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밥 좀 먹자!] #61.글 = 신지현(아이 식습관 개선과 자기계발에 힘쓰는 두 아이의 엄마))
지난 주말 실로 정말 오랜만에 결혼식에 참석했다. 사촌 동생이 코로나19로 미루고 미룬 결혼식을 치른 것이다. 결혼식장에 가니 당사자 뿐만 아니라 먼저 결혼한 다른 사촌들도 참석해 있었다.
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은 뒤 함께 뷔페로 이동해 밥을 먹는데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오늘 결혼한 아이도, 내 옆에 앉아 밥을 먹는 사촌 동생도, 그리고 나도, 어릴 때 정말 밥 잘 안 먹던 아이들이었단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 셋 중엔 내가 그나마 잘 먹는 편이었다. 결혼식 주인공 신랑인 동생은 어릴 적 키도 작고 마른 아이었는데 밥도 정말 잘 안 먹는 아이였다. 명절때마다 만나면 작은 어머니가 어떻게든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 애쓰셨다.
하다하다 너무 안 먹으니 할 수 없이 김에 싸서 입에 쏙쏙 넣어주시기까지 했는데 활발한 아들이었던 동생은 결국 이렇게 저렇게 몸을 쓰며 놀다가 애써 먹은 김에 싼 밥을 모조리 토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걱정 반, 속상함 반의 작은 어머니 표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아마도 아들이라 더더욱 걱정되고 마음이 쓰이셨을 거라 생각된다. 나도 지금 딸, 아들 모두 키우고 있지만 성장에 있어서 아들이라 더욱 걱정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그때의 작은 어머니 심정이 어땠을지 그제야 그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게 됐다.
또 내 옆자리에서 식사하던 여자 동생은 어릴 때 거의 뭘 먹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역시나 주로 명절 때 만나곤 했던 아이였는데 수줍음이 많아 아빠 뒤에 늘 숨어있었고, 겨우 앉혀 뭘 먹이려 하면 늘 도리도리 고개를 젓던 모습만 기억이 나는 아이였다.
그 기억이 문득 되살아나자 옆자리 동생에게 물었다. “너도 어릴 때 밥 잘 안 먹었었지, 기억나?” 그러자 동생은 대번에 웃어보이며 엄마가 늘 따라다니며 먹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언제부터 잘 먹기 시작했는지 물으니 ‘스무 살부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먹는 문제로 어른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던 우리들이었다. 그런 우리들이 어느 덧 자라 결혼을 하고, 뷔페에서 술도 가져다 먹는 어른이 된 것이다.
너무 안 먹어 잘 자라려나 싶었던 우리는 그럼에도 잘 성장했다. 물론 나도 동생들도 또래 평균에 비해선 키가 작은 축일 것이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때 크게 눈에 띄게 두드러질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니 내 오른쪽에 앉아 밥이 될 만한 음식들은 손도 안 대고 마카롱만 우적우적 먹는 내 두 아이에게 한결 너그러운 마음이 들게 됐다. 우리 남매도 먹네 안 먹네 해도 결국은 잘 크고 잘 자랄 것임을,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바닥권을 맴도는 아이들의 현재 몸무게와 키에 완전히 초연할 수는 없는 것이 또한 엄마의 마음이지 않나. 그래서 나 역시 그때의 우리 엄마, 작은 어머니 그리고 고모처럼 타들어가는 마음을 부여잡고 “한 숟갈만 더”를 외치는 엄마의 삶을 당분간 더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나중에 어른이 된 미래의 너희도, 밥 안 먹어 엄마의 근심을 한 몸에 샀던 지금의 이 순간을 웃으며 추억할 수 있길. 그리고 그런 너희 곁엔 부디 왕성한 식욕으로 신들린 먹방을 선보이는 너희의 아이들이 함께하고 있기를 엄마는 진심으로 바란다.”
김희철 기자/poodle@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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