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유독 몸이 떨리거나 이가 시린 이유는 하데스를 향한 페르세포네의 ‘한’(恨) 때문이 아닐까? 진짜 이유는 우리 몸에서 추위를 감지하는 냉각수용체 ‘TRPM8’ 때문이다.

온도가 낮은 물질이 TRPM8에 결합하면 (+)전기를 띤 칼슘 이온(Ca 2+)이 세포 안으로 들어온다. 이로 인해 신경세포에 전류가 발생하고, 뇌로 가는 전기신호가 만들어진다. 뇌는 이 신호를 받아 낮은 온도를 감지하고 몸을 떨어 체온을 높인다.
TRPM8은 박하 추출물 멘톨(Menthol)과도 결합한다. 이 때문에 민트를 먹거나 박하 성분이 들어간 크림을 몸에 바르면 온도 변화가 없는데도 시원한 반응이 일어난다.

연구팀은 TRPM8 단백질이 온도 저하를 감지하면 형태가 점점 바뀌면서 이온을 통과시킨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TRPM8을 통과한 이온들은 저온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를 활성화시켰다. 지질 PIP2가 TRPM8 통로를 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알아냈다. 미국 마운트 시나이 의대 연구팀이 2005년 TRPM8과 PIP2 사이의 기작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발표한 바 있다.

즉, 추위와 멘톨이 TRPM8 수용체를 자극하면, 칼슘이 세포 안에 들어와 PIP2를 분해한다. 만약 PIP2가 고갈되면, 수용체가 활성화되지 못해 세포가 차가움을 감지할 수 없다.
얼음 찜질을 하면 감각이 무디어지는 것처럼 진통 효과를 낸다. 이석용 교수는 “TRPM8 단백질의 구조를 알면 염증이나 통증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염좌나 골절, 관절염이 발생하면 몸에 염증이 생긴다. 이때 저온 센서인 이온 통로를 활성화시키면 차가움을 유발해 염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저온 센서가 지나치게 활발히 작동하면, 찬물에 손을 담갔을 때 피부가 창백하게 변하는 레이노병이나 온몸에 만성 통증을 유발하는 섬유근육통 같은 이상 반응이 생길 수 있다. 이 교수는 “TRPM8 단백질 기능을 적절히 억제하면 이런 이상 반응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멘톨도 진통 효과를 낼 수 있다. 근육의 통증 완화를 돕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인도 민트 오일을 향수와 입욕제로 사용했다. 또 민트 오일을 이마와 코에 살짝 바르면 두통과 편두통을 잠시 억제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멘톨로 냉 센서를 조절해 치료하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 강지희 메드업 기자/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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