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0년 버지니아 남부에서 태어난 헨리에타는 어머니를 여의고, 조상들이 노예로 일했던 밭에서 담배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함께 자란 사촌과 14살에 첫 아이를 낳고, 20살에 정식으로 결혼했다. 학교를 제대로 마칠 수 없을 정도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둘은 담배농장에서 일하면서 가정을 일구었다. 이후 부부는 볼티모어로 근거지를 옮겨 슬하에 다섯 아이를 두었다.
문제는 수술의 절차에 있었다. 헨리에타는 수술 당시 ‘수술 동의서’라는 이름의 양식에 서명했는데, 여기에는 요컨대 ‘의료진의 판단하에 환자에게 적절한 수술 및 치료, 전신 마취를 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만 있었다. 표본의 기증 여부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외과의는 헨리에타 몸속 종양과 정상 조직 각각에서 동전 크기의 표본을 채취해 조직배양학자에게 넘기고 말았다. 비록 인체유래물에 관한 윤리 의식이 정립되지 않았던 데다 관련된 법이 없어 불법은 아니었지만, 지금 시각에서는 상당히 비윤리적으로 비추어지는 행위였다.

불행히도 생전의 헨리에타와 유족들은 그녀의 일부가 무한히 증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유족들은 1975년에서야 한 기자가 헬라세포에 대해 알고 취재해 오면서 뒤늦게 이를 전해 들었다. 심지어 이들은 몇 년 전 존스 홉킨스 병원으로부터 혈액 표본을 제공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무료 건강검진이라 생각해 응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야 헬라세포를 식별할 표지자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다.

같은 해 유족들은 영향력 있는 변호사단과 힘을 모아 동의 없이 헬라세포를 전 세계 실험실에 판매한 생명공학 기업 서모피셔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 상대로 소송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유명한 민권 변호사 벤 크럼프를 비롯한 변호사단은 헨리에타 랙스가 ‘착취’ 당했으며, 이는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오랜 투쟁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또 서모피셔사이언티픽이 엄청난 부당 이익을 얻었음에도 유족들에게 조금도 나눠주지 않았다며, 부당이득의 반환 명령을 법원에 요청했다. 서모피셔사이언티픽은 공소시효가 지났음을 주장하며 유족들에 맞섰지만, 결국 지난 8월 2일 유족들과의 비공개 협상 끝에 합의를 마쳤다. 합의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족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앞으로 다른 회사들을 상대로도 소송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글: 정유희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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