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PD WIN MAX 2. 노트북 형태의 UMPC를 대표하는 제품.
UMPC는 Ultra-Mobile Personal Computer의 줄임말로, 제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은 <7인치 이하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x86 호환 PC>를 의미한다.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매우 작은 노트북, 또는 윈도우 운영체제를 깔고 x86 시스템을 탑재한 태블릿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최근에는 게임용 버튼, 컨트롤러를 탑재한 제품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실 UMPC는 정확하게 규정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UMPC가 공식적인 명칭인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UMPC 제품을 출시하는 업체마다 UMPC가 아닌 다른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로 부르는 명칭으로는 MID(Mobile Internet Device), Palmtop(무릎이 아닌 손바닥에 올려놓고 쓴다는 의미), Hand-Held PC 등이 있는데, 이번 기사에서는 편의상 국내 커뮤니티에 가장 잘 알려진 UMPC로 통일해서 부르고자 한다. 먼저 UMPC의 역사를 보자.
제 1시대 : UMPC의 탄생
태초의 UMPC, <오리가미 프로젝트>
▲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리가미 프로젝트 소개 영상. 영상 마지막에 UMPC 라는 용어가 나온다
UMPC는 2006년 MS(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발표한 <오리가미 프로젝트>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리가미’는 종이접기를 뜻하는 일본어로, 서양권에서도 ‘Paper Folding’이라는 말 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위 영상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UMPC를 만들면서 어떤 미래를 꿈꿨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지금 기준으로는 모든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다 실행 가능한 별 거 아닌 것들이지만 그때는 대단히 도전적인 과제였다.
오리가미 프로젝트의 목표는 쉽게 말하면 초소형 x86 PC를 세상에 내 놓는 거였고, 당시 노트북과 PDA의 중간 크기인 7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형태를 메인으로 했다. 모바일 운영 체제를 쓰는 PDA와는 다르게, 데스크톱과 동일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제품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결과만 따진다면 오리가미 프로젝트는 5년도 되지 않아 망해버렸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작은 크기와 뛰어난 성능이 양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당시에는 7인치 디스플레이도 두꺼운 베젤 때문에 슬림하고 작은 제품을 만들기 어려웠다. 영상만 봐도 프로토타입 제품조차 매우 두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께도 당시 노트북에 필적했고(3cm 정도), 무게도 1kg이 넘는 등 한 손에 휴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2000년대 중반의 노트북들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생각 해보면, 오리가미 프로젝트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무모한 프로젝트였다.
제 2시대 : 넷북 강점기
오리가미 프로젝트는 망했지만, 다양한 형태로 파생. 특히 넷북
오리가미 프로젝트는 폐기됐지만, UMPC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나 업체의 도전은 계속 이어졌다. 작은 PC에 대한 선망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UMPC는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가이드가 없었기 때문에, 업체들은 저마다 새로운 방식의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7인치 크기에서 벗어나 10인치까지도 크기가 확장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이 준수한 제품도 등장했다.
▲ 넷북에 대한 14년 전 영상 (제작 : 다나와)
그러던 UMPC는 노트북과 퓨전을 거쳐서 가벼운 문서 작업용의 '넷북'으로 파생되기도 한다. 넷북은 대략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학생들의 과제용이나 직장인의 문서 작업용 염가 노트북으로 여겨지며 시장에서 선전했다.
제 3시대 : 암흑기
울트라북, 스마트폰, 태블릿의 득세로 UMPC 사멸할 뻔
▲ 인텔의 2012년 울트라북 광고 : 원탁의 기사들 편
넷북으로 변형되면서 저가형 모바일 PC 시장에서 잘 나가던 UMPC의 계보는, 2012년에 인텔에서 울트라북을 공개하면서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 넷북을 포함한 UMPC 제품들은 노트북보다 훨씬 낮은 성능, 하지만 상대적으로 뛰어난 휴대성과 저전력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성능에 아쉬움이 있더라도 휴대성이 제일 중요한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넷북을 쓰는 경우도 많았다.
▲ 인텔 코리아에서 제작한 울트라북 광고
하지만 인텔 울트라북 인증 노트북은 UMPC보다 훨씬 큰 화면,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갖추고, 그러면서도 UMPC에 비견되거나 더 오래가는 수준의 전력 효율성을 탑재했다. 더 크고 더 성능 좋고, 더 얇고, 배터리도 더 오래가는 울트라북이 나왔으니, 사람들의 눈에 넷북이 들어올리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 그맘때부터 인터넷 웹페이지의 요구 사양도 점차 업그레이드 되었고, 유튜브 같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본격화했다. 인터넷 창 여는 데도 10초씩 기다려야하는 넷북의 똥 성능으로는 도저히 이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됐다. UMPC의 긴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초창기 울트라북 제품도, 당대의 데스크톱과 비교하면 성능이 형편 없었다. 그러나 모바일용 인텔 코어 CPU의 성능이 빠르게 향상되면서 성능 부족의 문제는 금새 해결됐고, 기껏 해야 인텔 아톰 등을 탑재하던 UMPC/넷북은 아예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휴대용 기기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UMPC는 더욱 도태된다. 당시 UMPC로 할 수 있는 작업은 전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해결할 수 있었다.
제 4시대 : 부활
휴대용 게임기로 부활, 재도약의 발판 마련
UMPC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AMD의 라이젠 프로세서의 성공 이후다. 기존 UMPC는 인텔 CPU만 탑재했었는데, 아톰은 성능이 너무 안 좋고, 아톰이 아닌 인텔 프로세서는 내장 GPU 성능이 낮아 게임용으로도 못 쓰고, 문서용으로는 작은 화면 때문에 울트라북에 밀리는 애매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내장 GPU의 성능이 뛰어난 라이젠 APU의 등장은 UMPC에게 "휴대용 게이밍 PC" 라는 새로운 활로를 열어줬다. PSP는 쇠락했고,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를 제외하고는 마땅한 휴대용 게임기가 없는 상황에서 성능이 꽤 괜찮은 휴대용 PC게임 구동 게이밍 PC는 경쟁자가 거의 없는 블루오션이었다.
게임기 형태의 UMPC 시장을 이끈 것은 밸브의 ‘스팀 덱’이다. 자사의 게임 유통망인 스팀을 무기로, 스팀에 바로 접속해서 게임을 할 수 있는 UMPC 게임기를 만든 것. 스팀 덱은 구형 아키텍처를 쓰는 라이젠 4000 시리즈의 커스텀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요즘 나오는 프로세서들과 비교하면 절대적인 성능은 부족하지만, 게임 구동에 최적화한 리눅스 기반 스팀 OS를 사용하기 때문에 게이밍 성능은 아직까지도 그리 밀리지 않는다.
게다가 비교적 저렴한 프로세서를 사용했기 때문에, 퀄리티 대비 가격이 저렴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국내에도 2022년 12월 정식 발매하면서 많은 게이머가 스팀 덱을 장만하기도 했다. 멸망해가던 UMPC 또는 초소형 x86 컴퓨팅 플랫폼을 멱살 잡고 끌어올려서 핫 이슈 템으로 만들고, 시장을 부활시킨 것은 사실상 스팀 덱이 혼자 해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팀덱으로 부흥에 성공한 UMPC 시장은, 2022년에 출시된 AMD 렘브란트 라이젠 7 6800U 프로세서 덕분에 더욱 성장한다. 라이젠 6800U의 내장 GPU 성능이 매우 우수해서, 어지간한 게임들은 문제 없이 구동해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프로세서를 탑재한 수많은 UMPC 제품이 등장했다. 다만 6800U를 탑재한 제품들은 다들 가격이 노트북만큼 비싸서 보급에 걸림돌이 되었다.
2023년 6월에는 ASUS에서 ROG ALLY를 선보였다. 라이젠 6800U 이상의 성능을 지닌 AMD Z1 Extreme 프로세서를 탑재했고, 가격은 한국 정가 기준 99만 9,000원으로 책정했다. 여타 중국 중소 브랜드 제품들이 140~160만 원까지 받아온 것에 비해 월등히 저렴한 가격에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제품을 출시해버린 것.
당연히 시장은 난리가 났다. ASUS ROG ALLY 가 등장하면서, 기존에 6800U를 탑재하고 비싸게 팔던 UMPC들은 가격이 반토막이 났다. 앞으로 더 많은 업체가 게이밍 UMPC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기 때문에, UMPC 시장은 메이저 업체들의 경쟁에 의해 가성비가 더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시점, 가장 주목 받는 UMPC 제품들
다양한 UMPC 제품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제품 4가지를 소개해 본다.
▲ 밸브 코퍼레이션 스팀 덱 (610,700원)
UMPC를 언급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제품이다. 대부분 PC 게임을 스팀 플랫폼에서 구매해서 플레이하는 것을 고려하면 가장 강력한 무기를 지닌 UMPC다. 전 세계적으로 약 300만 대가 팔린 만큼 사용자가 가장 많은 UMPC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용법이나 애드온이 공유되고 있다.
윈도우 기반이 아니라 리눅스 기반의 스팀 OS로 구동되기 때문에 호환성 문제로 스팀에 있는 모든 게임을 즐길 수는 없다. 또한, 다른 플랫폼이나 윈도우 기반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우회 설치 방법을 통하거나 윈도우를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게임 제작사에서 스팀 덱에 최적화된 옵션이나 패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성능 대비 잠재력이 매우 뛰어나다.
▲ GPD GPD WIN 4 (966,720원)
전형적인 휴대용 게임기 형태를 한 UMPC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SIE의 휴대용 게임기인 PSP(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와 흡사하다. 여기에 PSP GO처럼 디스플레이를 위로 올리면 물리 키보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대부분의 게이밍 UMPC에 키보드가 생략되는데 독특한 방식으로 키보드와 게임패드 모두 탑재했다.
라이젠 7 6800U를 탑재해 성능도 뛰어나며 6인치 FHD 디스플레이로 선명한 화면을 제공하면서 598g 무게로 휴대성도 뛰어난 편이다. 작은 화면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로 좋지 않지만, 휴대성과 키보드 탑재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가장 눈여겨볼 게이밍 UMPC다.
▲ AOKZOE A1 Pro (857,660원)
현존하는 게이밍 UMPC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지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최신 라이젠 7 7840U를 탑재해 기존 라이젠 7 6800U보다 더 높은 성능을 지녔다. 여기에 메모리도 LPDDR5X 32GB(64GB까지 사용 가능)를 탑재해 메모리를 공유해 사용하는 내장 GPU 성능을 더욱 높게 끌어 올려줄 수 있다.
다만 디스플레이 크기가 8인치로 상당히 크고 무게도 729g으로 가장 무거워 휴대성은 떨어진다. 물론, 8인치 정도의 큰 화면과 고성능을 원한다면 가장 좋은 선택지다. 여기에 배터리 용량도 다른 제품의 약 1.5배인 65Wh이기 때문에 좀 더 오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 ASUS ROG ALLY (999,000원)
만우절에 갑자기 등장해 가짜가 아니라 진짜가 된 ASUS의 게이밍 UMPC다. ASUS에서는 UMPC가 아니라 ‘Hand-Held Gaming PC’라고 부르고 있다. ALLY(엘라이)라는 이름은 ‘play ALL Your game’에서 따왔으며, 거의 모든 PC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지녔다. 그러면서 가격도 착해 스팀 덱을 밀어내고 최강 가성비 UMPC로 불리고 있다.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로갈리' (ROG + Ally 를 붙여서 발음함)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최신 라이젠 7000 시리즈를 UMPC에 적합하게 커스텀한 AMD 라이젠 Z1 시리즈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Z1 시리즈는 보급형인 Z1과 고급형인 Z1 Extreme으로 나뉘는데 먼저 출시된 모델은 고급형인 Z1 Extreme을 탑재했다. 그만큼 성능이 뛰어나면서 7인치 FHD 디스플레이와 608g 무게로 휴대성도 좋다. ASUS의 전용 eGPU인 XG Mobile을 연결하면 더욱 뛰어난 성능으로 즐길 수 있다.
기획, 편집 / 다나와 송기윤 iamsong@cowave.kr
글 / 임강호 news@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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