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에서 나가사키까지의 비행시간은 80분. 비행기가 나가사키에 근접하자 복잡하게 굴곡진 오무라만(大村灣)의 리아스식 해안이 아름답다. 왼편 창가 앞쪽으로 운젠화산 최고봉인 높이 1,359m의 후겐다케(普賢岳)가 눈에 잡힌다.

아침 9시 반. 나가사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시마바라 반도로 향한다. 오른쪽 핸들이 새삼 낯설다. 홀로여행이라 모든 걸 재빨리 판단해야 한다. 공항에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시마바라성(城)이다.

시마바라성은 17세기 초 에도시대 때 축성됐다. 이 성내에는 천주교 박해 기록이 정리돼 있다. 전시장 분위기가 무겁다. 나가사키현은 일본에서 천주교가 최초로 전래된 곳으로 막부시대에 시마바라에서만 3만 7000명에 달하는 순교자들이 참수형을 당했다. 펄펄 끓는 운젠 온천물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 운젠화산 대폭발의 흔적을 만나다
늦은 점심을 국수로 때우고 서둘러 운젠으로 향한다. 먼저 도착한 곳은 ‘운젠다케 재해기념관’이다. 재해를 기념한다는 말이 어찌 좀 우습게 들린다. 허나 그곳 앞에 서니 이내 엄숙함이 급습해 온다.

1991년 비행기에서 필자가 직접 본 운젠화산의 생생한 화쇄류 자국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화쇄류란 시속 100km 정도의 빠른 속도로 화산체를 타고 내려오는 화산쇄설물의 흐름을 말한다. 대개 화산재해는 이 화쇄류 때문에 일어난다. 용암 돔의 붕괴로 발생된 이 화쇄류로 43명이 죽었다.

재해기념관 인근에는 ‘토석류피해가옥보존공원’도 있다. 빗물과 함께 흘러내린 대포수(鐵砲水)가 토석류(土石流)로 변해 마을을 덮쳤다. 토석류는 태풍과 장마 등의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 토사를 포함한 물이 강 하류로 세차게 흘러가는 물의 흐름을 말한다. 지붕 아래까지 쌓인 흙더미에서 당시의 아수라장이 투영된다. 그러나 정작 운젠화산 산허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하천 이름은 ‘무수천(無水川)’이다. 물이 없는 하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무수천을 거슬러 상류로 향한다. 화산지대의 하천들은 대개 건천(乾川)으로, 무수천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무수천의 항공사진을 보면 대형 인공수로처럼 보인다. 무수천은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화산재해를 막기 위해 1995년부터 5년간 사방공사를 한 하천이다. 무수천변에 서니 공사 규모에 감탄이 절로 터진다. 무수천 상류부엔 축구장 10배가 넘는 토사 저류지가 있다.

■ 시마바라 대표 온천지대, 운젠온천
17시. 답사를 마치고 숙소가 있는 해발 700m 운젠온천으로 향한다. 힘들지만 지역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로 지리여행의 매력인 것이다. 조금 더 가면 ‘운젠지옥(雲仙地獄)’이 필자를 반길 것이다.

운젠화산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매일같이 이 화산을 보며 살고 있을까? 짙은 안개처럼 유황연기 가득 찬 도로변 호텔로 들어서며, 오늘도 이 운젠지옥이 성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우리가 그 이상 할 수 있는 무슨 재주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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