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봉준호 감독의 2006년 작품인 영화 <괴물>을 감상했다. 영화가 개봉했던 20대 초반에는 배우 박해일의 잘생긴 얼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30대가 되고 나서는 재난에 맞서는 가족의 사투가 보였고, 코로나19 발생 2년을 앞둔 지금은 방역 관계자들이 입고 다니는 방호복이 눈에 들어온다. 

▲ 장르는 다르지만 세 영화에는 바이러스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는 영화 <괴물>뿐만이 아니었다. <레지던트 이블>, <28주 후>, <눈먼자들의 도시>, <감기> 그리고 10년 전 영화임에도 현재 상황과 소름 끼칠 만큼 닮았다 하여 재평가를 받고 있는 <컨테이젼>까지 전염병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방호복을 입은 단역이 주연 캐릭터만큼 눈에 잘 들어온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익숙했던 것들은 낯설어지고(예를 들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외출하기), 방호복처럼 낯설던 것들은 익숙해졌다. 그런데 익숙하다고 생각한 방호복도 영화를 보다 보니 여전히 낯선 점이 많았다. 오늘 기사는 익숙하지만 낯선 의류, 방호복 이야기를 준비해봤다.

*본 기사는 영화 <괴물>, <컨테이젼>, <감기>의 스포일러를 약간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펀지 실험맨들이 영화 <괴물>에서 괜찮은 이유 

먼저 독자들에게 질문 하나 던지겠다.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방진복일까, 방호복일까? 답은 방호복이다.

▲ 스펀지의 상징 실험맨이 입은 건 방진복이다 (출처: 유튜브 채널 KBS 동물티비)

필자와 비슷한 연배의 독자들이라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KBS2 채널에서 방영된 교양 프로그램 <스펀지>를 기억할 것이다. 스펀지의 마스코트는 흰옷을 입고 각종 실험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주던 실험맨들인데, 이 실험맨들이 입은 하얀 옷은 방진복이다. 

▲ 만 원 이하 저렴한 작업복은 거의 방진복이다 (클린가드 작업복 4,040원)

방진복(防塵服)과 방호복(防護服)은 다르다. 방진복을 입은 실험맨들은 영화 <괴물>의 세계관 속에선 괜찮지만 전염병이 창궐한 <컨테이젼>이나 <감기> 세계관에서는 위험하다. 왜일까?

▲ 산업현장에서 주료 사용되는 방진복 (출처: 게티)

방진복은 먼지를 막기 위한 작업복으로 식품이나 반도체 생산 공장처럼 외부 오염 물질에 민감한 공간에서 작업하기 위해 착용하는 의복이다. 방진복은 보통 부직포로 제작되기 때문에 입자가 큰 먼지는 차단할 수 있지만 극미세 크기인 바이러스는 차단할 수 없다.

▲ 인상적인 등장을 보여준 방역대원 (출처: 영화 괴물 예고 중)

영화 <괴물>에서 방역관계자들이 등장한 것은 한강에 나타난 돌연변이 괴물이 생물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가졌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 중 바이러스는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바이러스 차단이 불가한 방진복을 입고 있어도 감염 걱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와 피부 접촉으로 감염되는 <컨테이젼>과 <감기> 속 세계에선 위험하다.

▲ 의료인들은 방호복을 입는다 (출처: 게티)

방역관계자나 의료인이 입는 방호복은 물리적, 전기적, 열, 화학 물질, 생물학적 위험, 공기 중 미립자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감염 방지, 방수, 투습, 인장력, 정전기 방지 기능을 가진 기능성 보호복을 말한다. 보통 유럽 품질 안전규격(EN) 인증*을 받았으며, 방진복보다 훨씬 비싸고 방수가 가능해 세척과 소독 과정을 거치면 재사용이 가능하다. 

*유럽표준화위원회(CEN)에서 유럽 규격에 부합하는 제품에만 부여하는 공신력 있는 인증제도.

<방진복과 방호복 차이>

전염병이 돌고 있는 영화 속에서는 이런 방호복을 착용해야 한다. <컨테이젼>, <감기> 그리고 달리는 좀비의 시초인 <28주 후>에 등장하는 흰옷은 99% 방호복이라고 보면 된다.

의외로 덜 위험한 <감기> 속 세계관? 영화 속 방호복 정체

▲ 현 시국과 비슷하다 평가받는 영화 <컨테이젼>에도 방호복이 등장한다 (출처: 영화 컨테이젼 예고 중)

전염병 소재 영화에 등장한 흰 보호구가 방호복인 것은 이제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의문이 든다. <괴물>에서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등장한 방역대원의 방호복은 노란색이다. <컨테이젼>에선 주황색 방호복이 등장한다. 혹시 방호복 색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걸까?

▲ 레벨A로 갈수록 보호구가 크고 무거워진다 (출처: 게티)

색에는 의미가 없지만 모양에는 의미가 있다. 방호복은 US EPA, US Coast Guard, OSHA, DOT, NIOSH 등이 정의한 국제표준 기준에 따라 A, B, C, D 4개 레벨로 나뉜다. 알파벳 단계가 앞일 수록 위험한 환경에서 써야 하는 방호복이란 의미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현장에서는 레벨C와 레벨D 방호복을 주로 쓰며, 생화학 실험 장소나 치사율이 높은 호흡기 및 피부 감염이 유행 중일 때는 레벨 A와 레벨B 방호복이 사용된다. 

▶ 레벨D 방호복

▲ 치사율 100% 바이러스가 창궐한 영화 <감기> (출처: 영화 <감기> 스틸컷)

영화 <감기> 속 바이러스는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하다. 호흡기로 감염되고, 확산 속도도 초당 3.4명을 감염시킬 만큼 높다. 게다가 치사율도 100%다. 그런데 영화 속 방역 관계자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도 레벨D로 추정되는 방호복을 착용했다. 

▲ 레벨D 방호복 (출처: 게티)

레벨D 방호복은 방역 현장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다. 보통 전신 보호복과 N95등급 마스크, 보안경, 신발 덮개, 장갑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스나 코로나19처럼 입자상 유해인자에 대한 방호가 필요할 때, 위험 수준의 병원체 및 화학물질과 접촉 가능성이 없는 현장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 같은 점에서 봤을 때 <감기> 속 전염병은 의외로 위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레벨C 방호복

▲ 쓰레기봉투는 방호복 대용이 될 수 없다 (출처: 영화 엑시트 스틸컷)

영화 <엑시트>에서 평화롭게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치르고 있던 용남이(조정석)는 인근에서 유독가스 테러가 벌어지는 바람에 쓰레기봉투와 비닐 테이프로 보호구를 만들고, 방독면을 쓴 채 탈출을 감행한다. 그의 임시 보호구는 얼핏 보면 레벨C 방호복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우리가 사용하는 비닐봉지는 폴리에틸렌이나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감염 인자 차단 기능이 있는 방호복 대용으로 사용하면 위험하다. 질병관리청에서도 방역 현장에서는 반드시 레벨D 이상 방호복을 착용하기를 당부했다.

▲ 레벨C 방호복 (출처: 게티)

레벨C 방호복은 호흡기와 피부를 레벨D 방호복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보호해준다. 구성은 동일하지만 N95 마스크 대신 공기 정화 및 산소 공급이 가능한 호흡보호구를 착용하며, 보호복 소재도 생화학물질 저항 기능이 있고, 레벨D보다 방수 성능이 좋다. 

또 레벨C 방호복은 머리까지 덮어쓰고, 내화학성 기능을 갖춘 장갑과 부츠를 착용하기 하기 때문에 IDLH* 이하 화학 가스나 증기 노출 현장, 피부가 노출돼도 치명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작업할 때 사용된다.

*IDLH: 인체에 즉시 위험이 되는 요소.  

현재 국내 의료인들은 레벨D 방호복을 주로 착용 중인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인들의 안전이 위협 받자 레벨C 방호복을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진 상황이다.

▶레벨B 방호복

▲ 레벨B 방호복을 입고 마약 단속에 들어간 경찰들 (출처: 미국 위키피디아)

레벨C 방호복보다 한 단계 높은 호흡기를 사용하는 레벨B 방호복은 유해 화학가스와 증기에 노출된 환경, 잘 알려지지 않은 고위험 병원체 오염 의심 현장에서 사용된다. 단 레벨 A 방호복보다 피부 보호 수준이 낮아 오염물질의 피부 흡수 위험이 적은 현장에서 쓰인다.

보통 얼굴 전체를 가리는 독립형 호흡장치 SCBA나 송기마스크를 연결해 쓰며 보호복 또한 레벨C 방호복보다 공기 오염 방지 성능이 뛰어나다. 장갑과 부츠는 레벨C 특성과 동일하다.

아쉽게도 필자는 레벨B 방호복이 등장한 영화를 찾지 못했다. 독자들의 제보를 기다린다.

▶레벨A 방호복

▲ 괴물 세계가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준 그 장면 (출처: 영화 괴물 예고 중)

레벨A 방호복은 레벨D 방호복만큼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레벨A 방호복은 전염병의 원흉이 된 조직이나, 음모를 꾸미는 고위 관계자들이 주로 착용하고 나오는데, <레지던트 이블>의 엄브렐라사 직원들과 영화 <괴물>에서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존재하는 것처럼 속이는 미국 의료진이 그 예다. 이 기사를 작성하며 필자는 레벨A 방호복에 ‘빌런들의 방호복’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물론 현실에서 레벨A 방호복을 착용하는 분들은 고위험 현장에도 우리를 위해 수고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 레벨A 방호복 (출처: 게티)

4개 방호복 중 보호 기능이 가장 높은 레벨A 방호복은 레벨B에서 피부 보호 성능을 강화한 점이 특징이다. 레벨A 방호복은 호흡기와 내화학성 장갑, 내화학성 안전화가 모두 일체형으로 되어 있어 유해 화학물로부터 호흡기와 피부 접촉을 원천 차단하며, IDHL 수준의 고농도 화학 물질이 호흡기와 피부 감염을 위협하는 환경에서도 최상의 보호도를 제공한다.

코로나19 종결 엔딩을 기다리며

▲ T바이러스도 끝났는데... (출처: 영화 레지던트이블:파멸의날 스틸컷)

필자가 언급한 재난영화들은 모두 엔딩이 다르다. 어떤 영화는 해피엔딩, 어떤 영화는 새드엔딩이고, 어떤 영화는 사회적 관점에서는 해피엔딩이지만 주인공 개인에게는 비극으로 끝이 났다. 우리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필자는 당연히 코로나19 종결 엔딩이었으면 좋겠다. 마스크와 방호복 없이 얼굴을 마주하던 지난날의 평범한 행복! 이것이 내가 바라는 우리 영화의 결말이다. 

기획, 편집 / 다나와 오미정 sagajimomo@danawa.com

글 / 강은미 news@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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