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기후 연구가 남긴 단서
일반적인 감각에서 300년 뒤의 미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먼 시간이다. 그러나 기후 과학자들은 그보다 만 배는 더 먼 과거를 조사해 왔다. 이제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500만 년간 지구 기후는 온난 다습한 플리오세(Pliocene, 지금으로부터 약 533만 년 전부터 약 258만 년 전 사이)에서 한랭 건조한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약 258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 사이)로 크게 변화했다. 이러한 대규모 기후변화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던 초기 인류의 진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여러 화석과 고고학적 증거로 뒷받침되고 있었다.

슈퍼컴퓨터로 실제 기후 데이터의 빈틈을 메우다
IBS 기후물리연구단은 현재까지 누적된 기후변화 및 고고학 자료를 활용, 200만 년짜리 기후 시스템 모듈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결정적 단서가 빠진 과거의 기록을 보충했다. 연구진은 슈퍼컴퓨터 ‘알레프’를 이용해 지구 자전축과 공전 궤도, 북반구 대륙 빙하의 발달과 쇠퇴 양상, 온실가스 농도에 지구 기후 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반년에 걸쳐 조사했다. 그리고 이 자료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4가지 조상 종,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에르가스테르-호모 하빌리스가 거처한 아프리카·유럽·아시아 유적지 3245곳의 식생, 화석, 고고학 자료를 대비했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온 인류의 역사, 우리는?
이 연구는 조상 종의 기후변화 적응 과정이 현생 인류의 출현에 영향을 준 사실도 확인해 주었다. 이전의 화석 연구에서 30만~20만 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호모 사피엔스로 분화했다는 가설이 제기된 바 있는데, 기후 시스템 시뮬레이션 자료와 고고학 증거를 대비한 이번 연구가 가설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 준 것이다.

30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이 이끈 기후변화에 적응해 살아남았다. 300년 뒤의 사피엔스는 스스로 초래한 기후변화에 무사히 적응하고 있을까? 먼 과거를 살피는 기후 과학 연구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참고 자료
- IBS, 「기후 모델과 고고학 자료로 인간 진화의 수수께끼 해결」, 2022년 4월 14일.
- 기상청, 「기후변화 2021 과학적 근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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