않아 더욱 깊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1~3인 용량의 서버와 유리 스탠드, 콘 필터, 계량스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던하고 깔끔한 디자인 역시 장점이다.
3. 드립포트
핸드 드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정함’이라고 한다. 커피를 추출할 때 물줄기의 굵기와 속도가 일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같은 사람이 같은 원두로 내리는 커피라도 이 물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하니 중요할 수밖에 없다. 드립포트는 바로 이 ‘물줄기’를 결정하는 도구다. 뜨거운 물을 드리퍼에 붓는 주전자인데, 일반 주전자에 비해 입구가 길고 좁아 물줄기를 조절하기가 편리하다. 용량은 700~1,200mL로 다양한데, 제품 무게는 물론 물을 담았을 때 무게까지 고려해서 적당한 크기를 선택해야 한다. 스테인레스와 동 소재가 주로 사용되며 스테인레스의 경우 직화가 가능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물을 따로 가열한 뒤 옮겨 담는 것이 좋다. 그을림이나 내구성의 문제도 있지만, 가열 시 손잡이가 매우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따로 끓인 물을 드립포트에 옮겨 담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해 최근에는 직접 가열할 수 있는 제품도 출시되어 있다.
지티빈스의 G-Drip은 전원을 연결해 물을 가열하고 핸드 드립까지 편리하게 끝낼 수 있는 전기 드립포트다. 안전을 위해 물 한계선이 표시돼 있고 물이 끓으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며, 손잡이도 뜨거워지지 않기 때문에 바로 들어 커피를 내리면 된다.
제니스코 드립포트는 물줄기 조절이 쉬워 핸드드립에 입문하는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내구성이 좋은 304 스테인레스 소재를 사용해 외관 변형이 없고, 보관이나 관리하기에도 편리하다. 또한, 듀얼 손잡이를 적용해 뜨거운 물을 담아도 손이 데지 않는다.
4. 그라인더
그라인더는 원두를 갈아주는 도구다. 카페에서는 보통 전동 그라인더를 사용하지만, 집에서 한두 잔씩 핸드 드립을 즐길 경우에는 수동으로 원두를 가는 ‘핸드밀’을 많이 사용한다. 원두를 넣고 마치 맷돌을 돌리듯이 핸들을 돌려 깎는 방식이다. 물론 전동 그라인더에 비해 균일하게 갈리지는 않지만, 달그락거리며 원두가 갈리는 느낌이 아주 기분 좋다. 한편, 드립 커피에는 원두의 분쇄도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드립 커피용 원두는 에스프레소용 원두보다 굵게 가는 것이 보통이며, 곱게 갈수록 진한 커피가 추출된다. 핸드밀을 포함한 대부분의 제품은 분쇄도를 직접 조절할 수 있으니, 여러 번 내려보면서 내 입맛에 꼭 맞는 분쇄도를 찾아보자.

매번 원두를 직접 가는 것이 귀찮다면 카페 등 원두 분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서 원두를 구매하거나 가정용 전동 그라인더를 구매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가격도 저렴하고,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는 가정용 전동 그라인더가 많이 출시되어 있다.
■ 핸드 드립 내려보기
핸드 드립에 필요한 준비물을 모두 갖추었다면 이제 직접 커피를 내려보자. 핸드 드립은 각자의 취향이나 준비한 도구의 종류에 따라 그 방식이 천차만별이고 자세히 설명하자면 끝도 없지만, 여기서는 가장 기본적인 핸드 드립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추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정함’이다. 일정함을 유지하도록 신경 써서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보자.
1. 먼저 분쇄한 원두를 준비한다. 드립 커피에 사용되는 원두는 로스팅 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신선한 원두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2. 물을 끓이고, 핸드 드립에 사용할 도구에 먼저 물을 부어 데워준다. 드립 커피는 온도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드리퍼와 서버, 드립포트는 물론 커피를 담을 잔까지 데워줘야 한다.
3. 서버 위에 드리퍼를 얹은 다음 종이 필터를 놓고, 그 위에 갈린 원두를 평평하게 담는다. 원두는 한 잔을 기준으로 10~20g이 적당하다.
4. 먼저 커피가 충분히 우러나오도록 뜸을 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드립포트를 사용해 커피 전체에 골고루 물을 붓는다. 이때 물 온도는 90도 정도가 좋은데, 쓴 맛을 내고 싶다면 약간 더 뜨겁게, 신 맛을 내고 싶다면 약간 덜 뜨겁게 한다. 87~93도 사이가 적당하다.
5. ‘뜸 들이기’, 혹은 ‘불림’이라고 하는 이 과정에서 원두가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커피빵’이 생겨난다. 원두가 신선하고, 불림이 잘 이루어질수록 봉긋하게 솟아오른다.
6. 불림은 30초 정도 진행한다. 서버에 커피가 몇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면 불림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커피를 내린다. 일정한 굵기와 속도를 유지하면서 둥글게 물을 부어준다.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그리고 다시 안쪽으로 원을 그리며 추출하면 된다.
7. 추출은 1~3차 가량 진행하는데, 모든 과정은 3분을 넘지 않도록 한다. 물을 조금씩 부어 느리게 추출하면 커피가 진하고, 물을 굵게 부어 빠르게 추출하면 연해진다.
8. 한 잔을 기준으로 추출량은 120~150ml 가량이다. 추출이 끝나면 드리퍼를 치우고, 미리 데워둔 컵에 커피를 담아 음미한다.
기획, 편집 / 다나와 정도일(doil@danawa.com)
글, 사진 / 테크니컬라이터 박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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