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밥 좀 먹자!] #67글 = 신지현(아이 식습관 개선과 자기계발에 힘쓰는 두 아이의 엄마)
사람 지치게 만드는 무더위가 연일 지속되는 가운데 아이들 사이에서 장염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엄마들이 아무리 조심을 하고 또 해도 어떻게든 한 번씩은 걸리게 되는 이 집요한 장염은 감기나 그 어떤 질환보다 내가 가장 손사래치고 싶은 녀석이다.가뜩이나 잘 안 먹어 온몸이 앙상한 우리 딸이 하루 이틀 죽으로 연명하고, 이후 며칠 동안에도 음식을 조심해 가려먹고 나면 정말 눈 뜨고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얼굴이 많이 상하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우스갯소리로 단기간 최고의 다이어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 장염이라고 얘기할 정도인데 우리 아이처럼 이미 워낙에도 마른 아이에게 남겨지는 흔적은 오죽할까.
그럼에도 우리 딸, 그리고 아들 역시 장염을 여태껏 제법 겪어왔다. 어디서 뭘 잘못 먹은 것인지 이유를 모른 적도 있었지만 또 어떤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이유 때문에 장염에 걸린 적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드레스의 배신’ 이었다.
드레스가 드러낸 딸의 배
딸아이가 네 살 때였던가. 선물 받은 드레스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절대 안 벗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결국 밤잠도 드레스를 입은 채로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아이가 토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아이가 밤새 뒤척이며 드레스 자락이 올라가 배가 드러났고, 에어컨이 가동 중인 방에서 차갑게 노출된 배 때문에 탈이 난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여름엔 재울 때 얇은 소재의 슬립색을 꼭꼭 입히고 있다. 아무리 실내복 상의를 바지 속에 집어넣고 재워도 워낙 많이 움직이며 자는 아이라 어느 틈엔가 배가 드러나는 경우를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주 예전부터 친정엄마에게서 여자는 배가 따뜻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자라기도 했기에 특히 딸아이는 더더욱 배가 드러나지 않도록 많이 조심하고 있고, 적어도 그 이유로 다시 탈이 난 적은 이후엔 없었다.
가장 미안했던 장염, 아이의 생일날…
아이가 장염에 걸릴 때마다 늘 엄마의 마음은 미안함이었다. 대체로 먹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되거나 의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로서 드는 자책감이랄까.
그중에서도 가장 미안했던 딸아이 장염의 기억은 딸의 생일날이었다. 풍선으로 예쁘게 집도 꾸미며 아이보다 더 들떠있던 것이 독이었는지, 생일 떡으로 준비한 수수팥떡이 미세하게 쉰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아이에게 먼저 먹였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준비한 생일 파티 음식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축 처져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어찌나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던지, 그때의 장염은 정말 여러모로 우리 가족에게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어렵게 어렵게 찌워놓은 몸무게가 빠지는 것은 정말 순간이었다. 아이 1kg 찌우기가 너무나 힘든 나 같은 엄마들에게 아이가 토하고 설사하며 볼이 쏙 들어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장염은 그래서 더더욱 무섭고 야속하고 힘 빠지는 불청객이 아닐까 한다.
김희철 기자/poodle@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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