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가면 꼭 들려야 할 가맥집 12

2023.09.04.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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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행컨셉이
맥주가 되면 어떨까

누군가 나에게 맛있는 전주 코스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전주 여행이요? 낮에는 자고, 밤에는 가맥집으로 가세요.”

그렇다. 이 도시의 맛집은 아직 덜 알려졌다. 지난 <전주의 맛집은 모두 가맥에 있습니다>에서 말했지만, 가맥집은 갓 만들어진 신선한 맥주에, 가게별로 특화된 시그니처 안주가 대결하고 있는 맛의 UFC, 맛의 배틀그라운드다. 전주에 왔는데 이걸 어떻게 놓칠 수 있지?

하지만 문제는 전주에 가맥집만 300여 곳이 있다는 것. 그래서 준비했다. 오늘은 마시즘이 선정한 12곳의 가맥집에 대한 리뷰다.

* 소개순서는 지역별(한옥마을 / 중화산동 / 아중리 / 전북대)로 나뉩니다
** 가맥을 경험하는 분들을 위해 소개되지 못한 좋은 가맥집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1. 황태의 전일슈퍼

외관부터 안주까지, 전주 가맥을 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슈퍼마켓이지만, 내부에는 황태와 맥주를 먹으러 온 사람이 가득하다. 일단 앉아서 안주를 주문하고, 맥주는 셀프로 가져오면 모든 준비는 끝. 우리는 가맥의 클래식은 황태와 계란말이를 주문했다.

입구에서부터 굽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황태는 건어물 안주의 왕이다. 바삭하고 부드러운 이 녀석을 먹다 보면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다. 요즘 난리난 ‘먹태깡’의 오리지널이자 이상향 같은 녀석일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에이스는 전일슈퍼만의 ‘찍어먹는 소스’다. 황태와 계란말이를 여기에 찍어먹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술안주는 다 이길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전주 가맥의 정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일슈퍼의 황태는 소중하다. 물론 더 맛있는 가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가맥을 경험하더라도 비교할 대상에 전일슈퍼가 빠질 수는 없을 걸.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현무2길 16
특이사항 : 2차 시간대는 언제나 밀린다(대기줄 있는 슈퍼마켓이라니). 1차 혹은 1.5차로 가자.

02. 고추통닭의 영동슈퍼

맥주 하면 떠오르는 안주는 치킨일 것이다. 전주에도 맛있는 로컬치킨집이 있지만, 전주치맥의 자존심이라고 부를만한 곳은 가맥집 ‘영동슈퍼’다.

영동슈퍼의 ‘고추통닭’은 매운맛이 나는 통닭은 아니다. 튀길 때에 고추를 넣어서 먹다 보면 느끼하게 퍼질 수도 있는 치킨의 끝맛을 맵시 있게 올려준다. 기본적으로 튀김옷의 두께부터 두툼한 살까지 잘 만들어진 치킨이기도 하다. 하지만 끝맛이 너무 깔끔하다.

영동슈퍼에도 물론 숨은 에이스가 있다. 바로 맥주를 3병 이상 시키면 나오는 서비스 ‘닭발튀김’이다. 처음 맛을 보았을 때는 입이 심심할 때 먹을만한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치킨보다 이게 더 생각나게 된다. 바삭한 겉튀김에 쫄깃한 속. 자꾸 맥주를 당기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이 있는 안주라고 할까?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현무1길 14
특이사항 : 전일슈퍼와 걸어서 5분 안에 있다. 전주가맥 영혼의 라이벌을 둘 다 가보자.

03. 망치오징어의 경원상회

‘경원상회’는 영동슈퍼의 바로 앞 가게다. 7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전일슈퍼, 영동슈퍼 사이에서 생존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가맥집이 가진 경쟁력을 알 수 있다. 이곳도 자신만의 무기가 있다. 바로 ‘망치오징어’.

처음에는 오징어 종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사장님이 오징어를 굽고, 망치로 두들겨 피는 모습을 보고 이름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가게에서 한쪽에서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ASMR처럼 들린다. 그래서 오징어를 망치로 두드리면 얼마나 맛있냐고?

굉장히 부드럽다. 겉은 여전히 단단해 보이는데 씹다 보면 이보다 쉽게 씹힐 수가 없는 오징어다. 맥주와 마시기에도 배가 쉽게 부르지 않고 좋다. 메뉴부터 가게 이곳저곳 사장님의 손맛이 느껴지는 가맥이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현무1길 11
특이사항 : 이곳에 없는 안주는 따로 가지고 와서 먹어도 되는 ‘안주프리(?)형 가맥’이다. 대인배.

04. 촉태의 임실슈퍼

전주 가맥을 아는 어는 토박이분은 이런 말을 했다. ‘전일슈퍼가 대중적인 함흥냉면이면, 임실슈퍼는 매니아틱 한 평양냉면’이라고. 메뉴는 다르지 않지만 해석이 다르다. 임실슈퍼의 시그니처 촉태다.

기존의 황태가 바삭하고 크런치하게 씹는 맛이 있는 안주였다면, 촉태는 쫀득한 질감이 살아있는 육포 같은 느낌의 황태다. 맛도 촉촉하고, 고소함이 잘 느껴진다. 함께 나오는 장의 종류도 2개라서 간장버전과 매운 버전을 골라서 찍어 먹을 수도 있다.

맥주뿐만 아니라, 소맥, 아니 소주까지도 소환시키는 안주다. 이 중독성 어쩔 거야.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7
특이사항 : 맥주를 마시다 보면 회복아이템 해장국을 서비스로 준다. 그럼 또 마시겠지?

05. 제육볶음의 장터목 휴게실

한옥마을 인근의 가맥집이 전통의 명가라면, 로컬에서 새롭게 부흥하는 가맥집은 ‘중화산동’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다. ‘장터목 휴게실’은 가성비로는 전주가맥들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싶었던 곳이었다. 안주 가격이 저렴하고, 맛은 반비례로 엄청나다.

장터목 휴게실의 시그니처는 ‘제육볶음’이다. 12,000원짜리 거대한 제육볶음에 4명이 달려들어 맥주와 안주를 먹었다. 보기만 해도 매콤 짭짤한 비주얼에, 자글자글 끓는 소리, 야들야들하게 펴진 고기를 마주하면 술생각, 그리고 볶음밥 생각이 절로 나게 된다.

무심한 듯 너무 친절한 사장님이 말한 가성비의 비결은 재료를 잘 찾고, 보관하는 것이라고. 기본 안주인 멸치부터 다르다며 여러 안주 샘플(?)을 시식할 수 있었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산월2길 27
특이사항 : 맛 때문인지, 가격 때문인지 다 먹고, 포장해 가는 손님들도 많다

06. 피데기의 삐루봉 가맥

전주 현지분들의 추천이 가장 많았던 가맥이다. 이름부터 간판까지 고수의 느낌이 드는 ‘삐루봉 가맥’이다. 이곳의 시그니처 이름은 특이하게도 ‘갑오징어 피데기’다.

피데기는 반건조 오징어의 사투리다. 두툼하게 만들어진 피데기는 씹을 때 탄력이 엄청나다. 오징어의 식감이 침대라면, 얘는 에이스 침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피데기만으로 삐루봉 가맥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곳도 ‘소스’가 미쳤다.

파채로 만든 매콤한 소스는 식감과 고소함이 가득한 피데기에 다양한 향과 맛을 입혀준다. 파향과 함께 매콤하고, 짭짤한 맛들이 피데기를 감싼다. 그렇게 다양한 맛과 향의 흔적이 남은 입안에 시원한 맥주를 마셨으니 ‘가맥 추천은 삐루봉’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로 292
특이사항 : 먹다 보면 라면땅 혹은 팝콘을 서비스 주시기도

07. 찹쌀전기구이의 용대리 가맥

중화산동 근처 서신동에 있는 가맥이다. 용대리란 이름은 황태를 받아오는 ‘용대리덕장’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의 시그니처는 황태가 아닌 ‘찹쌀전기구이’다.

겉모습은 평범한 ‘전기구이 통닭’이다. 그러나 사장님께서 통닭을 갈라주면 그 안에 익어있는 찹쌀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삼계탕에서만 볼 수 있는 구성이 아닌가 싶었는데… 라며 기대하지 않았는데. 치킨인생에 손가락에 꼽히게 맛있는 녀석이었다.

찹쌀전기구이를 먹는 방법은 독특하다. 김에 찹쌀을 올리고, 치킨살을 올리고, 따로 준 파김치를 올려서 싸서 먹는다. 쫀득한 밥과 치킨살도 좋지만, 새콤하고 매콤한 파김치의 풍미가 전체를 지배한다. 파김치와 치킨이 이렇게 잘 어울린다고? 가맥집이 아니라 치킨집, 아니 김치집이었어도 성공했을 곳이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룡1길 6
특이사항 : 마시즘피셜 전주 4대 치킨(영동슈퍼, 해태바베큐, 통집, 용대리가맥)

08. 골뱅이소면의 아중 꿈의 광장

‘아중리’에 있는 가맥집은 아주 오랫동안 현지인들과 어울린 가맥집이 있는 곳이다. 그중 ‘아중 꿈의 광장’은 가맥의 역사를 그대로 밟고 있다. 슈퍼마켓으로 시작했다가, 손님들의 성화에 가맥집이 되었다… 고 사장님인 줄 알았던 단골손님이 내게 말해주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몰라도 진정한 가맥에 온 걸 환영한다고.

과자나 담배를 팔았던 슈퍼마켓의 흔적, 연식이 의심되지만 너무 편안한 식탁과 의자. 하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시그니처 메뉴다. 평범해 보이는 ‘골뱅이 소면’을 시켰는데, 맛깡패가 돌아왔다. 이 새콤한 맛, 정확한 간, 엄청난 양에 감동하며 맥주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팔기 위해 내놓았다기보다 그냥 맥주 맛있게 마시라고 만든 안주의 느낌이었다. 가게맥주를 넘어서 가정집 맥주 같은 곳이라 결국 계산할 때 ‘맛있었다’라고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고수 가맥집들이 얼마나 많은 거야.

주소 : 전북 전주시 덕진구 구총목로 34
특이사항 : 조리를 하는 부엌이 그대로 보이는데 가정집 느낌이다. 이게 참 좋다.

09. 튀김의 다갈로 가맥

아중리에 있는 또 다른 가맥집이다. 널찍하고 쾌적한 공간과 급식판에 담겨 나오는 기본안주들, 양동이 얼음에 보관된 맥주까지 서비스가 참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의 강점은 ‘튀김’을 잘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중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튀김 ‘오징어 튀김’을 시켰다.

다갈로 가맥의 오징어튀김은 오징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탕수육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거대했다. 가위로 잘라서 가맥소스에 찍어먹는데 튀김옷의 느낌이 독특하다. 부드러움이 매력인 한국 분식집 오징어튀김과 거칠고 바삭한 매력의 일본튀김의 중간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다갈로 가맥의 두툼하고 맛있는 오징어 튀김과 얼음에 담긴 시원한 맥주의 조합은 가볍고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주소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동가재미2길 35
특이사항 : 메뉴판에 별표 그려진 것들이 손님들이 많이 시킨 안주라고

10. 참치전의 슬기네 가맥

전주가맥은 70, 8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현재를 사는 대학생들의 거리에도 ‘가맥집’이 있다. ‘슬기네 가맥’은 이곳 대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어왔던 전통의 가맥집이다. 메뉴 또한 특이하다. ‘참치전’이다.

참치전은 참치와 맛살, 여러 야채가 들어간 짭짤한 전이다. 대/소 사이즈를 정할 수 있다. 함께 제공되는 양배추 케요네즈 샐러드에 얹어서 먹거나, 장을 찍어먹으면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느껴진다. 가격도 적당하고, 맛도 중독적이다.

전북대학교 학생 졸업이수 조건이 맥주를 마시며 이 참치전을 먹어야 한다는 게 농담만은 아닌 이유다.

주소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광장로 22
특이사항 : 슬기네 가맥은 전주 내에 분점이 많다. 어딜 가든 슬기네가 있다.

11. 참치계란말이의 아지트 복고 가맥

전주에서 가맥집은 최소 10년은 해야 인정해 준다… 는 편견을 깨준 곳이다. 소개할 가맥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졌다. 이미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느껴지는 가맥들을 많이 갔기에, 레트로한 느낌으로 꾸민 인테리어는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젊은 학생들이 많이 오는데. 그것은 바로 ‘참치 계란말이’때문이다.

가맥집에서 계란말이란 누구나 다 잘 만드는 중국집의 짜장면 같은 메뉴다. 전주 가맥 특유의 계란말이는 두툼하고 여러 속 재료가 많이 들어간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아지트 복고 가맥의 계란말이는 그런 계란말이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녀석이다. 풍성한 걸 넘어서 엄청 크다. 마치 왕돈까스 비주얼.

참치건 치즈건,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계란말이로 낼 수 있는 최대의 풍미를 냈다. 여럿이서 한 안주를 가지고 맥주를 먹을 수 있다니. 서민들의 문화였던 가맥의 정신을 이렇게 계승하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