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유당 불내증은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겪고 있을 정도로 매우 흔한 질환이다. 한국인의 경우 75%가 유당 불내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오히려 우유를 잘 소화하는 사람들이 특이하다고 볼 수도 있다. 나머지 3분의 1에 해당하는 이 사람들의 경우, 락테이스 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하는 DNA에 돌연변이가 생겨 평생 락테이스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낙농업의 발달과 유당 내성이 함께 진화해왔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우유와 유제품을 섭취하기 시작하면서,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영양이나 건강, 생식 측면에서 큰 이점을 갖게 되고, 그만큼 더 잘 살아남아 유당 내성 유전자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공진화’ 가설이라고 한다. 인류의 문화와 유전적 특성이 함께 진화해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인류가 유당 내성 형질을 갖게 된 이유로 새로운 가설이 제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대학교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은 먼저 고고학 유물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554곳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채취한 13,181개 도자기 조각을 수집해, 여기서 얻은 유기 동물성 지방 잔류물을 분석했다. 고대 도자기에는 유지방 성분이 잘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우유는 9,000년 전부터 유럽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섭취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유당 내성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팀은 전염병과 기근이 유당 내성을 빠르게 진화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강한 성인이라면 유당 불내증이 있어도 설사와 불쾌함 정도로 그친다. 유당 불내증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글: 오혜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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